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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애국자 또는 주관적 애국자는 정치와 행정 분야에 가장 흔하게 출몰한다. 주관적 애국심에 사로잡혀 심각한 객관적 해국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곳을 주요 서식지로 삼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사업 다변화 전략에 따라 시민단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식지를 크게 확장했다. 그들은 입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자고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파괴한다. 
(109쪽, <국가정체성>에서)


이유제강(以柔制强).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고 했던가요. 유시민의 이 책은 그가 쓴 다른 책이나 글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강함을 능가하는 부드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 부드러움은 때로 내용과 문체에서 아름다움의 경지로까지 발전하고요.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돌베개, 2009.   * 총 379쪽.

이 책은 두번 읽은 책입니다. 무한 소비재처럼 보이는 시간도 알고 보면 유한 소비재이기에, 반면 책이란 것은 무한 영역 확장을 하는 빅뱅의 출판 상품이기에, 제가 책을 두번 읽는 데에는 굉장히 인색하지만, <후불제 민주주의>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두번을 읽었습니다. 

2009년 9월 11일(금)부터 9월 15일(화)까지 5일간 읽은 것이 처음이었고, 이때 또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이 계기가 되어 2010년 들어 책을 다시 꺼내 들었지요. 봄이 막 시작되던 3월 8일(월)부터 3월 13일(토)까지 읽었습니다. 지하철 독서가 제 책읽기의 근간을 이루다 보니, 휴무일인 화요일에는 독서도 쉬었군요. 퇴근 후에 책을 펼친 날도 없진 않습니다만. ^^

유시민의 이 책은 별도의 서평을 작성하지만 않았지, 이미 여러 차례 제 블로그 포스트에서 이런 저런 기회에 언급된 바 있습니다. 

  - ▩ 대통령이 왕인가. 대통령을 침팬지 무리의 짱으로 착각하는 그와 그들. ▩
  - ▩ 박정희가 좋은가? 그렇다면 스탈린은 어떤가, 히틀러는? ▩
  - ▩ 장기하와 얼굴들 <별 일 없이 산다>(붕가붕가레코드) 듣기 한달반! ▩
  - ▩ 올해의 책, 2009년을 빛낸 책들 & 2009년 지하철 출퇴근 독서의 결산! ▩
  - ▩ 지하철에서 책읽기 3개월, 출퇴근 독서 3개월의 결산(2010년 1분기) ▩

하지만 본격 리뷰를 작성한 것은 아니었기에 별도로 리뷰를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서평이 그간 마음의 빚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죠. 어째,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서평은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기회 봐서 2편, 3편의 후속 리뷰를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후불제 민주주의 - 10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좌측 책표지나 위 책제목을 클릭하세요.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그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 저는 이 책에서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을 읽습니다.
2009년에 한번 읽고 2010년에 또 한번 읽은 이 책은, 아마 또 읽게 될 듯 합니다. 


 

1. 이 책은?

유시민의 이 책은 대한민국 현재 삶의 모습에 관한 유시민의 생각을 적은 책입니다. 우리 역사와 사회에 관한 그의 생각을, 헌법이라는 틀을 기준으로 하여 매우 담담히 써내려간 책이지요. 우리의 현재를 바라보기 위하여 때로는 천체물리학적인 지식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홍도의 괭이갈매기나 탕가니카의 침팬지를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며,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다음과 같은 출판사의 책소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유시민이 정치 활동을 접고 지식소매상 유시민, 저자 유시민으로 돌아와 그간의 활동과 현재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며 보낸 1년. 이 책은 그러한 오랜 성찰의 기록이다. 오랜 성찰의 끝에서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다."


 
 
2. 후불제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후불

나는 대한민국이 '아직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채 타고 다니는 승용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 ...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은 모두 거대한 국민 불복종운동이며 저항운동이었다. 도로를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반정부 유인물을 뿌리고 야간에 도심을 행진한 그 모든 것이 당시 존재하던 실정법을 어긴 집단적 불법행위였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정당한 행위였으며, 여기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였다. 그런 행위를 조직하는 데 들어간 희생과 노고는 모두 이 헌법을 획득하기 위해 미리 지불했어야 마땅한 비용을 후불한 것이었다.
(59쪽, <존재와 당위>에서)

민주주의는 비용을 요구합니다. 인류 역사상 어떤 민주주의도 저절로 주어진 적이 없으며 누군가의 시혜로 베풀어진 민주주의 또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민주주의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헌법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면서 다소 '시혜적'으로 얻어진 면이 없지 않습니다. 유시민의 말대로, 그런 헌법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였기에, '사후적인 비용 지불'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멀리 4.19혁명으로부터 가까이 2008년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모든 것이 그런 '후불'의 성격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란 말이 어찌 이리 딱 들어맞는지 말입니다. 
 
