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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메이데이입니다. 노동자의 날 또는 노동절이라고 불리는 날 아침, 머리 속을 맴도는 단어가 있습니다. '발리다'라는 말입니다. 먼저, 국어 사전에서 관련 단어의 뜻을 가져와 봅니다.

바르다 
2 뼈다귀에 붙은 살을 걷거나 가시 따위를 추려 내다. 예) 생선을 발라 먹다.


'발렸다'라는 말도 쓰입니다.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쓰는데요. '누군가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 또는 빈털터리가 됐다'는 의미쯤 됩니다. 얼핏 '털렸다'와 비슷해 보이는 이 말은 '생선 발라 먹는 장면'과 겹쳐지면서 '털렸다'보다 좀더 강한 어감을 갖습니다.

평소에도 가끔 생각나는 '발리다'라는 단어가 메이데이 아침에 심하게 떠오른 것은 어떤 에피소드와 겹쳐지면서였습니다.



 메이데이, 노동절에 든 생각. 바르다와 발리다, 자본과 노동. 입시학원과 강사.

 
 
그곳은 매월 2000명 정도의 학생이 등록하는 대형 입시학원이었다. 월 수강료 수입이 7억이 되기도 했고 8억이 되기도 했다. 강사 급여로 지출되는 총액은 (어림잡아) 월 평균 2억 5천 정도였다. 수강료 수입 대비 33% 수준이었다. 그곳에서 매긴 강사의 등급(?)에 따라 강사 각각에게 다른 금액의 월급이 주어졌지만, 평균적인 금액의 월급을 받는 강사 기준으로 볼 때 학원과 {6.6 : 3.3}의 비율로 수강료 수입을 나눠 갖는 셈이다.

'발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누구는 자본을 내놓고 누구는 노동력을 내놓아 벌어들인 수익을 어떤 비율로 나눠 갖느냐는 인류 경제사의 오랜 숙제 꺼리다. 하지만 매월 고정된 금액의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도 아닌, 수강료 수입의 증감에 그대로 노출되는 소위 비율제 상황에서 수강료 수입의 33%라면 그것은 '발린다'는 말을 연상시키에 충분하다.


그곳을 그만두기 1년 전, 학원 측에서는 '강사들이 돈을 더 벌어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하면서 새 계산법을 내놓았다. 노력하면 누구든 '월 한 장'씩 벌어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그 계산법은, 시그마와 리미트가 등장하는 수열 극한 공식보다 복잡했다.

현실에서 그 계산법은 다음번 월급 총액의 앞자리 수를 하나 줄여놓았다. 학원 측이 마련한 '강사들이 돈을 더 벌어갈 수 있는' 계산법의 적용 결과였다. '발렸다'는 말이 떠올랐다. 학원은 발랐고 강사는 발렸다. 예의 그 '33%'는 더 줄어든 비율이 되었을 것이다. 자본은 발라 먹고 노동자는 발린다.


그로부터 육개월 후, 그러니까 나 그만두기 5개월 전, 학원 측에서는 새 급여 산정 계산식을 내놓았다. 앞서 만든 그 수열 극한 공식을 능가하는, 이번에는 가히 도함수와 인테그랄이 등장하는 미적분 방정식에 비견할만한 계산식이었다. 솔직히 묻고 싶었다. "진짜 더 벌어갈 수 있긴 한 거냐?"

결과는, 현실은, 또 '발렸다'다. 자본이 새로 만든 급여 산정 계산식은 노동자 쪽에 불리하다. 또다시 급여의 총액을 줄여놓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더 벌어갈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은 '자본을 댄 쪽이 더 발라먹을 수 있는 방식'과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앞서 말한 그 33%는 이제 20%로 치닫는 상황이 되었다. 


짐을 쌌다. 수열 극한 계산법이 등장하고서 열두 달이 채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고, 미적분 방정식이 고안된지 육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 급여 총액이 얼마가 되었든 이런 식으로 계속 발리긴 싫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 들은 소식으로는 대다수 강사들이 그곳을 떴고 그곳은 옛날을 그리워하는 앙상한 고목이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경제학적 숙제, 앞서 적은, 누구는 자본을 내놓고 누구는 노동력을 내놓아 벌어들인 수익을 어떤 비율로 나눠 갖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 5 : 5 }를 생각한다. 어느 쪽이 발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타협점이다. { 5 : 5 }라는 게, 예를 들어 100 명이 일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각각 5를 가져간다면 사장 1명은 5*100을 가져가는 구조다(예컨대, 강사 1인이 월 500을 가져가면 학원측에선 5억을 가져간다). 이것도 부족해서 그게 6*100이 되길 바라고 7*100이 되길 바라고 심지어 8*100이 되길 바란다면 그를 뭐라 불러주는 게 좋을까. 귀엽게,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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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에 생각한 '발리다'와 그에 관한 에피소드였는데요. 일해서 먹고 사는 어느 누구도 발리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더 발리느냐, 덜 발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발리는 사람들입니다. 회사를 옮기는 것도 사실은 덜 발리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겠죠. 발리는 사람들 사이에 필요한 것은 연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울대도 제주대도 아닌 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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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502 월 09:30 ... 10:5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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