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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없는 영화는 뭐랄까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 같아요. 당신의 음악은 우리 모두를 고양시키고 우리를 날아오르게 만들어요. ..."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편집이 끝나고 음악 삽입까지 마친 필름으로 시사회를 가진 후, 오드리 헵번이 헨리 맨시니에게 보낸 애정 어린 편지의 일부다. (이 책, 122쪽, <오드리 헵번이 '문 리버'를 노래할 때>에서) 영화란 게 영상으로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영상에 어떤 OST가 포개지느냐에 따라 살기도 하고 못 살기도 합니다. 뭐랄까, OST가 밋밋한 영화는, 김 빠진 콜라 혹은 토핑 없는 피자, 라면 말이 될까요. 위에 고형욱이 인용한 오드리 헵번의 말은 그래서 백번 공감합니다. 좋은 말들은 이미 앞서 산 사람들이 다 해놓은. ^^a 고형욱,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사월의책, 2010. * 본문 382쪽, 총 384쪽. 책 제목의 부제 중 오디세이라는 말은 '장기간의 방랑 또는 모험'을 의미합니다. 호메로스의 고대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를 뜻하고자 함은 아닌 것 같고, 그런 뜻으로 '오디세이'라는 말을 부제목에 삽입한 걸로 보입니다. 책 내용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극장에서 매일 한 편의 영화를 보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치는 사람"이라고 적고 있는 저자 소개로 미루어 볼 때도 그렇고요. 2010년 12월 14일(화)부터 16(목)까지 읽었습니다. 크게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제가 영화를 거의 다 본 2부와 3부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380여쪽 중 읽은 건 그러니까 240쪽 분량이군요. 하루 80쪽이라고 잡는다면 1일 평균 독서량과 얼추 맞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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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고형욱의 영화음악, 영화, 극장 오디세이. ▩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고형욱)는 영화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좋고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가 있어서 좋고 영화음악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보지 않은 영화라면 별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본 영화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0. 저자 고형욱은? 이 책은?
고형욱에 관해서는 책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가 인상적이고 또한 정확할 듯 싶습니다.
"영화기획자, 와인평론가, 음식비평가, 여행 칼럼니스트, 그리고 고등 백수? 한마디로 소개하기 어려운 작가다. ... 극장에서 매일 한 편의 영화를 보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치는 사람. 사랑하는 영화의 OST를 LP 시절부터 지금까지 집 한구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모아왔다. ... 영화광이자 음악광으로서 영화감독들과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한데 꿰어 설명하기를 즐긴다." 이 책은 그런 고형욱이 1950년대부터 영화관객에게 사랑받은 영화를 자신의 취향과 기준으로 골라 영화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영화들은 OST가 인상적인 것들, 기억에 남을만한 것들, ... 위주로 고형욱이 골라본 영화들이고요. 영화음악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해서 그리고 음악에 관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추억을 적고 있습니다. 제가 본 영화들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 OST 때문에 CD를 구입한 걸로, <쇼생크탈출>과 (한석규-전도연의) <접속>이 기억에 남습니다. ( CD를 찾아봤는데 어디다 둔 건지. -.-;;; )
<쇼생크탈출>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카메라가 교도소 위로 올라가면서 교도소 마당을 풀샷으로 잡는 장면에 울려퍼진 <피가로의 결혼>이고요. 그때 주인공인 앤디는 교도소장실(? 방송실?)에서 늘어진 자세를 하고 있었죠. 그리고 아마도 공장인가 도서관인가에서 헤이우드(윌리엄 새들러 분)가 불렀던 리드미컬한 <Lovesick blues>(였을 겁니다^^) 역시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한때 제 핸드폰 연결음으로도 사용했던 기억이. ^^a 영화 <접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우수에 젖은 <Pale Blue Eyes>랑 Sarah Vaughn이 경쾌한 선율로 노래한 <A Lover`s Concerto>가 있네요. 이 곡은 다른 영화에서도 여러 차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원곡을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썼다는 사실을 알고 깜놀했었죠. 이 책에는 영화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와 관련된 다른 4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꼭지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책의 전체를 씨줄처럼 날줄처럼 엮고 있는 4가지. 1.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뒷 이야기가 있어 서부 영웅의 시대가 스러져가던 1960년. 별이 죽어가기 직전에 마지막 광휘를 빛내며 타오르듯 <황야의 7인>은 배우들의 연기, 음악, 스토리가 주는 재미와 긴장감 등 모든 면에서 제목처럼 찬란하게 빛난 영화이다. 영화를 찍을 당시 스타는 율 브리너 하나였다. 나머지는 감독이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서 봅은 신인급들이었다. ... 경쟁이 치열했다. ... 특히 TV 드라마를 찍던 스티브 매퀸은 할리우드로 진출하려고 머리를 짜낸다.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핑계를 댄 뒤 <황야의 7인> 촬영장으로 튄 것이다.
