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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씨는 잘 모르겠지만 공수특전단이란 게 단순한 군인이 아니지요. 명령만 내리면 어디에나 어느 사람이나 쑥밭을 만들든가 살해하든가 무엇이든지 해치우는 ... 말하자면 특수 부대죠. 전쟁이 났을 때 적의 심장부에 투입되어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요. 그들은 아군의 승패와 관련 없이 적진 속에서 죽음을 불사하는 철의 인간들이지요. 이런 임무를 같은 동족에게 해치웠으니 말이나 됩니까? 아마 공수부대가 생겨난 이후로 세계적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순분은 몸을 떨었다. 그녀도 보아서 안다. / 그날은 18일, 피의 일요일이었다.
(223쪽, 홍희담, <깃발>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은 악몽과 같은 시기가 소설로는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을까. 10여년 전 그런 의문을 가지고 구입했고, 2009년 여름 다시 꺼내든 '5월광주' 단편소설집입니다. 공선옥, 이순원은 이 책을 구입하던 당시만 해도 젊은 작가 소리를 들을 만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대한민국의 중견작가가 되어 있군요. 

공선옥 외 7인, 꽃잎처럼:5월광주 대표소설집, 도서출판 풀빛, 1995.
   * 본문 380쪽. 총 398쪽.

'5월 광주'에 관해 (다시) 읽기로 작정하고 시도했던 3번째 책이었습니다. 그런 시도로 앞서 읽은 책은 ▩ 광주여 말하라:광주민중항쟁 증언록 ▩과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였죠. 2009년의 시도는, 본의 아니게, 이렇게 세 권으로 일단락되어 버렸습니다. 이어서 '5월 광주'에 관해 계속 읽는 것은 아마도 올해 5월에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09년 6월 22일(월)부터 25일(목)까지 4일간 읽었습니다. 아주 바쁜 시험 기간의 폭풍 속이었는데요. 그중 3일은 폭풍의 눈 한가운데인 것 같은 잠잠한 시기여서 책을 좀 읽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소설들이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소설들입니다.


꽃잎처럼 - 10점
   공선옥 외 지음 / 도서출판 풀빛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를 보려면 표지나 제목을 클릭! ^^
 


      꽃잎처럼(5월광주 대표소설집), 빛나는, 광주항쟁의 다양한 문학적 형상화! 


공선옥, 정찬, 이순원, 최윤, 홍희담, 정도상, 윤정모, 임철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소설가들.
이들이 대략 20년전 젊은 시절(?) 썼던 5월 광주 관련 단편소설들을 모아놓은 소설집.


 

1. 이 책은?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영화 <꽃잎>으로 잘 알려진,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가 들어있는 단편소설집이자,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넋"으로 시작하는 노래가사를 떠올리게 되는 제목 「꽃잎처럼」을 달고 있는 5월광주 단편소설집입니다.

우리 소설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알만한 작가들이 5월 광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단편소설 총 8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억에 남거나 인상적인 소설로 구성된 단편집니다.

   1. (공선옥)  목마른 계절 (1993)
   2. (정찬)     완전한 영혼 (1992)
   3. (이순원)  얼굴 (1990)
   4. (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1988)
   5. (홍희담)  깃발 (1988)
   6. (정도상)  십오방 이야기 (1987)
   7. (윤정모)  밤길 (1985)
   8. (임철우)  봄날 (1984)
   [작품 해설] (신승엽) 광주, 우리 문학의 `양심'의 마지막 보루

1995년 출간된 이 책은, 아마도 1980년 이후부터 그때까지 나온 '광주' 관련 단편소설들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것들을 골라 수록한 듯 합니다. '광주'에 관한 인상적인 소설들이 담겨 있는 이 소설집은, 애석하게도, 알라딘에서 현재 절판으로 확인됩니다.

  
 
2. 누군들 5.18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만 얘기하고 그만 덮어두고 그만 울고 그만 그만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역사란 그런 거야. 갑오년이 따로 없고 기미년이 따로 없다구. 그러드키 오일팔이 따로 있는 게 아냐. 기미년의 삼일운동은 임신년에도 삼일운동으로 이어지듯이 경신년의 오일팔은 계유년의 오일팔로 새로 시작되는 거라구. ... 역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거거든. 그런 거거든."
현순씨는 계속계속 거거든, 거거든 하고 말했다.
(37쪽, 공선옥, <목마른 계절>에서)

공선옥의 단편에서 현순씨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역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말은 이땅에 발 붙이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는 아니리라 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5월 광주에서의 항쟁과 보이게 보이지 않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살의 원흉들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학살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이들 또한 다른 의미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5월 광주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알아야 할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겠죠. 이같은 '구속'은 사실,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안고 사는 '상처'에 비하면 천배 만배 가벼울 거란 생각을 합니다.
 
