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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비신사적'이라는 말을 접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 대 가나 전(한국 시간 7월 3일 03:30~)이 있은 후였습니다. 우루과이 대표팀 수아레즈 선수의 결정적 핸들링을 놓고 '비신사적'인 행위라고 몰아부치는 글들을 봤습니다.

자기 팀 승리를 위해 고의로 핸들링을 하냐,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핸들링 하는 게 어딨냐, 이런 경우에는 페널티를 좀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 ... 라는 식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망쳤다는 식의 좀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올라오더군요.)

저는 좀 의아합니다. '신사적'이라는 말이 주는 다소 전근대적인 어감도 싫지만, 언제부터 운동경기에 '신사성'의 잣대를 들이댔던 것일까요? 핸들링 반칙을 고의로 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벌칙을 주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요. 언제부터 그 선수를 '비신사적'이라고까지 욕을 했던 거죠?

그런 식이라면, 운동 경기에는 반칙을 포함해서 온갖 '비신사적'이라고 욕할 거 투성이가 아닐까요. 상대팀의 단독 드리볼 찬스를 골로 이어지지 못하게 반칙으로 막으면 비신사적인 걸까요. 반칙에는 벌칙이 따르게 되어 있고 벌칙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요?  

 

    수아레즈, 우루과이 대 가나 8강전에서의 핸들링으로 욕까지 먹어야 할까.

 

우리팀과의 16강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우루과이팀 루이스 수아레즈 선수는
가나와 펼친 8강전에서 결정적 핸들링 반칙으로 팀을 나락에서 구했다.
다음 경기 출장 금지까지 떠안게 될 거란 상상을 했을까 못했을까.

 

 

하나. 수아레즈가 공을 쳐낸 행위가 그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

수아레즈의 핸들링 반칙을 놓고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고 한다. 비신사적? 승패를 다투는 운동경기가 언제 그렇게 신사적이었던가? 그래, 물론 신사적이면 좋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팀 선수가 단독 드리블로 골문을 향할 때 그 선수를 '신사적으로' 놔두는 예를 나는 보지 못했다. 그냥 놔두면 들어갈 골을 이번처럼 선수가 손으로 쳐내는 일도 그리 드문 예는 아니다. 맞다. 축구에서 손을 쓰면 반칙이다. 그런 경우 반칙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받으면 된다. 수아레즈가 레드카드 퇴장에, 다음경기 출장 금지에, 페널티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신사적이니 뭐니 하는 말은 왜 나오는가 말이다.


두울. 진짜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욕먹어야 할 건 상대 선수에 해를 입히는 자들이다!

그렇게 '비신사적인 행위'를 꼽자면, 가장 욕먹어야 할 짓거리는 공에 손을 댄 행위가 아니라 동종업에 종사하는 상대팀 선수의 몸에 해를 입히는 일이 아닐까. 자신의 몸이 재산이라면 상대 선수의 몸도 그의 밥줄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격투기를 제외한다면)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하는 일이 가장 비신사적이다.

그런데도, 지금 수아레즈의 핸들링에 가해지는 정도의 비난이 그런 짓거리에 가해지는 일은 별로 없다. 시합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식이다. 핸들링은 운동하다 보면 있을 수 일이 아닌가. 사실, 핸들링은 선수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니잖은가. 분노하려면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하는 것에 분노하는 게 옳다. 무슨 한밤중의 퍽치기도 아니고 뒤에서 깊숙히 들어가는 백태클은 어떤가. 신사적이네 아니네를 따지려면 이런 행위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게 옳다.


세엣. 만약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수아레즈가 한 것 같은 '블로킹'을 했대도 욕할텐가.

수아레즈 선수의 핸들링을 욕하려면, 우리나라 선수가 그런 핸들링 반칙을 한 경우에도 똑같이 욕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나는 욕할 생각도 없고 욕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지금 수아레즈를 욕하는 분들은 우리 선수들도 똑같이 욕할 수 있을까. 물으나마나 한 질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희생정신을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네엣. 감동적인 명장면을 망가뜨렸다고?

축구 선수들은 90분동안 이기기 위해 뛰는 것이다. 그들이 경기장에서 뛰는 게 명장면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가?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로맨틱하다고 해야 하나. 멋진 장면을 선사하면 좋은 것이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승리를 굳히기 위해 공을 빙빙 돌리는 지공술을 쓰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경기에 대해서 명장면을 연출하지 못한다고 욕할텐가.


다섯. 가나 사람 입장이 되어 봤냐고?

솔직히, 수아레즈의 핸들링 반칙 앞에서, 왜 가나 사람 입장이 되어 봐야 하는 것일까. 경기를 보는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지, 왜 어느 나라 사람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하는가. 가나 측 아사모아 기안이 골을 넣었다면, 그래서 수아레즈 쪽 우루과이가 패배했다면, 그때 우리는 우루과이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하는 걸까. 참 억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여섯. 핸들링을 마구 범하자는 게 아니다.

핸드볼이 아닌 축구에서 핸들링 반칙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핸들링을 마구 범하자는 것도 아니다. 핸들링 반칙도 경기 전술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핸들링 반칙을 범한다 한들 그것도 경기의 일부일 뿐이며 해당 선수에게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네 어쩌네 욕할 건 아니란 이야기다. 핸들링 반칙에 대해서 벌칙을 가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승리를 위해 전략적으로 핸들링을 하는 것에 대해 '비신사적'이라고 욕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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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레즈 선수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와의 16강전(한국 시간 6월26일 23:00~)에서 수아레즈가 두 골 넣을 때도 우리 팀 투 톱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박주영과 비교하면서 "우리한테는 왜 저런 선수가 없을까?" 내심 부러웠습니다. 전반에 수비가 뚫려서 넣은 골보다 후반에 만들어낸 한 골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가나와의 8강전에서 좌절할 뻔한 자기 나라를 결국 4강에 올려놓은 셈입니다. 아. 우리에게도 수아레즈 같은 선수가 있다면. ㅜ.ㅜ






2010 0705 월 17:50 ... 18:10  거의작성
2010 0706 화 00:30 ... 01:00  비프리박



p.s.
우루과이 vs. 가나 전, 경기 내용 관련해서는 ( 관련기사 ) 참조.
본문에 넣은 이미지는 ( 관련기사 )에서 캡쳐. & ( 관련기사 )에서 인용.
월드컵 경기일정에 관해서는 ( 관련기사 ) 참고.
그리고 루이스 수아레즈 선수 사진을 더 보려면 ( 관련기사 )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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