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통 마을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쓰레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현대화되었다는 인근 마을] 레에는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다. 또한 전통적 경제체제에서 가치를 인정받던 지역의 자원들은 점점 무용지물이 되어 가고 있다. (이 책, 222-223쪽, <13. 중심으로의 이동>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 표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걸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람직한 미래가, 오래된 과거로 치부해 버린 거기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부제의 '라다크'라는 곳은 히말라야 첩첩산중의 어떤 공동체 마을의 이름? 이런 저런 의문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내심 기대하며 펼친 책입니다. '현대'를 근본적인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시도가 멋지다 못해 통렬했습니다. 오랜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양희승(옮김), 중앙북스, 2007. * 본문 337쪽, 총 364쪽. * 원저 Helena Norberg-Hodge, Ancient Futures:Lessons from Ladakh for a Globalizing World, 1992. 기억으로, 조한혜정 교수의 「다시 마을이다」를 읽다가 알게 되어 읽은 책입니다. 책은 책을 소개하고, 한 책은 다른 책으로 연결되고, 독서는 또다른 독서를 부릅니다. 독서도 생태계처럼 서로 얽혀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입니다. 읽는 데 꽤나 오래 걸린 책입니다. 독서 속도가 평소의 절반으로 떨어져 읽는 데 오래 걸리기도 했고, 이 책 읽는 중에 설 연휴가 끼어(5일간 전혀 책을 못 읽었음) 독파에 12일이 걸린 셈이 되었으니까요. 2011년 1월 28일(금)부터 2월 8일(화)까지 읽었습니다.
|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현대'는 과연 바로 가고 있나.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현대' 혹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망가지기 전과 후의 라다크.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람직한 미래가, 오래된 과거로 치부해 버린 바로 거기에 원형이 있지 않을까.
1.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 책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 관해서는 인터넷 서점 책 소개 페이지에 잘 정리된 게 있군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 본래 스웨덴과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수학하던 학생이었던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자신의 학위 논문을 위해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를 방문했다. 그는 논문을 위해 꾸준히 라다크와 외부를 드나드는 과정에서, 라다크의 문화와 철학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유입 과정에서 라다크의 전통 문화와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현대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강연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이 책은 그러한 라다크를 원형과 변모된 모습으로 대비시켜 적고 있습니다. 냉정한 목격담이 아니라 라다크라는 자립적 공동체가 변모하고 붕괴되어 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저자의 감정이 묻어나는 따뜻한 기록입니다. 2. 라다크? 이곳의 이름인 '라다크Ladakh'는 '라 다그스La Dags'라는 티베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뜻은 '산길의 땅'이라고 한다. 히말라야의 그늘에 가려 있는 이곳은 이리저리 얽혀 있는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 싸인 고원지대에 있다. 이곳에 처음 거주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은 북부 인도의 몽족과 길기트의 다드족 이렇게 두 아리안 부족이었다. ...
문화적인 측면을 보면 티베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라다크는 종종 리틀 티베트라 불리기도 한다. (51쪽, <1. 리틀 티베트>에서) 생소한 이름 라다크는 딱 첨 보는 순간 티벳과 히말라야가 떠올랐는데 제 연상이 맞았습니다. 티베트 관련해서 제가 최근 읽은 책이 두 권 있다는 이유로 '리틀 티베트' 라다크는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리뷰글 → 보러가기 , 「세 잔의 차」 리뷰 → 보러가기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언어학적 관심에서 라다크를 찾았던 것인데 그만 그곳의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양식에서 강렬한 인상과 깨우침을 얻습니다. 언어학에서 사회운동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입니다. 3. 라다크에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원형을 보다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아주 오랜 세월 모든 것을 재활용해 왔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열악한 자원만을 가지고 라다크의 농부들은 거의 완벽한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
내가 라다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지속가능성' 혹은 '생태학' 같은 개념들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놀랍게 적응한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가 속해 있던 서구의 생활양식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76, 77쪽, <2. 대지와 함께 하는 삶>에서) 지역이 고립되는 일을 가정할 때 현대 사회는 생존할 수 있을까요. 소위 라면으로 대표되는 공산품 위주의 소비재를 다 소진하고 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현대 사회는 '공존'을 외치긴 하지만 현실에선 너무 '의존'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적하고 있는대로 "열악한 자원만을 가지고도 거의 완벽한 자립"을 이뤄내는 것에 우리의 미래가 바탕을 두는 게 바람직합니다. 지역이 고립되어도 생존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가정인데,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현실이었죠. 거대 규모의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아닌 마을 공동체 속에서의 '공존'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노르베리 호지는 히말라야의 라다크 마을에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원형을 봅니다. "라다크 사람들에게 있어 최우선이 되는 문제는 '공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110쪽). 4. 생태적 독립적 전통사회가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다 실제 그들[라다크 사람들]이 외부세계로부터 구해야 하는 것은 소금뿐이고 그것은 교역을 통해서 충당[했었다]. 그들이 화폐를 사용하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인데 주로 귀금속이나 장신구를 구하는 때다.
