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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옆의 그녀가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보기 시작하더군요. (2008 0924 ~ 2008 1204)
어깨 너머로 드문드문 저도 드라마를 봤습니다. 문근영의 연기에 전율했습니다.
그녀가 극중인물 신윤복을 잘 소화했는지 어땠는지는 평가할 입장이 아니었지만, ^^
제가 보기에 그녀의 연기는 가히 일품(!)의 경계를 넘어서 신들린 수준이라 할만 했습니다.
국민 여동생으로, <어린 신부>(2004)로, ... 그냥 귀엽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제 옆의 그녀가 결국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을 구입했고... (그게 2008년 10월 29일...!)
드라마와 책을 병렬진행^^하더군요. 저는 그런 와중에 슬슬 <바람의 화원>을 잊어가기 시작했구요. ^^

그러다가, 지난 1월 30일, '그냥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바람의 화원>을 집어들었습니다.
제 옆의 그녀에게 '읽을만해?'라고 한마디 물었고요. 그녀의 대답은 '읽을만할 걸. 다 읽진 않았어.' 였습니다.
아마도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평소 별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던 그녀를 더 잡아끌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꺼내서 출근 준비하며 가방에 넣었던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
이 책을, 이 두권의 책을, 느리게 읽기의 달인(?)이라 해도 아깝지 않은^^ 제가, 2월 7일까지...
휴일 빼고 대략 일주일만에 다 읽어 치우게 됩니다.

서론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서평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문근영의 연기에 전율하고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을 집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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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화원 1, 2권 & 고독한 한국인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 )
( 지금 읽고 있는 책 말고도, 세권이나 더 서평을 작성해야 하는군요. 2월은 이래저래 밀렸습니다. )


 

1. <바람의 화원>은 사실(史實)을 동원한 소설

이 글은 소설이다.
내용 중 당시 시대상과 제도는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했으며 수록작품 또한 실제 작품에 근거했다. 다만 실존했던 일부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은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 재구성된 허구이다.
(1권 2쪽, 일러두기에서)

소설가 이정명에 의해 적절히 동원되는 역사적 사실(史實) 덕분에 소설 <바람의 화원>은사실성(事實性)을 획득합니다. 소설의 내용이 실제로 그랬을 것 같다는 개연성이 생겨나게 되고 독자에게 설득력을 선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지만, 그래서, 저에겐, 마치 김홍도와 신윤복이 마치 꼭 책 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살았을 것만 같습니다. ^^;;;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요. ^^)

 
 

 
2. <바람의 화원>에 숨겨진 온갖 소설적 반전들

반전들의 내용을 여기에 일일이 적지는 못합니다. 제가 되기 싫어하는 것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초입부터 보여준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라는 것은 책의 후반부에서 김홍도의 기막힌 추리에 의해서 밝혀집니다. 책으로만 보자면 처음부터 그닥 암시라 할만한 것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언제 아셨습니까?"
홍도는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윤복을 마음에 품었던 것인지. ...
"정확히 말하면 지금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도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구나."
... 홍도 또한 눈앞의 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쩌면 처음 널 보았을 때부터가 아닐까 몰라......"
(2권 129쪽에서)

어쨌든... 이 정도의 반전은 약과라 할만한 온갖 반전들이 책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누가 누구의 자식이었다'(요 정도만요. ^^)라는 것부터 '누구를 살해한 것은 누구였다'라는 것까지...! 독자에게 읽는 맛을 더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3. 김홍도와 신윤복에 의해 전개되는 크고 작은 추리들

<바람의 화원>은 추리소설로 읽혀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정명의 전작 <뿌리깊은 나무>라는 소설이 한글 창제를 둘러싼 집현전 학사 살인사건을 다뤘다고 하는 걸로 미루어, 어쩌면 이정명이 추리소설적 구성을 즐겨 구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내내 크고 작은 추리들이 등장합니다. 작중 등장인물의 추리를 통해 '누구는 이런저런 점으로 미루어 색맹임에 틀림없다'라든지, '누구는 이러저러한 연유로 여성임에 틀림없다'라든지, '그 그림을 그렇게 그린 것은 이런 방식과 저런 배경을 통해서였음에 틀림없다'라는 식의 결론을 도출해 갑니다. 독자는 그런 추리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지요.
예컨대, 도화서 화원 김홍도가 자신의 스승이자 수석화원이었던 강수항의 죽음의 내막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 이런 식의 추리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 눈빛은, 어떻게 고인이 이 방에서 죽지 않았음을 알았느냐는 의문을 담고 있었다.
답은 간단했다. 스승의 손목에 묻어있는 검은 먹 얼룩이었다. 평생을 먹과 함께 살아온 깐깐한 스승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손끝에 얼룩을 묻히거나 하지 않는 세심한 붓질이다. 하물며 손목 위까지 먹물을 튀길 일은 없을 것이다.
(1권 64쪽에서)

