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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빠듯한 일정에 따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긴다. 가이드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후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 파리의 외관만을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호흡만 늦추고 숨을 고르자. ... 과감하게 에펠탑이나 루브르를 포기해보자. ... 남들이 에펠탑과 루브르를 이야기할 때 혼자만 겪은 여행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그냥 지나쳐버린 파리를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 253-254쪽, <파리에서 휴식을 - 파리에서 정원을>에서)


'파리는 넓다'도 아니고 '파리는 깊다'라니? 일단 책 제목이 제 관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저자 고형욱의 소개도 관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영화기획자, 와인평론가, 음식비평가, 여행 칼럼니스트, 그리고 고등백수?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가'라는 소개가 그랬습니다. 뭔가 정형화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의 책보다 이런 자유로운(?) 직함의 소유자들이 쓴 책이 더 호감이 가는 때가 있지요.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가 그랬습니다.  

고형욱, 파리는 깊다: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사월의책, 2010. 
* 본문 348쪽.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포함) 총 374쪽.

2010년 9월 2일(목)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9월 4일(토)에 읽기를 마쳤습니다. 책이 조금은 두꺼운 편이었지만 3일만에 뚝딱 해치운 것은, 평소의 관심을 감안할 때 읽어내기 힘들 거 같은 제1부 <파리 예술 산책>은 과감히 패스하고 제2부 <파리 도시 산책>만 읽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책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반드시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관심과 기회가 생긴다면 안 읽은 부분을 나중에라도 마저 읽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


파리는 깊다 - 8점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표지나 제목을 클릭하세요.
 


      「파리는 깊다」- 문화예술사적으로 들여다본 파리, 파리 여행의 노하우.


고형욱의 「파리는 깊다」라는 책, 파리 여행에 대한 뽐뿌도 뽐뿌지만,
고형욱의 문화예술사적 사실을 동원한 설명이 매력적인 여행서.


 

1. 고형욱은? 이 책은?

고형욱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책 날개의 소개를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책을 읽게 만든 원동력의 일부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영화기획을 하느라, 또 유럽의 와이너리들을 방문하느라 해외여행을 다닌 지 20년, 그리하여 파리만 50여 차례, 유럽 나라들마다 최소 10차례 이상을 방문했다. 뮤지엄고어이자 미술광, 독서광이어서 유럽 미술관과 작가들 이야기를 뚜르르 꿰고 있으며, 덕분에 얻은 풍부한 여행 경험과 깊은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문학적 감수성으로 몇 편의 여행기 원고를 완성했다.
만화 5천권을 소장한 매니아로 만화평론집 출간도 꿈꾸고 있으며, 서울 회현동 지하상가의 소문난 LP 콜렉터로 영화기획자의 본업을 살려 영화음악에 관한 단행본도 쓰고 있다."

이 책은 아마도 사월의책이란 출판사가 기획하고 있는 시리즈 중의 한권인 듯 합니다. 알라딘에 올라온 출판사의 말에 이렇게 적혀 있군요.  
"{깊은 여행}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파리에 대한 본격 '문화예술 체험 여행서'이다. 감성 에세이를 넘어 여행에 역사적, 문화적 깊이를 더하고, 아는 만큼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저자는 파리의 낭만을 그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몰랐던 파리의 모습을 새로이" 보여주고자 한다.




이 포스트 도입에 인용한 것 외에도, 고형욱은 이 책의 취지 비슷한 걸 책의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저 또한 크게,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여행의 원칙입니다.

남들이 다 아는 파리가 아니라 약간 다른 시각으로 파리를 느낄 수는 없는 걸까. 대부분의 관광이란 도시의 외관을 둘러보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서 약간만 더 들어가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예정된 코스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자.
(8쪽, <머리말>에서)
 
  
 
