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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듭니다. 그녀와 두어 차례 장을 봐다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장만합니다. 나물을 볶고 탕국을 끓이고 ... 거의 모두 그녀가 합니다. 저는 전을 부칩니다. 처음에는 반죽의 비율을 몰라 그저 프라이팬에 부치는 일만 하던 제가 이젠 반죽부터 척척 잘도 갭니다. ^^ 그리고 설거지는 가능한 한 제가 합니다. 식기세척기를 돌릴 때도 있고 직접 설거지를 할 때도 있습니다.

설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다가 명절 음식 만들기에 관한 몇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습니다. '음식 하기 싫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명절 음식, 얼마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단지, 노동(력)이 돈으로 값이 매겨지고 교환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 하게 된 생각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저에게 "부치기 싫으면 전 부치지 마"라고 한다면 제 생각의 수박을 겉만 핥으신 겁니다. (^^);

 


    전 부치다 든 생각 - 명절 차례, 기일 제사, 음식은 꼭 손수 만들어야 할까?

명절 전 부치기는 제 차지입니다. 물론 설거지도 거의 제 차지입니다.
처음에는 반죽의 비율을 몰라 그저 프라이팬에 부치는 일만 하던 제가
이젠 반죽부터 척척 갭니다. 가까이 계시면 전 좀 드시라고 하련만. ^^



사과의 예.

우리는 명절 차례상에 또는 기일 제사상에 올릴 사과를 얻기 위해 사과 나무를 재배하진 않는다. 과수원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런 일은 없다. 시장에서, 대형 할인점에 사과를 구입한다.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노동력과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럴만한 땅도 없다. 차례상과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사과를 '구입'하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성의'의 문제?

명절에 쓸 전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할까. 일단, '성의가 없다'는 생각을 할 듯 싶다. 그런데 과연 그게 성의가 없는 걸까. 시장에서 누군가 부쳐 놓은 전을 '구입'하기 위해선 적정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은 어디서 온 걸까.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아닌가. '성의'를 이야기 하자면 '성의도 이런 성의가 없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구입하면 비싸다?

명절에 쓸 전을 구입하면 '비싸게 먹힌다'는 생각도 가능하겠다. 그런데 과연 그게 비싸다고 할 수 있을까. 직접 전을 부칠 경우의 식재료 구입비를, '기성품 전' 가격에서 빼면, 누군가 전을 부친 '노동력' 값이 나온다. 예컨대, 전을 부치기 위한 식재료 구입비가 1만원이고 시장 튀김집에서 구입한 '기성품 전' 가격이 1만 5천원이라면, 차액 5천원을 '전 부치는 노동력에 대한 보상'으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이 비용만 생각해 본다면, 이게 과연 '비싸게 먹히는 비용'일까? 이게 '비싼 노동'이었다면 다들 전을 부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심한 예로, 이게 부가가치가 높은 일이라면 '통 큰 오징어전' '통 큰 고구마전' 같은 게 출시되었어야 맞는 게 아닐까. 시장 통의 어떤 아주머니가 자신의 전 부치는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안달나 하지 않는다면, 대형 할인점들이 전 부치는 사업에서 불꽃 튀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다면, 전 부치는 일은 고부가 가치 사업이 아니란 게 내 판단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전을 부친 노동력'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은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성'의 문제, 한 땀 한 땀?

전을 직접 부치는 일의 '정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한 땀 한 땀, 뭐 그런. ^^ 이것은 앞서 말한 약간 경제적인 '성의'와는 좀 다른 측면의 이야기다. 후손이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드는 의문은 두 가지다. 직접 전을 부칠 수 없어서 전을 구입하는 사람은 '정성'이 부족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 하나이고, 앞서 예로 든 '사과'는 그러면 '정성'이 부족한 것인가 하는 반문이 다른 하나이다. 

똑같이 구입한 전이라도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이 처한 (전을 직접 부칠 수 있느냐 없느냐 같은) 상황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말이 되는 걸까. 그 '상황'이란 것이 허용하는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보다 조상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전을 올리는 마음이 아닐까. 전을 부칠 수 있었음에도 전을 구입한 게 아닌가 하는 문제보다, 상에 전을 올리는 마음가짐 말이다.

그리고 앞서 예로 든, 사과 나무를 재배하지 않고 사과를 구입하는 게 '정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전을 부치지 않고 전을 구입한다고 해서 '정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상에 올리려고 사과를 사는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솔직히 '정성'에 관해 말하자면,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번 피 같은(?) 돈을 내고 전을 구입하는 것만큼 '정성'이 깃든 일이 있을까. 우리가 자신이 번 돈을 아껴 쓰는 존재라고 할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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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음 명절이나 제사에 또 음식을 직접 만들고 손수 전을 부치겠지요. 명절 연휴에 해외 유명 관광지로, 국내 관광 명소로 몇박 몇일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명절 당일을 맞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현실. 저희는 명절 전날과 당일은 아마도 집에서 보내겠지만 전을 시장에서 구입하는 문제는 그때마다 계속 머리 속에 떠돌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적자면, 이 포스트를 '전을 안 부치겠다, 음식을 안 만들겠다'는 뜻으로 읽으셨다면 당신은 수박 겉핥기 종결자(!)이신 거구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노동(력)이 돈으로 값이 매겨지고 교환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 전 부치는 일, 음식 만드는 일에 포개고 있는 우리의 생각은 과연 일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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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205 토 10:30 ... 12:0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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