 

 
3. 사회적 약자가 부자 신문-정당을 지지하는 아이러니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가진 정당과 정치인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국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골고루 제공하려는 복지 정책에 '좌익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신문들을 읽는다. 그 신문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보수 정당을 더 많이 지지한다. 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기 위해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없애고 깎아주면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재정지출은 삭감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 아이들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사교육을 부추기는 교육 정책을 들고 나온 후보를 지지한다.
(99쪽, <복지>에서)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는 현대적 복지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의 의식이 요구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삶의 조건이 복지를 필요로 합니다. 최소한의 인간적의 생존 조건은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것이 '현대적'인 것이지요. 하지만 복지의 물적 토대라 할 수 있는 국가 예산은 부자들의 세금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데, 부자들은 감세를 외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행히 민주주의 제도는 복지 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 정부를 선거로써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자는 정당과 정책을 지지합니다. 유시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사교육비에 허리가 휜다면서 온갖 선거에서는 국제중 설립과 같은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4. 진보와 보수

동시대를 살면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만, 사람들은 그에 대한 견해와 태도를 달리한다. 괭이갈매기의 동종살해와 인간의 대규모 동종살해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면, 당신은 이미 '진보적'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것이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인 만큼 불가피한 일이며, 무슨 수를 쓰든 간에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별 느낌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보수적'이거나 앞으로 그리 될 가능성이 많다.
(67쪽, <진보와 보수>에서)

진보와 보수는 시대적, 사회적 상대성을 담고 있는 개념이지만, 통시대적, 통사회적 공통분모가 없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에 대한 태도, 경쟁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약자에 대한 입장으로 요약될 수 있겠죠. 유시민의 진보와 보수에 관한 생각 역시 그것을 적은 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에 관한 구분점에 관해, 유시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감나는 예를 들어 설명한 바 있군요.

"진보라는 건 그게 아니고 '차가 좀 비좁나? 그래도 뭐 다 같이 가야 되는 사람들인데 타야 될 거 아이가? 우리도 좀 타자' 근데 못 타게 하니까 ' 왜 못 타 인마, [우리는] 손님 아니야?' ... 진보는 그거고, 보수는 ' 야 비좁다 태우지 마라. 늦는다, 태우지마라' 이거죠. 내가 어릴 때 부산서 출발해서 김해에 오면 김해 정류장에서 늘 요 싸움 하거든요."
(노무현, 진보의 미래, 213쪽, <진보란 무엇인가>에서. [   ]는 비프리박.)
 
 

 
5. 위협받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

2008년 2월 25일을 기점으로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이 다시금 위협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 정부가 세계사의 진화를 거스르는 '문명 역주행'을 시작한 것이다. 호국단체 또는 애국단체 회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애국을 명분으로 내걸고 곳곳에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국가권력과 일부 보수 신문들은 그들을 비호했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는 힘을 잃었다.
(110-111쪽, <국가정체성>에서)

그들의 말로 '잃어버린 10년', 그것을 되찾겠단 일념 하에 급기야 대한민국을 군부독재 시절로 역행시켜 놓고 있는 것이 작금의 슬픈 현실입니다. 2008년 2월 25일 이후 누군가에 의해, 어떤 집단에 의해,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의도적으로 시대 역행이 자행되고 있고,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이자 전제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언론-방송의 자유까지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적을 수도 없을만큼 큼직하거나 사소한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대 역행을 넘어 문명의 역주행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지요. 개인이 꾸는 악몽은 꿈에서 깨면 허공의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2008년 이후 우리 사회가 맞이한 악몽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꼬박 5년동안 깨어날 수 없다는 게 악몽보다 더 악몽스럽습니다.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유시민의 이 책은 대한민국 현재 삶의 모습에 관한 유시민의 생각을 적은 책입니다.
- 우리 역사와 사회에 관한 그의 생각을, 헌법이라는 틀을 기준으로 하여 담담히 적은 책.
- 때로는 천체물리학적인 지식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홍도의 괭이갈매기나 탕가니카의 침팬지를 등장시키기도 하는 이 책에서, 깨달음은 가깝고, 지루함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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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601 화 06:40 ... 08:40  비프리박


후불제 민주주의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유시민 (돌베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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