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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구체적인 것이 되었든 추상적인 것이 되었든, 책이란 것이 독자의 첫 느낌을 능가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괜찮겠다" 싶어서 집어든 책이 처절한 실망감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있어도, "꼭 읽어야 하나" 하는 의문을 애써 무시하며 펼친 책이 그 첫 느낌을 능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론 그렇습니다. 신경숙의 이 책은 후자의 케이스였습니다.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신경숙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1993.
   * 본문 286쪽. 박혜경의 해설 및 작가 후기 포함 총 304쪽.

신경숙의 오래 전 책을 꺼내 읽은 데에는 아마도 최근작 「엄마를 부탁해」의 인기가 작용했을 겁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유라는 것이 이번처럼 저를 항상 독서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에는 그런 이유로 유인 당한 경우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최근작 「엄마를 부탁해」를 택하기 보다는 아마도 초기 작품집이었을 「풍금이 있던 자리」를 펼친 것이긴 하지만요.

올해 들어서는 제 나름의 독서 패턴을 유지하자는 생각에, 가급적 서평단 리뷰어 신청을 자제하면서, 소설과 비소설을 교대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와 고종석의 「여자들」 같은 비소설 사이에 낀 것은 그런 맥락에서입니다. 1월 22일(금)에 읽기 시작했고 1월 25일(월)에 읽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독파'한 것이 아니라 '읽기를 그만둔 것'은, 읽기 싫어서(!)입니다. 더 읽는 것이 저에게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랬습니다. 이유는 아래 본문에서 적도록 하지요.


※ 소설이라는 것이 여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호오가 갈리고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는 장르입니다. 누구든지 제가 적은 후기의 내용과 다른 평가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인기 작가가 된 데에는 나름의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어필할 수는 없는 거라고 봅니다. 소설가 신경숙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간직하고 싶으신 분은 이 서평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풍금이 있던 자리 - 2점
  신경숙 지음/문학과지성사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제목이나 표지를 클릭하세요.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소설집 - 책이 독자의 첫 느낌을 능가하긴 어렵다


 어떤 책이든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음을 재확인해준 신경숙의 단편소설집.


 

1. 이 책은?

이 소설집은 신경숙의 두번째 작품집이라고 합니다. 소설집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장편이 아니고, 단편소설을 묶은 책입니다. 신경숙이 비교적 초기에 쓴 총 9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풍금이 있던 자리
- 직녀들
- 멀어지는 산
- 그 女子의 이미지
- 저쪽 언덕
- 배드민턴 치는 女子
- 새야 새야
- 해변의 의자
- 멀리, 끝없는 길 위에
 <해설> 추억, 끝없이 바스라지는 무늬의 삶 - 박혜경
 <작가 후기>

 
 
2. 책에 실린 단편들에서 공통적으로 받은 인상

1) 배우자 있는 사람 사랑하기.
2) 왜인지 알 수 없는 어깃장의 행동들.
3) 죽음과 자해를 너무 쉽게 택하는 사람들.
4) 환영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심리 묘사.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서 제가 공통적으로 받은 인상은 대략 위와 같은 정도로 요약됩니다. 어느 한 편에서 등장하는 특징이 아니라 여러 편에서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인상입니다.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이 특징들이 주된 소재이자 스토리텔링의 기본 줄기가 됩니다. 읽는 도중에 저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계속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단적인 예로 "환영에 시달리는 사람의 내면 묘사를 내가 알아야 할 이유는 뭘까." 그런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8번째 단편까지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읽었으나 9번째 소설에서 과감히 그만 읽기로 했습니다. 더 읽는 것은, 최소한 나에겐 시간낭비다!  

