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자크 아탈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호모 노마드'는 이미 우리가 흔히 접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호모 노마드(homo nomade), 유목민으로서의 인간 또는 유목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쉽게 제 방식으로 번역하자면 '떠도는 인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쯤 될 것 같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란 말이 한때 유행했는데 이젠 호모 노마드란 말이 일상화된 것을 보면, 우리 삶 자체가 호모 노마드적인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회경제 시스템이 더이상 우리를 정착하게, 한 곳에 머물게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목하는 인간, 떠도는 인간이라고 했을 때 저는 그것은 (슬프게도!) 인간의 자발적 선택이라기 보다 강요된 선택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떠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착하길 원한다고 봅니다. 저는.

제 눈에 우리 삶이 호모 노마드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니, 우리 삶의 어떤 모습에서 호모 노마드적인 측면을 읽었습니다. 따로 따로 보이던 모습이 얼마전부터 호모 노마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꿰어졌습니다. 포스트로 적어 보고 싶었습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옮겨다니는 인간, 떠도는 인간. 강요된 선택.



[ #1 ]  핸드폰

기기에 정붙이고(?) 오래 쓰는 걸 촌스럽게 만드는 최전방 아이템이지요.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비약적으로 짧아지면서 약정으로 묶인 2년조차 길다고 느껴지게 합니다. 약정 끝나면 신제품으로 갈아타야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기기도 버리고 기존 통신사도 탈퇴하고 새 핸드폰 장만하고 신규 가입해도, 온갖 지원금이다 보조금이다 해서, 잘만하면 초기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거 안 하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입니다. 기기와 회사를 알아보고 또다른 2년 약정으로 들어갑니다.

현대판 유목민이 되어 2년을 주기로 기기와 통신사를 옮겨 다닙니다.



[ #2 ]  인터넷, 집전화, IPTV

업체간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언젠가부터 신규 가입자에게 현금 수십만원 또는 최신 LCD 모니터를 제공하는 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3년 이상 계속 한 업체에 머물러 있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큰 유혹입니다.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의 3년 약정이 끝나기만 기다립니다. 약정이 끝나는 순간 다른 회사로 옮기지 않으면 기회비용 수십만원이 연기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집니다. 

유목민이 철따라 이동하듯, 이 회사의 3년 약정에서 저 회사의 3년 약정으로 떠돕니다.




[ #3 ]  집, 주거

집을 사도 이 집에서 평생 살겠다고 하면 손가락질 당하는 시절입니다.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임금 상승률 앞에서 집마저 손해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강요 받습니다. 집을 사고 팔아서 떼돈을 벌진 못하더라도 집 때문에 손해 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시세를 주변 시세와 비교하고 부동산 시장 전체 경기를 살피고, 적당히 살다가 적당한 가격에 팔고 적당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트렌드처럼 된 지 오랩니다. 심리적으로 우리 동네라는 개념은 먼 나라 이야깁니다.

사회-경제 구조의 천민성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터전마저 진짜 유목민처럼 옮겨 다녀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 #4 ]  직장

노동 유연성이란 말로 노동자 해고가 미화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철밥통 소리 듣는 직장에서도 체감 퇴직 연령이 40대로 들어온지 오래이고, 대기업들조차 평사원들에게 30대 후반 명예퇴직을 압박하는 게 현실이죠. 월급쟁이들에게 평생 직장 개념은 진작에 물 건너간 상태. 오래 함께 하는 직장 동료를 원천적으로 가질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도 충분히 슬픈 일이지만 생계를 위해 직장을 떠돌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선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릅니다.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닐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정착하고 싶어도 정착할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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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18 토 00:00 ... 01:45  비프리박
 
 
p.s.
nomade는 nomad라고도 쓰는데요. 처음에 저는 그게 no mad로 보여서 피식했습니다. nowhere라는 단어가 no where로 보이지 않고 now here로 보였을 때 피식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옮겨다니는 인간, 호모 노마드로 살고 있는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위에 적은 예와 관련하여 적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핸드폰 → 2009년 12월 KT에서 SKT로
               2007년 12월 SKT에서 KT로

인터넷+IPTV → 
2011년 3월 쿡인터넷+쿡티비에서 ○○○로 (뭔가 받으려고 벼르고 있음)
                       2008년 3월 지역케이블에서 메가패스+쿡티비로 (아무것도 못 받았음)
* 집과 직장에 관해서는 사생활 보호 모드 가동. 패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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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8 08:54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비프리박 2010.12.18 09:25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맞아요. 웹상에선 이미 우리 모두가 노마드죠.
      옮겨다녀야 하는 이면에는 인터넷 기반 회사들의 잦은 부침도 작용하고 있지요.
      이래저래 옮겨다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지요.

  2. BlogIcon 맑은물한동이 2010.12.19 00:43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핸폰은 정말 2년 약정이 넘 길게 느껴져요~ ㅜ.ㅜ
    넘버4 는 가슴이 아프군요.
    3,4번은 농민들에게는 고민대상에서 제외~
    그런 점에서 직업중 농사꾼이 젤로 맘편한 직업이 아닌가 합니다. 백수 담으로... ㅋㅋㅋㅋ

    • BlogIcon 비프리박 2010.12.19 02:10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핸드폰 약정 2년도 길게 느껴지는 거.
      자동차 할부 길게 하면 차보다 할부가 더 오래 가는 거.
      이 둘이 겹쳐집니다. -.-;

      노동 유연성이란 말 뒤에 숨은 해고의 자유. 4번은 가슴 아픈 현실이지요.
      이래저래 농사가 맘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농사가 만만한 건 절대 아닙니다만.

  3. BlogIcon 잡학왕 2010.12.20 00:51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집이던 아니던 우리는 여기 저기 떠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 BlogIcon 비프리박 2010.12.21 01:29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우리는 떠돌기를 강요받고 있단 생각을 해요.
      손때 묻은 뭔가를 지니기도 어려운 시절이고요.
      맞습니다. 인간은 정착하는 동물인데
      사회-경제적으로는 인간이 더돌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