2. 파리의 설명에 종횡무진 동원되는 문화예술사적 사실의 매력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센 강 위에는 모두 서른 일곱 개의 다리가 걸려 있다. 2006년 마지막으로 생긴 다리에는 프랑스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이름이 헌정되었다. 베르시와 국립도서관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는 차가 다니지 못한다. ... 차량 통행이 금지된 다리들 중에서는 퐁데자르 다리가 가장 유명하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사르트르의 초상 사진을 이 다리 위에서 찍었다. 대화를 나누던 사르트르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파이프를 만지작 거린다.
(291쪽, <강이 만든 도시 - 파리의 섬과 다리>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그리고 관심이 없더라도 어디선가 한두번 들었을 법한 사람들, 문화예술사적 인물들이 고형욱의 파리 설명에 동원되고 등장합니다. 예컨대, 시몬 드 보부아르도 알고 사르트르도 알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을 안다 하더라도 위에 인용한 것처럼 파리의 다리와 연결지어 설명하기는 쉽지 않죠. 이런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구요. 이 같은 문화예술사적 사실(史實)이 동원되는 매력적인 파리 설명이 이 책의 전체를 수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여행의 한축 맛집기행은 파리 여행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 ^^

미식가라면 최고급 레스토랑의 이름 몇 개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미슐랭 스리 스타'로 알려진 레스토랑들이다. ... 그러나 고급 식당은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있다. 어느 정도의 출혈은 감수해야 한다. 만찬이 기본 300유로가 넘는다. 이렇게 파리에서 최고급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 10분의 1 가격으로 파리를 즐겨보자. 40유로 이내에 세 코스의 정찬을 즐길 수 있는 집을 찾아서. ... '값싸고 맛있는 집'들을 찾아보자. 뒷골목에 숨어 있는 파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295쪽, <식당을 순례하는 법 -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2010년 9월 11일 현재, 원-유로 환율은 약 1485원입니다. 갑부가 아닌 이상 아무리 해외여행 중인 파리에서의 만찬이래도 300유로(약 45만원)을 지불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러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돈을 내고 맛난 음식을 못 먹는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테구요. 고형욱은 이 가격의 대략 10분의 1 가격으로 파리에서 '값싸고 맛있는 집'을 찾자고 제안합니다. 그렇죠. 값 비싸고 맛있는 집은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값싸고 맛있는 집은 경험자만 찾습니다. 고형욱은 이 책의 2부에서 그런 식당과 카페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일부?) 적고 있습니다. 
 
 

 

4. 가보고 싶은 곳이 줄줄이 생겨나는 여행의 뽐뿌

[아마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는 영화 속 사랑을 꿈꾸는 쪽지들이 붙어 있다. 낭만적 사랑이 자신의 운명이라도 되는 양 만남을 기약하는 메모들이다. 관광객들은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면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사진과 연락처, 짧은 메모를 남기고 ...
(244쪽, <책들의 도시 - 파리의 서점들>에서)

여행의 경험을 담은 책은 독자에게 여행의 뽐뿌를 일으킬 때 본분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에서 고형욱은 자주 혹은 가끔^^ 손에 잡힐 듯이 또는 매우 친근하게 파리의 어떤 곳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강렬한 유혹이 되어 독자에게 여행의 뽐뿌를 일으킵니다. 위에 인용한 파리의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 & Company)}에 관한 묘사가 그랬습니다. 마치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에 호기심이 마구 동한다죠. 파리에 가면 꼭 이 서점에 가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 만큼. ^^
 
 

 
5. 사진을 좀 싣지, 하는 아쉬움

보주 광장은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140미터인 정방형 건물이다.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이 초록 나무들로 생기가 돈다면 이를 둘러 싸고 있는 건물 외관은 빨간 벽돌로 품위를 갖추고 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컬러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 광장에 세련된 풍모를 부여한다. 중앙에 울창하게 심어진 거목들 주위로 잘 다듬어 조경을 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210쪽, <400년의 도시 - 파리의 구(區)들>에서)

위의 4항에서 적은 것과는 반대로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머리 속에 그려질 듯 그려질 듯, 안개 속 부연 형체 마냥,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묘사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제 상상력이 부족한 건지, 말로 하는 설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 "사진을 좀 싣지!"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은 저작권 관련해서 게재가 어렵다 하더라도 건물들(예컨대 위에 적은 보주 광장 같은 곳들)은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출판사 혹은 저자한테, 책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짐작을 할 수는 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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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911 토 22:00 ... 23:10  비프리박
2010 0912 일 08:30  예약발행


파리는깊다한컬처홀릭의파리문화예술발굴기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 프랑스기행
지은이 고형욱 (사월의책,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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