2007년 출간된 책입니다. 2008년에 구입하고 2009년에서야 읽었군요. ^^;
단행본으로 기획된 책은 아니고요. 2007년 이전 몇년간 쓴 글을 묶어낸 책입니다.
그간 그가 썼던 글들이, 대중 / 정치 / 대통령 노무현 / 정치인 유시민 / 이문열 / 지방(地方)라는
6개 카테고리로 묶여 출간된 것이지요. 그렇게 묶으면서 책 제목이나 장(章)별 제목에
<고독>이란 말을 넣었지만 크게 봐서 <고독>과는 무관합니다. 그냥 그렇게 제목을 붙였을 뿐. ^^
그냥 그의 평론과 소위 '잡문'^^들을 묶어서 출간한 책으로 보시면 됩니다.
잘 읽은 책이지만 실망스러운 곳도 보이는군요. 강준만의 날 선 비판을 즐기는 편인데도 그랬습니다.
어쩌면 이런 류의 책으로 그가 출간한 책은 <전라도죽이기>부터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항상 즐겁게 읽었고 그래서 신간(?)이 출간되면 봤던 글들의 묶음이라 할지라도 구입해서 다시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실망감을 감추기 힘듭니다. 그것이 2%가 되었든 20%가 되었든 말입니다.
머리말까지 포함해서 총 31꼭지의 글이 366쪽 안에 담긴 <고독한 한국인-중독과 거리두기 사이에서>를...
2월 9일, 10일, 11일 해서 3일간 읽었습니다. 2월 11일은 저의 그녀가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온 날이죠.
그녀의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다리며 병원에서 초조히 읽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 <고독한 한국인> 그리고 서평을 아직 못 쓰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노자와 말콤 엑스. )
1. 강준만의 노무현 비판에서 고독함을 본다 참여정부 스스로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는 함정에 빠지게 되며, ... 참여정부가 오랜 세월 누적된 수구 기득권 세력의 거대한 포위망에 갇혀 있으므로 오직 그들과 맞서 싸울 뿐 내부 비판을 할 겨를이 없다는 논리와 그에 따른 실천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거든요.
이 책의 세번째 장에서 강준만은 대통령 노무현을 비판합니다. 총 366쪽의 책에서 무려 130쪽이라는, 책의 1/3을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말이지요. 저더러 '노빠'(?)라고 부른대도 할 수 없지만 - 사실 저는 '노빠'가 아닙니다만 - 강준만은 노무현에 대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260쪽, '노무현 리더십의 폭력성'에서) '원격조종' 개념은 노무현의 특성을 드러내주는 핵심 키워드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무현에게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깨끗하다'는 것이다. ... 그간 한국 정치에서 돈이 필요하면 보스가 어떤 식으로건 관여해서 돈을 구해왔다. 그런데 노무현은 무조건 모른 척 한다. 밑에서 전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229쪽, '왜 노무현은 어설픈 마키아벨리스트인가?'에서) 강준만이 글을 쓰던 시기는 대통령 노무현이 현직에 재직하던 시절이지요. 강준만은, 죽은 권력이 아닌 '현재의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노무현을 다각도로 -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가혹하게 - 비판합니다. 저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봅니다만, 그리고 누가 누구를 비판하는 것은 비판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만, 강준만이 이 책에서 보여준 노무현 비판에... 저로서는 전혀(?) 설득이 되지 않더군요. 강준만의 생각과는 반대로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무현이 과연 기득권세력에 속해 있었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해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저는, 왜(과연?), 강준만에게는... 기득권세력, 지금 유행하는 말로 수구꼴통세력 또는 친일매국노세력들에 포위된 노무현이 보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비판의 화살은 그 수구꼴통세력이 더, 그리고 먼저, 받아야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구요. 그리고 강준만의 노무현 비판은 수구 기득권세력으로부터 가해지는 비난에 가까운 공격의 내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혹시 강준만이 어쩌다 보니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물론, 노무현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만, 저라면 노무현을 비판하기 전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수구꼴통세력들을 먼저 비판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했다 하더라도 강준만이 이 책에서 보여준 류의, 비난과 구분이 잘 안 되는 그런 비판은 하지 않았을 거 같구요. 2. 인터넷은 강준만에게 무엇일까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문제는 인터넷이다. 한때 '전투적 글쓰기'를 했던 지식인들도 인터넷 앞에선 다 굴복했다. 인터넷은 익명 또는 무명 논객의 바다이고 그 논객들은 적나라한 인정 투쟁과 더불어 노골적인 배설을 원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들과 대적할 순 없다. 감히 인터넷 논객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인터넷엔 평범한 시민들이 쓴 보석 같은 글들이 많지만, 그런 면도 있다는 점에서 하는 말이다.
위에 적은 것과 비슷한 취지로 인터넷 자체에 대한 혐오 비슷한 것이, 책의 여러 곳에서 눈에 띄더군요. 인터넷은 강준만에게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뭐랄까, 약간은 피해의식에 가깝달까, 아니면 약간은 '인터넷 폐해론'에 가깝달까. 그런 것이 읽힙니다. 강준만의 인터넷 관련 언급에서는요. (116쪽, '낙하산 태우다 골병든 노무현 정권'에서) 제가 한때 정기구독했던 <월간 인물과 사상>의 폐간 소식을 알리는 대략 최근의 어떤 기사(보러가기)에서도 그의 그런 생각이 읽혔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인터넷은 사회의 축소판이자 확대버전입니다. 강준만도 잘 알겠지만, 인터넷엔 수구꼴통이 득시글거리기도 하고 따뜻한 한 페이지의 글이 사람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나라를 10년전 20년전 30년전으로 되돌리려는 친일매국노세력에 대한 치열한 비판이 있기도 하고 ... 그렇습니다. 인터넷 자체에 대해서 '문제'라고 하는 것이 (제가 보기엔) 도리어 문제인 것 같은데, 강준만은 동의하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3. 사회비평에서 강준만은 빛을 발한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나라의 인구 감소가 '재앙'이라면, 특정 도(道)의 인구 감소는 '재앙'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 여러 도가 해당 될 것이나, 가장 대표적인 전라북도의 경우를 살펴보자. 1966년 전북의 인구는 252만명이었다. ... 그간의 인구 증가율을 따진다면 전북 인구는 오늘날 417만명이 되어야 한다. ... 그런데 얼마인가? 178만명이다!
촌철살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수도권 인구집중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지방의 인구 이탈을 지적한 촌철살인과도 같은 지적이지요. 인용한 부분은 '간판주의' '바캉스문화' '저출산심화' 같은 사회현상을 다룬, 이 책의 제1장 '대중의 고독' 편을 구성하는 어느 글의 일부입니다. (64쪽, '입시전쟁이 출산 파업을 부른다'에서) 일반인이 뒤져도 뒤져도 찾기 힘든 명확한 근거를 찾아 제시하는 것 그리고 적절한 역설과 반문과 독설... 그런 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아마도 이런 즐거움은 강준만의 초기 저서 <전라도 죽이기>라든가 <서울대의 나라> 같은 책에서부터 줄곧 견지되어온 그의 장점이지요. 이런 점 때문에 지금까지 줄곧 10년 넘게 그의 책을 읽어온 것 같습니다. 강준만은 제 생각엔 이런 사회비평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2009 0306 금 09:30 ... 10:50 비프리박 |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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