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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화제다. 화제는 두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시>가 지난 5월 23일 오후(프랑스 칸 현지시간), 제63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국내에서 <시>의 시나리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어떤 심사위원에게 빵점을 받았다는 소식 때문이다.

칸에서 각본상을 받다니! 축하할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빵점' 관련 기사가 궁금하다. 인터넷을 좀 뒤적였다. 늘 그렇듯이 또 '변명과 오해'를 노래한다. 참 편하다. 말도 안되는 짓을 한 후에는 '오해'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 얼굴이 두껍다고 해야 하나.


 
    이창동 시(윤정희), 칸 각본상! 영화진흥위원회 누구는 어떻게 빵점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 자체로만 뉴스였으면 좋으련만
우울하게도 영화 외적 이야기로 더욱 화제다.
(이미지 출처 - 원문보기 )



제일 먼저 접했던 기사를 보자.

영화전문잡지 '씨네21'은 지난 1월 "이창동 감독의 <시>는 (영화진흥위원회)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작 선정 당시 ... "한 심사위원이 '시'의 시나리오에 0점을 줬다"고 전했다. 해당 심사위원은 "<시>의 시나리오가 각본의 포맷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어서"란 이유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 기사원문 )

깜놀할만한 소식이 아닌가. 시차는 있다 하더라도,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탄 시나리오가 누군가에게는 0점짜리로 평가되었다니 말이다. 낮은 점수도 아니고 어떻게 0점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심사위원은 과연 심사위원이 될 자질이 있는 걸까.


영화진흥위원회 쪽에서 변명인지 해명인지가 나왔다.

영진위 관계자는 24일 ... "<시>는 시나리오가 아닌 트리트먼트(줄거리를 발전시켜 핵심 장면을 묘사한 시나리오의 전 단계) 형식으로 서류가 제출돼 심사위원 중 한 명이 0점을 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사업요강에는 지원서류에 `시나리오 및 시놉시스 각 2부`를 첨부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 기사원문 )

영진위는 이날 "심사위원 중 1명이 <시>에 대해 0점을 준 것은 제출서류 요건 미비 때문이었으며, 최고·최하점을 제외하고 평가했기 때문에 0은 평가 점수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 기사원문 )

서류미비로 누군가 0점을 줬다는 이야긴데, 더 이해하기 어렵다. 서류미비라면 누군가 한명이 0점을 주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0점을 주어야 맞는 것 아닌가 말이다. 아니면, 그같은 객관적 기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어서 아예 심사대상에서 배제하든가! 솔직히, 구차한 변명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왜 있잖은가. 오해다, 착각이다, ... 그런 거랑 같은 맥락.

더군다나 지금 0점이 전체 평가 점수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반영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는 모양새도 웃기지만, 누군가 0점을 준 것이 정녕 서류 요건 미비라면 전체 평가고 뭐고 할 것 없이 작품을 배제했어야 옳다. 결국, 그 0점을 준 심사위원의 평가를 배제했다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  


한가지 기사를 더 보자. 0점의 배경에 대해 좀더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당시(1월) 제작지원자 심사에서 <시>가 탈락하자 일부 영화인들은 "영화계 좌파 척결 아닌가"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영진위를 비판한 바 있다. 이창동 감독이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것에 대한 보복성 결과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 기사원문 )

그러면 그렇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임기 보장된 위원장들을 참여정부 시절에 임명된 사람들이라고 불법 면직시키는 자들이 아닌가. 이번 빵점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참여정부 시절 장관직을 지낸 이창동 감독의 작품이라면 빵점을 주는 걸로도 부족한 거다. -_-;;;

이런 식이라면, 입학사정위원이 어떤 학생을 원수의 형제 또는 아들이라고 대학 입학에서 탈락시키는 것도 말이 된다. 이런 식이라면, 논문 작성자가 반대 파벌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고 학위논문을 탈락시키는 것도 말이 된다. 어떻게 얘네들은 머리가 이렇게 돌아가나. 기가 찬다.


일련의 사태 전개에, 왜 안 나타나나 했다, 양촌리 김회장 둘째 아들이 끼어들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영화 <시>에 대해 “각본상은 작품상이나 연기상에 비해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라며 “감독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준 것(상) 같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 ( 기사원문 )

아니나 다를까, 문화부는 5월 25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해명자료를 게재하고 "각본상을 예의상 준 것이라 말한 적 없으며, 평가 절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 ( 관련기사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떤 말을 믿어야 하던가. -_-;

게다가, 현재, 이에 대해 최문순 의원이 "직접 확인한 결과 총 7명의 기자 중 4명이 '예우차원에서 준 것 같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면서 "각본상 수상에 대해 폄하나 깎아내리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유 장관의 발언은 분명했다"고 밝힌 상태다. ( 관련기사 )


어쨌든, 이같은 와중에, 칸의 각본상에 빛나는 이창동 감독은 겸손의 미덕을 보여준다.

영화제 폐막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갖는 기자회견에서 이창동 감독은 "각본상을 줄 만한 다른 영화들이 없어서 상을 받은 것 같다"며 "외국인들이 정서적으로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 기사원문 )

참 대인배다. 주연을 맡은 윤정희가 개인적으로 별로 안 내키는 배우지만, 이창동 때문에라도 영화 <시>를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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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527 목 07:20 ... 08:5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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