그런데 그러하던 라다크 사람들이 갑자기 국제 화폐경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위한 영역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라다크라는 곳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6-197쪽, <10. 세상을 움직이는 돈의 힘>에서) 헬레나는 불과 십수년 만에 라다크 마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철저히(처절히?)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목도합니다. 그 구체적인 면면은, 우리의 소위 '전통 마을'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 개발'이 일어나고 '세계 경제'에 편입되고 외부의 결정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상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그런 라다크 마을의 모습에서 헬레나는 '현대'의 본질을 들추어 냅니다. '공존'이 아닌 강요된 '의존'을 봅니다. 어느 곳은 '중심'이고 어떤 곳은 '주변'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들의 슬픈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제2부 변화에 관하여>를 읽는 내내 그래서 우울했습니다. 5. 깊은 인상을 남긴 지적 둘. [서구사회 사람들은] 너무 움직이지 않아 자신의 몸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잊고 있다. 일하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 시간에 그것을 보충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러시아워에 오염된 도시 공기를 가로질러 운전을 해서 헬스클럽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지하실에 앉아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댄다.
(이 책, 189쪽, <9. 화성에서 온 사람들>에서) 삶과 일이 더 이상 운동이 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려면 별도의 운동을 (그것도 돈을 들여서!) 해야만 하는 사회를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요. 헬레나의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댄다"는 말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 관해 핵심을 찌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쳇바퀴의 햄스터랑 뭐가 다른? ㅜ.ㅜ ... 현대 세계의 생활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새로운 생활은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가버리는 효과를 초래한다 ...
(206쪽, <11. 라마 승려에서 엔지니어로>에서) 그래, 우리는 세탁기를 돌려 자유시간을 확보하고, 그래, 우리는 자동차로 이동 시간을 단축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시간이 없는 걸까, 왜! 동네를 가로지르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어디를 가려면 며칠씩 걸어야 했던 그 시절이 왜 지금보다 삶에 더 여유로왔던 걸까, 왜!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리 속을 날아다녔던 반문입니다. 이같은 반문에 대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좋은 힌트와 단초가 되어줍니다. 2011 0228 월 07:30 ... 10:00 비프리박 2011 0228 월 17:00 예약발행 |
반응형
'소통4: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월은 이월? 함께 읽기 독서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한다! 2011년 3월에 읽을 책들 ▩ (16) | 2011.03.05 |
---|---|
▩ 유시민,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역사,역사가,역사학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자! ▩ (15) | 2011.03.03 |
▩ 소설과 음악, 영화와 OST? Memory for you, This is love, Gee, 셋 사랑노래, 공통점은? ▩ (17) | 2011.03.02 |
▩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 뉴캐피털리즘의 슬픈 현실과 희망. ▩ (19) | 2011.02.26 |
▩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서울대생에서 미싱사로, 노동운동가에서 진보정치인으로. ▩ (12) | 2011.02.24 |
▩ 노무현:상식 혹은 희망, 유시민 외 13인이 본,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 ▩ (20) | 2011.02.22 |
▩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02. '일반 백성',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본 한국 사회 ▩ (12) | 201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