 

 
3. 소설 속 사실적으로 재현되는 '5월 광주'

5월 18일, 그날도 (인쇄소 식자공) 장인하는 지하실 작업장에서 글자 맞추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 그는 구부렸던 허리를 폈다. 이 시간이면 그는 늘상 가벼운 산책을 했다. ... 장인하는 지하실 계단을 올라와 뒷문으로 통하는 복도로 느릿느릿 걷는다. ... 그러나 5월 18일 그날은 달랐다. 그가 막 뒷문을 여는데 거친 숨소리와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세 남자가 막다른 길의 담벼락에서 파랗게 질려 있었고, 그들을 향해 곤봉과 총을 움켜쥔 두 군인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달려든 군인들은 총의 개머리판과 곤봉으로 남자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비명과 함께 붉은 핏물이 튀어 올랐다. 장인하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렀고, 두 군인은 몸을 돌렸다.
(71쪽, 정찬, <완전한 영혼>에서)

어쩌면 이 책에 작품을 실은 소설가들은 나름의 취재를 하지 않았을까. 때로는 눈물로 얼룩지고 때로는 신음으로 얼룩진 취재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읽은 5월 광주 관련 사실을 기록한 몇몇 책의 기록들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고 어우러지니까요. 현실은 소설 속으로 젖어들고 소설의 한 장면은 그것이 바로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소설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이 하나가 되는 지점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소설적 형상화! 이 책이 가진 강력한 장점이자 유인동기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몇몇 소설도 있긴 합니다만. ^^;)
 
 

 
4. 광주학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은 어떻게 살아갈까.

광주 문제로 사사건건 부담을 주던 그 동료가 지방 영업점으로 발령을 받아 나가던 날에도 (1980년 5월 공수부대원이었던) 그는 오래도록 (광주 다큐멘터리) 테이프를 보았었다. 그러나 그가 없다고 하여, 그리고 끝내 어느 테이프에도 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끝까지 그 일과 나는 상관이 없을 수 있을 것인가.

"야이야. 지발 좀 그마하구 자래두."
"예. 어머니 먼저 주무세요."
"에미두 그거 볼 만큼은 봤다. 어디두 니 얼굴 안 나온다니까."
"알아요. 저도." ...

그는 비디오를 껐다.
오늘도 그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142쪽, 이순원, <얼굴>에서)

이순원이란 이름을 다시 봤습니다. 잘 몰랐던 작가입니다. <얼굴>에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의 '그 후 삶'을 소설의 축으로 택한 것도 신선(?)했지만, 뭐랄까, 진득하게 스토리를 구성해가는 이 작가는 도대체 몇살일까? 그런 궁금증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순원은 생각만큼 나이가 많지 않습니다. 1957년생. <얼굴>이 발표된 것이 1990년. 그러니까 <얼굴>은 그가 34세일 때 쓴 소설입니다. 소설을 나이로 쓰는 것은 아니겠죠. 이순원은 나이의 벽을 잘 뛰어넘은 소설가이자, 스토리 구성과 형상화에 탁월한 작가라는 평을 해주고 싶습니다. 적어도 이 작품만 놓고 본다면 그렇습니다. ^^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5. 5월 18일 광주는 어땠을까. 밤하늘은, 바람은, 별은, ...

순분은 복도를 걸어 나가다가 김두칠을 만났다. 그는 엉겁결에 순분의 손을 꽉 쥐었다. 순분의 눈물이 김두칠의 손등에 떨어졌다. 김두칠은 손을 놓고 그녀의 등을 밀었다. ...
창문으로 5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시가지는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하늘과 땅이 검은 장막을 하나로 휘두른 것같이 분간이 없었다. 별똥별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졌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들은 가로수가 서걱이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풀 향기 같은 냄새도 맡은 것 같았다. 김두칠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
(272쪽, 홍희담, <깃발>에서)

그날 광주에서도 별똥별은 포물선을 그렸을테고, 그날 광주에서도 바람은 불어왔을테고, 그날 광주에서도 가로수가 서걱였을테죠. 김두칠의 말을 빌어, 그렇게 좋은 세상인데, 어떤 자들은 공수부대원을 투입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고 ... 하늘과 땅이 울게 만들었던 것이죠. 홍희담의 단편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서 저는 5월 그날을 읽었습니다. '악마'들이 생지옥으로 만들지만 않았으면 그날은 얼마나 온화하고 평온한 5월의 하루였을까. 홍희담의 소설에서 5월의 그날은 일상성을 획득합니다. 그래서 '5월 광주'는 더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역설적으로.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리뷰의 1번 항목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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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211 목 05:10 ... 06:20  서두,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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