(111-112쪽, <마지막 총잡이들에게 바치는 찬가>에서) 요즘 하는 말로 깨알같은^^ 영화 제작의 뒷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단편적이라는 느낌이 살짝 들긴 합니다만 어차피 단편적인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긴 하지요. 그리고 그런 사실들이란 게 관심없는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을 때가 많다죠. 율 브리너는 추억 속의 영화배우가 되어 있는데 어린 시절 티비에서 하던 영화(아마도 <대탈주>)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스티브 매퀸 형아^^의 (위에 인용한)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기행(奇行)을 한 것이지만 그런 기행으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기도 하지요. 이런 뒷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2. 영화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의 뒷 이야기도 있어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영화 [<졸업>을] 만들 때, 처음부터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를 간절히 쓰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듀서인 로렌스 터만이 폴 사이먼에게 영화에 쓰일 신곡을 3개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편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도 새로운 곡은 나오지 않았다. ... 사이먼은 공연 때문에 정말로 짬이 나지 않았다. 결국 사이먼은 기존에 작업 중이던 몇몇 곡들을 감독에게 들려주게 된다. 그중 한 곡이 마이크 니콜스의 귀에 쏙 들어왔다. 그 노래에 대해 폴은 "이건 영화를 위한 곡이 아니라, 루스벨트 여사와 조 디마지오에 대한 곡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래에 사로잡힌 니콜스 감독은 말했다. "그 곡은 이제 로빈슨 부인에 대한 거요..." 이렇게 해서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명곡 <미시즈 로빈슨>이 탄생했다.
(171쪽, <사이먼과 가펑클이 말하려 한 것>에서) 영화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 <졸업>은 힘들게 CD를 구해서 본 영화인데 아직도 사이먼과 가펑클의 개성있는 목소리가 경쾌한 리듬 속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스카보로 페어>도 좋지만 <미시즈 로빈슨>도 빼놓을 수 없죠. <졸업>이란 영화의 대명사처럼 된 노래 <미시즈 로빈슨>이 영화에 쓰이게 된 뒷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들으면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관심이 없다면 알기 어려운 스토리죠. 고형욱은 이 책에서 그런 영화음악의 탄생 비화(?)들을 적고 있는데요. 어쩌면 책 속에서 당신에게 인상적인 영화음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뒷 이야기를 알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3. 영화 촬영 장소에 관한 정보가 있어 타이틀 매치가 결정되자 록키는 훈련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다. 제대로 된 훈련은 처음이다. 트럼펫 소리가 전주로 울릭, 몸을 풀면서 새벽길을 달린다. 미술관 계단을 올라가지만 처음이라 힘들다. ... 이때는 전반적인 음악의 템포도 느리다. 록키의 힘든 호흡을 대신하듯이 피아노 소리로만 받쳐준다. 훈련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서 음악도 경쾌해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테마 곡 <Gonna Fly Now>가 힘차게 흐른다. 록키가 거리를 달릴 때 필라델피아의 전경이 비추어진다. ... 나중에 '록키 계단(Rocky Steps)'으로 불리게 되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에서 음악은 절정에 달한다. 노래도 록키와 함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린다.
+ <록키>에서 필라델피아 거리 풍경과 명소들을 엿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다. 특히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과 광장은 영화 이후 록키의 트레이닝 코스로 유명해졌다. 심지어 1982년에는 록키 기념동상이 세워지기까지 했다. (222, 223쪽, <최고의 스포츠 뮤직>에서) 영화 속의 어떤 곳을 가보고 싶어질 때가 있죠. 이건 영화의 힘이기도 하고, 영화음악의 힘이기도 한데요. 위에 인용한, 록키의 운동 장소인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은, 영화를 볼 때나, 이 책의 위 대목을 읽을 때나, 가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습니다. 그 곳이 정확히 필라델피아 미술관인지는 몰랐는데 고형욱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a 록키 동상까지 세워졌다니 영화의 힘이 강력하긴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 미쿡이나 영화 관객의 감성은 비슷한 것 같고요. 4. 영화 또는 극장과 관련된 추억이 있어 중앙일보 사옥 1층 호암아트홀에서는 이제 더 이상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 을지로 국도극장도 건물 자체가 헐리고 호텔로 바뀌어버렸다. 해마다 여름방학이 오면 호암아트홀에서는 특별한 영화를 상영하곤 했다. 일반 개봉관이 아닌 아트홀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이곳에서 개봉한 영화는 여름 내내 주목을 받곤 했다. ... 이제는 극장들 모두가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 바뀌어서 과거와 같은 대형 극장들을 만날 수가 없다. 오래전 넓은 극장의 아련한 기억만이 머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플래툰>의 자욱한 포연처럼, 어둠 속을 뚫고 뿌옇게 비추던 영사기 불빛이 떠오른다. ... 그렇게 1987년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277쪽, <전장터에 울린 아다지오>에서) 관객으로서 가지고 있는 추억과 경험들, 그것이 이 책의 곳곳에서 공유됩니다. 고형욱은 이 책에서 영화와 극장에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을 적고 있는데요. 개인적이라는 '구체성'을 넘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공유되는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저는 위에 인용한 고형욱의 호암아트홀에 관한 이야기에서 "아, 호암아트홀!"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은 순간이고 영화의 추억은 그 뒤로도 주욱 이어지는 것이니 그 추억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는 거죠. 책을 읽는 동안 영화와 극장 그리고 영화음악에 관한 지난 추억들을 기억의 밑바닥에서 퍼올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2010 1220 월 06:40 ... 07:30 인용과 서두 2010 1221 화 13:10 ... 14:20 비프리박 2010 1221 화 15:30 예약발행
p.s. 고형욱이란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앞서 읽은 <파리는 깊다>에서였습니다. (관련해서는 리뷰를 쓴 적이 있죠. → http://befreepark.tistory.com/1121 )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이 책은 제가 읽은 고형욱의 책으로는 두번째 책이 되는데요. 고형욱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파리는 깊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에서는 그렇습니다. 기대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지켜볼(챙겨볼) 저자가 생겨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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