CSI 라스베거스와 CSI 마이애미를 열혈 시청하고, 명탐정 코난을 즐겨보는 저에게 이같은 추리소설적 구성은, 책을 읽는 속도를 가히 '빛의 속도'로 올려놓았습니다. 책 읽는 시간만 따지자면 채 1시간 남짓 될까 말까한 출퇴근 시간만으로 5백 페이지가 넘는 두권의 책을 대략 일주일만에 다 읽어내다니...! ^^
 
 

 
4. 호사에 가까운 눈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림과 해설

그림을 스캔 떠서 여기에 삽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30점 넘는 그림이 책의 곳곳에서 제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언제 제가 단원과 혜원의 그 많은 그림을 그리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정명의 전문가적 해설들...!도 일품이었습니다. 물론, 이 해설들은, 때로는 김홍도의 해설을 통해, 때로는 신윤복의 독백을 통해,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예컨대, 김홍도의 유명한 '씨름도'를 놓고 윤인원의 감탄을 빌어 이정명은 이런 해설을 합니다.

"저는 먼저 이 그림의 구도가 예사롭지 않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동심원을 이루며 화면 주변으로 둥글게 구경꾼들을 배치하고 중간은 여백으로 남겨둔 후 한가운데에 씨름꾼을 놓았습니다. 이로써 가운데로 향하는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으면서도 정연한 동심원의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오른쪽에 나란히 벗어놓은 발막신과 짚신은 동심원의 구도를 완성하는 백미라 하겠지요."
(2권 195쪽에서)

그리고 혹시라도 놓칠세라 이런 지적도 빼놓지 않습니다.

"... 그림에 실수가 있다는 말인가?" ...
"단원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오류는 오른쪽 아래 구경꾼의 손입니다. 씨름꾼이 자기를 덮칠까봐 놀라서 뒤로 내짚은 사내의 왼손과 오른손이 바뀐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조년의 말대로 구경꾼의 양손은 분명 좌우가 바뀌어져 있었다.
(2권 215쪽에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에 깊이를 더해준다는 느낌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관한 앎의 깊이를 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
 
 

 
5. 내면과 그림에 관한 아름다운 대사들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내면에 관한 묘사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에 관한 깊이있는 대사들도 좋았고요. 이정명의 소설가적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김홍도는 떠나간 신윤복을 그리워하며 다음과 같이 읊조리지요.


그녀(=신윤복)는 바람의 화원이었다. 바람처럼 소리 없고, 바람처럼 서늘하며, 바람처럼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
그녀는 바람이었고 나는 그녀가 흔들고 간 가지였다.
(2권 261쪽에서)

또한, '이미지와 실체'를 놓고 벌어지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런 대화들도 있습니다. 

"화선지 위에 그림자를 비추는 것으로 어찌 그림을 그렸다 하느냐?"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은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 화인의 눈을 통해 비치는 상을 그리는 것일 뿐이니 그 또한 그림자가 아닙니까?"
"화인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다. 비치는 상이 아니라 그 실체를 말이다."
"실체를 그릴 수 있는 화인은 없습니다. 단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비친 상을 종이에 옮길 뿐이지요. 화인의 눈을 통과하는 순간, 실체는 그리고자 하는 화인의 욕망에 투영된 그림자가 될 뿐입니다. ..."
(2권 26쪽에서)



 
아. 처음에 저는 '바람의 화원'이라고 해서 바람의 '花園'을 떠올렸더랬습니다.
그것이 바람의 '畵員'임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구요. ^^;;;
소설 내내 등장하는 한자로 된 생소한 용어들, 예컨대, 생도청, 어진화사, ... 같은 옛말들이
어쩐 일인지 친숙하고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a


예상 외로 길어진 서평... 이번 리뷰의 결론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대략 이 정도(↓↓↓) 같습니다.

읽을만한 소설, 읽는 내내 즐겁게 책장을 넘긴 소설,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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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228 토 06:30 ... 08:05  비프리박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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