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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보행을 안 하면 뭔 일이라도 나는 걸까. 우측통행은 왜 그렇게 뜬금없이 시작된 걸까.
 


혹시 좌측통행을 하면 좌파, 우측통행을 하면 우파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버스에서 졸다가 머리가 왼쪽으로 기울면 좌경, 오른쪽으로 기울면 우경인 것은 아닐까.
전국민을 '우파'로 만들기 위해서 '우측통행'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조크가 얼핏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우측통행' 실시는 뜬금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선 우측통행이란 걸 시작했습니다. 2009년 10월 1일부터 국가적으로요.
 
국토해양부는 (2009년 10월) 1일부터 지하철·철도·공항 등 다중이용 교통시설 및 공공기관에서 우측보행을 시범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
우측보행 제도는 시범운용 기간을 거쳐 내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 관련기사 )

정부에서 시작한 일이니 누가 뭐라 하더라도 추진을 하겠죠. 암요, 어떤 정부인데!
하지만, 이번 조치가 가시적으로 시행된 후 보름이 더 지났건만, 여전히 일(?)을 보고 뒤(?)를 안 닦은 것 마냥, 뭔가 찜찜하고 불편합니다. 뭣 땜에 그런 건지, 하나하나 좀 짚어봅니다.


       ▩ 우측통행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나는 '우측보행'이 불편하다!

우측보행을 주도한 곳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다. 우측통행을 하면 진짜 국가경쟁력이 강화되는 걸까.



1. 결론을 정해놓고, 시행을 예정해놓고, 공청회는 왜 하나?

우측통행을 실시하기 전에 공청회라는 것을 하기는 했더군요. 사실 확인을 좀 해봤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과 국토해양부는 (2009년 4월) 28일 오후2시30분부터 보행문화 개선방안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한다. ... 주제발표에서는 현행 좌측통행의 문제점과 우측통행의 필요성, 과학적 근거, 시행방안 및 기대효과 등이 포함된다. ( 관련기사 )

기사들을 검토하는 중에 제 머리 속에는 '정책 정당화 수단'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부측에서 우측통행을 위해 "필요성, 과학적 근거, 시행방안 및 기대효과"를 미리 발표했군요.
그리고 5개월만에 예상대로(!) 우측통행이 실시되었습니다.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공청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공청회가 정당화 절차인 걸까요. 하기사 한반도 대운하를 판다고, 4대강 정비사업을 한다고, 공청회를 했었죠. 효과는 부풀리고 손실은 깎아내리고.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공청회는 정책 시행을 위한 요식행위의 하나가 된 걸까요.


2. 일제의 잔재 청소? 네 머리 속의 잔재부터 청소하시지!!!

아니나 다를까, 좌측통행 실시는 일제 유물의 청소라는 식의 멋진 미사여구도 갖다 붙입니다.
 
우리나라의 좌측 통행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규정인 1905년 대한제국 규정(가로관리규칙 제6조)에서는 우측통행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조선 총독부가 도로취체규칙(개정)(조선총독부령 제142호)에 의해 일본과 같이 좌측통행으로 변경함으로써 시작됐다. ( 관련기사 )
 
그런데, 일제 식민지가 조선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는 자들이 일제 유물의 청소라는 말을 해도 되는 걸까요? 유관순을 여자깡패로,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윤봉길을 백수건달로 보는 뉴또라이들과 정신적-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는 2mb 정부가 일제 잔재의 청소라는 수사를 갖다 붙여도 되는 걸까요.

뭔가 그럴 듯한 말을 갖다 붙이기는 해야겠는데, 자기모순적인 것까지 끌어다 붙인 격이군요.
먼저 네 머리 속의 일제 잔재부터 청소를 좀 하시지!!! 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3. 우측보행을 하면 "경제 살리기" "일자리 몇만개 창출!"이 가능하다고 못해 어쩐대!

