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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화초를 키웁니다. 손이 많이 갑니다. 잊지 않고 물도 주어야 하고 때 되면 분갈이도 해주어야 합니다. 지겹거나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간혹 힘든 때가 있습니다. 녀석들이 생명을 다하고 시들어 죽는 경우인데요. 제가 지식이 딸려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거나 바빠서 정성껏 보살피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슬픈(!) 일을 접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한편, 잡초는 베란다에 언제 숨어들었는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왜 어떤 식물은 잘 챙겨주어도 죽는데 어떤 식물은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 잘도 자라는 걸까. 왜 어떤 식물은 공을 들여 키웠음에도 세상을 하직하는데 어떤 식물은 그닥 챙겨준 것도 없는데 잘 살고 있는 걸까. 반문이 들었습니다. '얘'를 안 키우고 '쟤'를 키우면 어떨까? 왜 '쟤'를 안 키우고 '얘'만 키우려고 하는 걸까? 꼭 '쟤' 말고 '얘'를 키워야 하는 걸까? 그래, 그래, 애써 키워도 시들어 죽는 녀석 말고 대충 놔둬도 푸릇푸릇 잘 크는 녀석을 키워보자! 는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 '잡초'를 키우면 어떨까? 화초냐 잡초냐는 누가 정하나? '잡초'에 관한 재고. ▩
소리 소문 없이 베란다에 들어와 자라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
꼭 이름 난 화초를 키워야 할까? 이런 '잡초'를 키우면 안 되는 걸까?
'잡초'를 위한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잡초 전용 화분? ^^
'잡초'를 키우냐? 는 핀잔을 들을 수 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잡초'란 게 뭔가요? 쉽게 말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풀이 바로 잡초일텐데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식물은 내가 원하니까 잡초가 아닌 것'이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한편으로, '이름 없는 풀'이라는 뜻으로 '잡초'를 키우냐? 고 말할 사람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우리 주변에서 보는 어떤 식물인들 이름이 없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모두 라틴어로 된 긴 학명을 가지고 있을 거다! 에 한 표 던집니다. 우리가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 이름이 없지는 않을 거다! (^^) 진짜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식물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그건 키울 필요 없는 '잡초'가 아니라 식물학회 같은 곳에 보고해야 할 '희귀종' 식물이 아닐까요? 요컨대, 내가 키워보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그 풀이나 꽃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며, 이름이 널리 알려진 종이냐 아니냐로 잡초의 경계를 그을 일도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단 겁니다. ^^ 그리고 '이별'에 익숙하지 않은, '이별'이 훈련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애써 키워도 시들어 죽는 화초를 키우기보다는 대충 냅둬도 푸릇푸릇 잘 자라는 잡초를 키우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지 말입니다. ^^ 저희집 베란다에는 지금 두 종의 '잡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위 사진이 그 중 하나고요. 다른 종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물론, '잡초'가 아닌 걸로, 율마도 있고 꽃잔디도 있고 벌개미취도 있습니다. (돌단풍도 있었는데 얼마전에 생명을 다했고) 지난 겨울 운명하신 것 같았던 스파트필륨은 고작 남은 뿌리에서 다시 맹렬히 부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위취도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바위취는 얼마전에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키운 게 먼저, 그리고 이름을 알게 된 건 나중이 되었군요. 소위 말하는 '잡초'에서 '화초'로 승격한? 하핫. 어쨌든, 이런 '이름 있는' 화초들 외에 두 종의 '잡초'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잡초가 아니란 생각으로요. 이 녀석들도 이름이 없지 않을텐데 그들의 이름은 조만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학 온 새 친구의 이름을 알게 되듯 자연스럽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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