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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포스트를 올리면서 간간이 지적했던 국내 번역 출판의 행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국내 번역 출판물들이 보여주는, 고쳤으면 하는, 고쳐야 할, 습성(?)에 관한 이야기를
별도의 포스트로 적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아래의 국내 번역본을 보면서 그 생각은 더욱 커졌습니다.

<국내 번역본>
쑨수윈,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이순주(옮김), (주)에이지21, 2009.   * 총 338쪽.
   * 부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영문 원저>
Sun Shuyun, A Year in Tibet : A Voyage of Discovery, HarperCollins Publishers, 2008.
   * 총 242쪽. 부제 및 출판 연도는 북쇼핑 웹사이트 아마존에서 확인함. (해당페이지)

이 책의 국내 번역본을 통해 바라본, 국내 번역 출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포스트의 내용은, 그러므로, 이 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뿐더러,
따지고 보면 이 책은 매우 양호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국내 번역본에 관한 몇가지 생각 -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를 통해 바라본.

 





 

1. 번역서는 왜 원저작에 관한 기본적인 세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일까.
 
국내 번역본들에 만연한 문제점 가운데 가장 먼저 지적해야할 문제점입니다.
이 책의 경우, 원저가 몇년도에 출간되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책의 어디에도 써있지 않습니다. 저자 쑨수윈은 BBC 등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는 중국인인데요. 원저가 중국어로 쓰여졌는지 영문으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번역본들이라고 여기서 예외는 아닙니다. 또한 원저를 출간한 출판사명을 밝히지 않습니다. 국내 번역본 출간을 위한 저작권 에이전시는 대개 명기하지만 원저 출판사는 알 수 없는 것이죠.

제 경우, 이 같은 도서 관련 세부적인 사항들을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들어가서 확인합니다. 왜, 국내 번역본들은 원저에 관한 충실한 설명이 없는 것일까요. 이왕 번역을 할 거라면 독자들에게 원저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2. 원저의 표지는 책의 일부가 아닌 것일까.
 
위에서 보듯이 국내 번역본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의 표지와 원저 <A Year in Tibet>의 표지는 사뭇 다릅니다. 원저가 지역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번역본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책은 티벳의 종교에 국한된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닙니다.

국내 번역본의 원저를 접하고서 이런 저런 이유로 원저의 상세 정보를 찾아볼 때,
거의 항상(?) 원저의 표지와 다른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서평을 올린 바 있는 George M. Taber의 <파리의 심판>이나 루이지 조야의 <아버지란 무엇인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http://befreepark.tistory.com/668 & http://befreepark.tistory.com/657 참조.)

원저의 표지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번역본의 표지를 접할 때, 왠지 모르게 항상 '좀 약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표지 이미지의 저작권 문제가 개입되는 것인지, 번역본 출판사의 예술적 취향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능한 한, 원저의 표지를 그대로 살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3. 번역서의 제목이 원저의 제목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라는 책 제목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티벳에서의 일년>입니다. 가끔(? 자주?) 접하는 행태인 것 같은데요. 번역본을 출간할 때, 제목을 아예 바꾸는 것이지요. 대개, 본문에서 출판사 임의로 또는 번역자가 인상깊었던(?) 대목을 따와서 번역본의 제목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책 속의 한 부분에서 따왔는데요. 그 일화를 좀 살펴 봅니다. 

17세기에 창양 갸초라는 소년은 티베트 최고의 강력한 통치자였던 제5대 달라이라마의 환생자로 간주되었다. [그는] ...온갖 길조와 함께 달라이라마의 환생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창양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는 승복을 입지 않으려 했고 사원의 온갖 규율을 어겼다. ... 티베트인들처럼 너그러운 사람들에게도 창양의 생활방식은 믿음에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일부는 그가 정말 제5대 달라이라마의 환생자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폐위되어 스물네살에 세상을 떠났다.
(80~82쪽, <환생>에서)   * [   ]는 비프리박에 의한 것.

다음은, 그 창양 갸초가 남긴 술과 여자들에 관한 수백편의 시 가운데 어떤 시입니다.

다르마를 향한 생각이
연애 감정만큼 강렬하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지니
바로 이 몸에서, 바로 이 생에서.
(81쪽, <환생>에서)   * 굵은 글씨 강조는 비프리박.

위의 시에서 국내 번역본 제목을 가져온 것이죠.
이 제목은 원저가 담고자 하는 내용을 많이 축소하고 있는 제목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국내 번역본의 제목이 등장한 원문의 맥락도 좀 그렇습니다. 제목 자체가 너무 종교적인데다, 티베트인들에게 좋은 감정을 얻지 못했던 사람의 시라는 것이죠. 쑨수윈이 담고자 했던 책의 내용과 많이 동떨어진 제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원저의 제목이 훨씬 원저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티벳에서의 일년(A Year in Tibet)>! 그리고 부제인 "A Voyage of Discovery"(!)도 참 멋들어진 표현입니다. 책을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이에 비해 국내 번역본의 부제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은 참 앙상합니다.

왜, 번역본 출판 시에 함축적이고 멋진 표현들을 다 내다버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묻게 되는 것입니다. 번역서의 제목이 원저의 제목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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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과 읽기 힘든 번역문체와 같은 번역 자체의 문제도 독자들을 국내 번역서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위에 지적한 번역 출판의 행태도 독자들을 번역서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해야할 번역이라면, 그리고 출판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번역인 만큼, "할려면 좀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독자를 생각해서라도요.


다시 한번 짚어두지 않을 수 없군요. 이상에서 지적한 내용은,
<티벳에서의 일 년> 국내 번역본을 통해 바라본, 국내 번역 출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포스트의 내용은, 그러므로, 이 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뿐더러,
어쩌면 이 책은 매우 양호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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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812 수 23:40 ... 00:10 초고작성
2009 0813 목 05:40 ... 06:50 비프리박


p.s.
2009 0814 금 09:00 예약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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