 
 

 
3.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작가

작가 신경숙은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제 글쓰기가 대체로 저의 비사회성을 전시해놓은 건 아닌가, 여러 가지 결함들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삶은 사랑이라고 일러주었던 것이기에, 제게 주어진 시간들을 반추해보고 지키고 살게 해주는 통로이기도 하기에, 멈추지 못했습니다.
(304쪽, <작가 후기>에서)

신경숙의 소설은 적어도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에 관한 한, 신경숙의 말대로, "비사회성을 전시해놓은"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소설을 그만 읽기로 한 데에는 그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신경숙은 겸양의 치레로 한 말이겠지만 "여러 가지 결함들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 놓은 거 같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읽기를 중단한 진짜 이유입니다. 제가 바로 위의 2번 항목에서 적은 그런 인상과 오버랩되는 면이 있습니다. "결함의 미화"라는 신경숙의 말에 저로선 이 소설집에 관한 한 흔쾌히 수긍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 역시 "삶은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이지만, 건강하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는 사랑을 두고서 "삶은 사랑"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4. 신선한 표현법들, 하지만!

말줄임표와 쉼표와 괄호의 적절하고도 신선한 활용, 감칠 맛 나는 사투리 구사, ... 등등 구체적인 인용은 하지 않더라도, 이 소설집에서 높이 살만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 그대로 '표현법'에 불과합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에 수긍하는 쪽이지만, 표현법이 소설을 먹여살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표현법을 넘어서는, 표현법을 빛나게 할, 내용적인 면에서의 그 무언가가 저에게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어필하는 것을 소설의 본질 또는 알맹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에 그 알맹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그 알맹이는 뭘까. 읽는 동안 끊이지 않고 제 머리 속을 스쳤던 물음입니다.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비교적 신경숙의 초기 작품들을 묶은 두번째 작품집. 단편소설 9편으로 구성.
- 신경숙이 인기 작가임을 확인시켜준 「엄마를 부탁해」로 인해 읽게 된 책.
- 책이란 것이 독자의 첫 느낌을 능가하는 법이 없음을 확인시켜준 책.
- 여덟편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으나 그 이후는 읽기를 그만둔 책.
- 어쩌면 작가가 후기에서 말한 자신의 한계는 겸양의 말이 아니라 진짜 한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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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306 토 00:10 ... 01:30  비프리박


p.s.
신경숙의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구입해둔 책으로, 이 책 말고 두권짜리 「깊은 슬픔」도 있는데요. 읽어야 하나, 내심 고민이 되는군요. 포스트의 제목에 적은대로, 책이란 게 독자의 첫 느낌을 넘어서는 법이 여간해선 어렵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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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무예인 2010.03.06 08:08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음 한번 봐야 될책인듯

    • BlogIcon 비프리박 2010.03.06 12:50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저의 읽은 후 소감은
      (개콘 박성호 버전으로) 괜히 읽으려고 했어~ 괜히 읽자고 했어~
      입니다. ㅜ.ㅜ

  2. BlogIcon CITY 2010.03.07 00:23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환영이라는 주제에 작가가 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요..
    <기차는 7시네 떠나네> 이후 신경숙의 다른 책을 한 권더 읽어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계속 읽어보지 못하고 있네요. <외딴방>을 한 번 봐야겠습니다.

    • BlogIcon 비프리박 2010.03.07 00:25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신경숙이 환영에 관심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누구를 만나고... 그러는 걸 좋아하는 듯 합니다.
      흠흠. 저는 다른 책 읽기가 이젠 사실 좀 안 내킵니다.
      풍금이 있던 자리가 큰 영향을 줬네요.

    • BlogIcon CITY 2010.03.07 00:36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ㅎㅎ 사실 제가 <기차는 7시네 떠나네>라는 책을 읽고 신경숙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여럿이 신경숙의 책이 좋다고 하길래, '그럼 기회를 한 번 더 주지..'라는 생각으로 책 하나 추천해 보라 했더니 <외딴방>을 추천하더군요.. 그러나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

    • BlogIcon 비프리박 2010.03.07 06:50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제가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고 들었던 느낌이
      윤진님에게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은 후에 찾아왔군요.

      저에겐 특정한 주변 사람들이 신경숙의 책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중적 인기가 실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거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하나? 그러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적은대로 저로서는 '책이 독자의 첫 느낌을 능가하긴 어렵습니다'만.

