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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제도 바깥으로 퉁겨나가야 하는 사회. 주류가 인정하는 세계관에 반하는 세계관을 피력했다간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회. 그 사회 안에서 어떤 창조적인 새로움이, 미래의 힘찬 비전이 발생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언제까지 낡은 제도 안에서 숨이 막힌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 김정란, 이책, 35쪽. )


김정란 교수의 책을 꺼내들었더랬습니다. 올 봄이었군요.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글을 좀 읽기는 했지만 책의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사둔 지 꽤 된 책인데, 책꽂이에 꽂힌 걸 볼 때마다 늘 마음의 빚 같았습니다.
독서가 본 궤도에 오르자 욕심을 냈습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

김정란, 말의 귀환:사회문화 에세이, 개마고원, 2001.   * 총 363쪽.

김정란 교수가 한국의 수구 언론과 수구 세력에 대해서 날선 비판을 했던 것이, 그럼으로써 매체에서 그를 접한 것이, 그러니까 대략 10년 전이었고, 이 책은 그 무렵 김정란 교수가 썼던 글들을 묶은 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10년 전의 날선 비판이 현재에도 무리없이(-.-);;; 읽힌다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수구 언론과 수구 세력에 의해 '지배' 당하고 있으니까요.

김정란은 상지대 교수입니다. 제가 김정란 교수의 글을 처음 접하던 대략 10년 전에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고, 이 책을 구입할 때에도 그랬고, 2009년 현재에도 그렇습니다. 호기심이 동하시면 상지대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깁니다. ^^

2009년 4월 20일(월)부터 4월 25일까지, 꼬박 6일에 걸쳐 읽은 책입니다. 매일 거의 60쪽씩요. ^^ 거의 6개월만에 서평을 쓰기 위해서 책을 뒤적이는데, 6개월의 시차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선명한 각인을 남기고 있군요. 김정란의 다른 책 한권도 마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인문학자가 바라본 조선일보와 한국 사회 - 김정란의 「말의 귀환」


( 대략 10년 전에 했던 한국의 주류 세력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유효하게 읽히는 데서 오는 비애를 맛보다. )


 

1. 이 책은?

이 책에는 김정란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 매체에 2001년까지 발표한 글들이 다섯개의 장으로 묶여 있습니다. 기왕에 쓴 글을 다섯 장으로 분류한 것인데요. 장별로 경계를 잘 지키기도 하고 경계를 잘 넘나들기도 합니다.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글의 제목을 ex)로 적어봤습니다. ^^

   제1부  -  떠도는 말과 시인   ex) 영어 공용화론? 영어 공룡화론?
   제2부  -  여자의 말              ex) 말하는 여자의 천역(賤役)
   제3부  -  말의 벽 앞에서       ex) 왜 반조선일보운동인가?
   제4부  -  터져 나오는 말       ex) 우리에게 박노해는 누구인가
   제5부  -  내면의 말, 그리고 침묵   ex) 봄에는 짐승처럼 예민해져야 한다


책의 부제처럼 사회문화 에세이 혹은 비평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김정란은 불문학을 공부한 인문학자답게 아름답고 감성적인 문체로 독자를 유혹합니다. 간혹 현대 서구 철학의 개념들이 등장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읽어내려가는 속도를 줄이지는 못합니다. ^^ 

 
 
2. '말 하는' 여자는 시끄럽고, 부정에 항의하는 자는 '빨갱이'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말한다"는 사실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감을 드러낸다. 여성문제에 관해서 아직도 많은 한국 남성들은 합리적-분석적 수준이 아니라, 정서적 수준에서 반응한다. 여성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면, 아직도 "저 여자 왜 저렇게 시끄러워"라는 반응을 보이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106쪽, <말하는 여자의 천역(賤役)>에서)

91년 재단과의 갈등 때문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적이 있다. ... 재단의 부정에 항의하던 나는 졸지에 빨갱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수구 세력의 눈에 항의자들은 몽땅 빨갱이로 보인다. 그들에게 진리는 자신들의 이익이다. ...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방해가 되면, 그 이의 제기는 빨갱이의 짓거리가 된다. 수구 세력에게 '아가리를 여는 자'는 모두 빨갱이로 보인다. 권력자의 이익에 종사하지 않는 모든 말은 '빨갱이의 말'이다..
(159쪽, <지식인들이여 입을 열라>에서)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으로서의 '말'이 아닌, 사회적인 발언으로서의 '말'을 하는 여자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시끄럽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사회의 부정에 항의하고 비판하는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아직도 '빨갱이' 소리를 듣습니다. 두 가지는, 김정란에게 덮어씌어지고 김정란을 억눌렀던 낙인이자 동시에 훈장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딱지'는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녀노소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덧씌워집니다.
 

