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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을 몸에 감고 지하철에 오르는 젊은 처자를 봅니다. (그게 명품 흉내를 낸 짝퉁이었을까요.) 고가의 제품을 몸에 두르지 못해 안달난 분들은 꼭 티를 냅니다. 루이 뷔통이니 뭐니 하는 걸 꼭 남에게 표나게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그런 명품을 몸에 감는 정도(?)라면 지하철을 탈 게 아니라 자기 BMW나 엄마 Lexus를 몰고 나와야 맞는 게 아닐까요. 모르긴 몰라도 지하철을 탈지언정 명품 가방과 옷은 포기할 수 없다는 걸까요. 참 슬픈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소 해오던 돈과 명품에 관한 생각을 적어봅니다.
 


              돈의 역설, 명품의 패러독스 그리고 자기 존재 부정.

 
돈 많은 사람이 "응, 나 돈 없어."라고 잘 말할까.
돈 없는 사람이 "응, 나 돈 없어."라고 잘 말할까.

내 생각으로는 돈 많은 사람 쪽이다. 돈 빌려 달라는 사람이 잦아서(?) 그런 말 할 기회가 많다는 뜻도 없진 않겠지만 '돈 없다'고 말하는 데에 '자존심' 따위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웬만해선 '돈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사실 따지고 보면, 돈 없는 사람이 '돈 없다'고 말하는 건 틀린 데가 없는 이야긴데 묘한 역설이다. 돈 없는 사람이 '돈 없다'고 말 못하는 것은 자존심이 끼어들어서임을 모르지 않지만, 좀더 파고 들면 이건 중대한 자기 존재 부정이 아닌가 싶다.


부유한 여성이 사고 싶은 명품을 포기하는 데에 쿨할까.
부유하지 못한 여성 쪽이 명품을 포기하는 데에 쿨할까. 

내 짐작으로 이것도 부유한 쪽이다. 부유한 여성은 늘 명품을 사니까(?) 포기가 쉬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고 싶은 명품을 포기하는 데에 '한(恨)' 같은 게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어지간해선 점 찍어둔 고가의 제품을 포기하기 어렵다. 나중에 한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놈의 한이 뭔지.

사실 생각해 보면, 부유하지 못한 여성이 명품을 포기하기 쉬워야 맞는데 묘한 패러독스다. 가난한 여성이 '사고픈 명품을 접기'가 쉽지 않은 것은 '나중에 한이 될까봐서'임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찌 보면 이건 자기 존재 배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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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111 화 17:15 ... 17:30  거의작성
2011 0112 수 07:40 ... 08:0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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