  3. BlogIcon Slimer 2010.03.08 10:32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많이 들어본 작가인 것 같은데요. 다른 책을 읽어본 기억은 없지만, 라디오에선가 그 이름을 좀 들어본 것 처럼 많이 익숙한 것 같습니다.
    역시 짧은 독서량이 또 한번 드러나네요..^^;;

    • BlogIcon 비프리박 2010.03.10 17:58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많이 들어본 듯한 느낌은 신경숙이 그만큼 인기인이라는 뜻일 거구요.
      아직 이 소설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시다면, 앞으로도 쭈욱 그러심이 나을 줄로 아룁니다. ^^
      저는, 집에 있는 다른 책 하나를 결국 안 읽게 될 것 같다죠.

  4. 라즈블리토 2010.03.14 01:07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개인의 호불호와 작품의 질은 다른 평가의 축에 놓여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취향은 아니지만, 신경숙 작가는 작품을 쓰는데 있어 본인의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작가중의 한명이죠. 모호하고 불안한 정서가 글의 서정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제가 신경숙 작가의 출판된 모든 작품을 아마 거의 다 읽은걸로 아는데. 전 읽을때마다 참 제 취향은 아니지만, 어떤 것이 신경숙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지 그 정서는 알것 같다는 느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 들더라구요
    (정말 지나가던 길인데, 몇자 남겨봅니다)

    • BlogIcon 비프리박 2010.03.14 06:06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작품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와 작품의 질은 다른 문제겠지요. 맞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적으려고 했던 것은,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읽으려고 시도한 것이었으나
      읽기가 참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공감을 못 불러일으켜서요.
      왜, 그런 작품들 있잖아요. 다들 대단하대서 봤는데 나한테는 영 아닌 그런 작품들요.

      제가 신경숙을 어떻게 읽었든 신경숙은 대한민국에서 꽤나 인기 있는 작가임을 인정합니다.
      그거야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와 관계 없는 차원의 문제니까요.

      라즈블리토님이 대단해 보입니다. 진심으로요.
      신경숙의 작품을 거의 모두 읽으셨다는 점만으로도 그런 말씀 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게다가 라즈블리토님의 취향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작가의 책인데도 거의 다 읽으셨다니.
      멋지세요. 솔직히 저는 제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렇게 하기 힘들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제 독서의 폭이 협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기회가 되면, 신경숙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그게 뭔지, 알기 위해서라도,
      신경숙의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지나가던 길이신데, 진심이 담긴 답글 남겨주셔서, 여러가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5. 콩가루 2010.04.25 22:39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꽤나 인기있는 작가라는 말에는 역량있는 작가라는 말도 포함이 되어 있는지..

    외딴방에서 전해져왔던 그사람의 슬픔이 아직도 느껴지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

    • BlogIcon 비프리박 2010.04.26 01:02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인기가 어느 정도 역량을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요.
      사실 역량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어필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요.

      외딴방에서 뭔가 삘이 제대로 왔군요?
      혹시 읽게 되면 감안할게요. 감사합니다.

  6. d 2011.06.26 09:38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너무나도 개인적인 감상 같네요..

    저 또한 최근의 신경숙을 상업작가 혹은 영원한소녀감성 그 이상으로 보지 않습니다만

    신경숙의 초기작의 우수성은 인정합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 문인들이

    신경숙의 최고작품들을 [외딴방], [깊은슬픔], [풍금이 있던자리]

    이렇게 꼽는데 ... 그 중에서도 [풍금이 있던자리]는 작품성 대중성을 모두 잡은 수작입니다

    바로 이 작품으로 제16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고요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못해 넘치는 책인데

    애초에 신경숙에 대해 과한 편견을 가지고 작품을 읽으신게 아닌가 싶네요

    혹은 풍금이 있던 자리가 약간 읽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어서 이해를 하지 못하신건지도 살짝 의문이 가기도 하고요

    • BlogIcon 비프리박 2011.06.26 09:49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원래 감상은 모두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요?
      개인적이지 않은 감상이라면 그게 감상일까요.
      그리고 무슨 상 수상이 모든 독자에게 어떤 감상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죠.

      애초에 밝혔듯이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읽고자 했으나
      신경숙은 저에게 어필이 안 되더란 이야기가 글의 취지인데
      그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겠죠?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씀하시나요?
      늘 접하는 구성은 아니지만 어려운 구조까진 아니거든요. 적어도 저에게는요.
      혹시 호평이 아니면 그게 '오해' 또는 '이해못함'에서 나온다고 보는 건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