정부에서 뭔가 정책과 제도를 시행하는데, 기대효과 같은 걸 이야기 안 할 수 없겠죠.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우측보행 원칙이 정착되면 보행속도 증가(1.2~1.7배), 심리적 부담 감소(13~18%), 충돌 횟수 감소(7~24%), 보행밀도 감소(19~58%) 등의 효과가 안착되게 된다. ( 관련기사 ) ( 관련기사 )
 
솔직히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몇만개 창출"만 안 나왔지, 갖다 붙일 건 다 갖다 붙였네요.

좌측보행을 했을 때 보행속도가 떨어졌었나요? 좌측보행을 할 때 사람들이 서로 많이 부딪혔나요? 좌측보행은 보행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나요? 누가 어디서 어떤 실험을 해서 이런 숫자가 나온 걸까요. 우측통행을 실시하기 위해 갖다 붙인 숫자놀음이란 인상이 역력합니다.


왜 잘 써먹는 "경제 살리기"나 "일자리 몇만개 창출"은 갖다 붙이지 않는 걸까요. 어차피 말도 안 되는 거 갖다 붙이기는 마찬가지일텐데 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자리 몇만개 창출!" 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고만 갖다붙이면 만사 OK!인데 말입니다. 지난번 미디어 관련 악법을 날치기 통과시킬 때에도 "일자리 몇만개 창출!"이란 헛소리를 떠들었던 거 똑똑히 기억합니다. 이러다가 어쩌면, 반인륜적인, 반사회적인 범죄자들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떠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4. 우측통행 =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작품 = 깡만수가 위원장!

기사를 검토하는 중에 유독 한 단어에 시선이 갔습니다.

국토해양부는 제1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현행 좌측통행 보행문화를 우측통행 원칙으로 전환하는 보행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 관련기사 )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어디서 많이 보던 단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웃음을 자아내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http://www.pcnc.go.kr)는 깡만수가 위원장으로 있습니다. 1997년 IMF 경제위기에 이어, 2008년 '고환율정책'으로 국가적 경제위기를 불러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한 분(?)이시죠. 그런 분이 위원장으로 계신(?) 위원회에서 과연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부터 들지만, 어쨌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휴일 대도시 외곽도로와 중소도시 지방도로에서 야간 점멸신호등을 주장했던 집단이지요. 야간 보행자의 안전은 내팽개친 채,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신호등을 야간에는 점멸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기발하고도 대단한(!) 발상을 하는 위원회입니다.

우측통행 제도 실시는 이 위원회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5. 일상 속의 좌측통행은 여전히 유효하다

좌측통행하더라도 죄책감 같은 거, 마음 속의 부채감 같은 거, 털어버렸으면 합니다.
일상 속에서 좌측통행은 여전히 유효할 때가 있으니까요.


시골길을 걷는 할아버지는 안전을 위해 마주오는 차를 보며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도심에서는 가게들 앞에 쌓인 물건들을 피해 그게 좌측이더라도 도로쪽으로 통행을 해야죠.
지하철 환승역에서는 붐비지 않는 한, 그게 좌측이더라도, 최단 동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우측보행을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우측보행을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우측보행에 대해서 여전히 불편한 시선을 거둘 수 없지만 우측통행하는 타인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주 붐비는 곳에만 이동 방향을 표시하는 것이 맞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좌측통행이라 한들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국가경쟁력을 제고"한답시고 통행방향을 바꾼다 어쩐다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주연으로 나선 우측통행, 우측보행 실시의 과정을 주욱 지켜보면서, 혹시 정부가 질서에 강박관념을 가진 건 아닌지,
국민을 이래라 저래라 하면 말 잘 듣는 로보트로 보는 건 아닌지, 국민을 내 맘대로 가지고 노는 인형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 하는 반문이 고개를 듭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보행방향까지 정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인지.
국가가 신경써야 할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가 과연 이런 것 밖에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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