 
3.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수구 정치집단이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수구 정치집단이다.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조작하면서 이 괴이한 언론은 계속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야심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대대적인 역사조작에 착수했다. 친일-극우로 이어지는 자신들의 법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독재자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가 하면 박정희를 희대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 이러한 짓을 버젓이 저지르는 신문이 한국에서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 거짓말로 배를 채우는 자들,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하는 신문"이란다.
(227쪽, <얼음장 밑에 갇힌 '흰 옷'>에서)

김정란의 지적에 한 글자, 한 줄 덜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여전히(!) 정확한 지적이라고 해야겠지요. 이승만을 추앙하고 지역감정을 조작하고 박정희를 미화하는 조선일보의 밑바닥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매체는 사실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그런 신문지 회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고 있군요. 모방과 복제를 넘나드는 동체(同體), 중앙과 동아가 그 뒤를 잇고 있고요. 대한민국 신문시장에서 언제쯤이면 얘네들이 도태될는지. 언제나 얘네들을 도태시킬 수 있을는지.
 
 

 
4. 기득권을 누리는 수구 세력이 승승장구하는 대한민국!

4.19는 5.16으로 뭉개졌으며, 5.16의 헌정 파괴는 다시 5.18의 비극으로 이어졌고, 그것을 뒤집은 6.10의 함성은 정치가들의 야합으로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 사이 한번도 역사적 청산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는 수구 세력은 국민을 비웃으며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도대체 이 끈질긴 용가리는 누구인가? 이들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기득권을 움켜쥐고 영광의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을 않는 것일까?
(225-226쪽, <얼음장 밑에 갇힌 '흰 옷'>에서)

국민들의 열망과 소망이 정치적으로 탄압 당하고 배신 당하고 거래 당하기 일쑤인 대한민국의 현대사. 수구 세력의 야심과 잔머리가 개입하여 현대사의 방향을 국민이 원하는 방향에서 멀어지게 만든 것이 벌써 반세기가 넘어갑니다. 그 속에서 수구 세력은 국민을 비웃으며 잘 먹고 잘 살고 있고 어떤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얼굴에 미소가 잦아들 날이 없습니다. 반면 없는 사람들은 주변부에서 또 주변부로 자꾸만 밀려나고 이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황의 연속.  

 

 
5. 조선일보 반대 1인 시위를 하러 가는 길에 하는 김정란의 노무현 생각
 
(조선일보사 앞에서 조선일보 반대 1인 시위를 하러 가는) 전철 안에서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꺼내어 읽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제목만이라도 볼 수 있도록 표지가 잘 보이게 일부러 책을 똑바로 들고 읽었다. 노무현이 좌절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조선일보의 발톱 앞에다 대한민국처럼 인재가 부족한 나라에서 참으로 얻기 힘든 귀한 인재를 하나 던져주는 셈이 된다. 노무현은 조선일보에 찍혀 치졸한 방식으로 해꼬지 당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책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힌다.   * (   )는 비프리박.
(193쪽, <벽 앞에서의 한 시간 - 조선일보반대 1인시위를 마치고>에서)

교수의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조선일보 반대 1인 시위(!), 그리고 그걸 하러 가는 길에 떠올린 노무현에 관한 생각에 마음이 찌르르 아파 옵니다. 특히 "노무현이 좌절한다면"이라는 대목에서요. 그리고 "조선일보의 발톱"이라는 표현도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무현은 "조선일보에 찍혀 치졸한 방식으로 해꼬지 당한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한 게 없군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에 소개된 노무현에 대한 해꼬지를 보면 기가 막혔다고 적고 있는 김정란은 2009년에 벌어진 일들을 보다가 기가 막히는 수준 그 이상을 경험했을 거 같습니다.


 
김정란 교수는 최근까지 매체에서 글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지난 봄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잠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좀더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는 사람이 저만은 아닐 거라 봅니다. 당분간 그 기대를 달래면서 김정란의 다른 책 「분노의 역류:김정란 에세이」(아웃사이더, 2004)를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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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27 화 21:50 ... 22:20  인용입력
2009 1028 수 09:20 ... 10:00 & 13:00 ... 13:30  비프리박
 
 
말의 귀환 - 10점
  김정란 지음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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