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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앞에 선 아들의 시신 앞에서 울지 않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침착함과 인간에 대한 예의 두 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괴테가 시를 짓고, 슈베르트가 곡을 붙일 때, 이 두 천재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88만 원 받고 도저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지금의 20대, 그리고 이보다 더 열악하게 될 10대의 운명, 여기에 우선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한국 자본주의, 급하게 달려오느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법을 배우지를 못했다. (이 책, 204쪽, <88만원 세대와 공진화(共進化)>에서) 어떤 내용이 실려 있을지 대강 짐작한다는 생각에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펼쳤는데 그 내용이 그야말로 "짜잔!"인 그런 책이나 영화가 있죠. 우석훈과 박권일의 이 책이 바로 그랬습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첫 10년의 대한민국 20대를 묘사할 가장 정확하고도 적절한 표현인 '88만원 세대'에 관한 책이다 보니 내용을 짐작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읽는 동안 책의 관점과 내용은 독자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마도 우석훈과 박권일이 이 책에서 견지하고 있는 바와 같은 세대론적 관점은 (제가 알기로) 한국사회에서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우석훈 & 박권일, 88만원 세대: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레디앙, 2007. * 총 328쪽. 2010년 12월 17일(금), 18일(토), 양일간 읽었습니다. 기록을 보니까 첫날은 136쪽에서 끊겼고 다음날 책의 끝을 봤군요. ^^ 흡인력 있는 책이었습니다.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우석훈의 책을 좀더 챙겨읽고 싶게 만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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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박권일의 참신한 세대론, 88만원 세대: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
우석훈, 박권일이 들려주는 「88만원 세대」가 처한 현실, 분석, 전망.
현재 정가 12000원. 읽는 데 걸린 시간 약 8시간. 이 정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나같은 독자에게 호사에 가깝다. (게다가 나는 반값 구입.)
1. 우석훈과 박권일은? 이 책은? 경제학을 공부한 소장학자 우석훈과 <말>지에서 기자로 일한 바 있는 박권일이 함께 쓴 책입니다. 책 표지 날개에서, 우석훈은 "어떤 정파나 집단의 이해에도 구속 당하지 않으면서 경제와 사회, 문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꾸준히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하고, 박권일은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던 섬세한 문학청년이며 ... 경제성보다는 예술성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IMF 경제위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급격히 심화되는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분석합니다. 그 불균형의 최전방에 내몰리고 있는 20대를 키워드로 우리 현실을 외국 사례와 비교함으로써 전세계적 신자유주의 추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보이는 도드라진 모습을 조망합니다. 세대론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쓴 20대를 위한 슬픈 사모곡(思慕曲)이라면 말이 될까요. 2. 상징적 표현 '88만원 세대'의 현실적 의미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월급)은 약 119만 원이다. 여기에 전체 임금과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해서 숫자를 뽑아보니까, 우연의 결과지만 딱 88만원이 나왔다. 물론 이건 '세전(稅前)' 임금이다. 실제 20대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으로 취직한 경우 훨씬 높을 것이고, 여기에 대학생 등 아직 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되지 않은 비율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800만 명 정도의 비정규직 인구를 감안하면 세금을 제하고 평균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임금은 대체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88만 원? '88 꿈나무'도 아니건만 아무튼 숫자는 그렇게 나왔다. (21쪽, <서문>에서)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주로 20대)를 묘사하는 말로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이 부상했습니다. 거기에는 '88만원'이라는 말이 갖는 현실 부합성과 설명력이 작용했을 텐데요. 우석훈은 그 '88만원'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된 구체적인 과정을 위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도출된 경제학적인 임금 액수 88만원은 그렇게 한 세대를 상징하는 대표 명사가 되었습니다. 슬픈 것은 과연 그 88만원으로 대한민국의 차가운 경제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것이 이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20대에게 과잉 집중되고 있다는 것일 거구요. 3. 심화되는 학력간 임금 소득 불평등, 승자독식 시스템 1995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학력별 임금격차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였다. 과거 유럽이 그러했듯, 현대나 포항제철에서 블루컬러 노동자로 10년 넘게 일하면 차도 사고 집도 마련하게 되는, 다시 말해 중산층에 들어갈 수 있었던 시절이다. ...
이 흐름이 전격적으로 꺾여버린 것은 'IMF식 개혁' 이후부터다. 대한민국이 '임금소득 불평등도'에서 악명 높은 미국을 추월해버린 것이 지난 1998년. 승자독식의 룰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게 바로 그 즈음이었다. (194, 195쪽, <고졸, 여성, 그리고 개미지옥>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88만원' 세대의 특징은 소위 '고졸'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에게도 고스란히 포개집니다. '고졸' 블루컬러 노동자로 아무리 일해도 중산층 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회가 된지 오래입니다. 우석훈은 그것이 '대한민국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였음을 지적합니다. '승자독식'의 시스템이 공고해지기 시작했고 (책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고 있듯) 학력간 임금 소득 불평등은 심화됩니다. 여성 노동자라고 해서 여기서 예외는 아니죠. 여성은 오히려 더 심한 불평등에 노출된 상황입니다. 4. 노무현이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노무현에게 돌아가야 할 몫 노무현 시대에 생산비에서 그렇게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 임금을 줄이기 위해서 숙련노동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비숙련공의 단순작업으로 전환해서 대규모로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 * [ ]는 비프리박.
(233쪽, <두번째 장면 : 획일화에 의한 승자독식의 현장>에서)
현재 한국 경제는 큰 공룡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큰 것'들의 약탈장으로 변해버렸는데, 원래 자본주의 경제는 그냥 내버려두면 이렇게 된다. 이걸 사람들이 문화라는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유럽형 경제라고 할 수 있고, 법원이 직접 나서서 약간씩 완화시키는 것이 미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 중앙정부라는 눈으로 본다면 이런 일을 안 했던 것은 노무현 정부가 처음이다. 세계적 독과점화와 프랜차이징 강화는 우리나라 말고도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공룡들만 살아남는 시스템으로 변한 경우는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비극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공룡들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253쪽, <세번째 장면 : 적자생존과 공룡의 비극>에서) 한국에서 비정규직 양산, 승자독식 시스템, '크고 힘 센 것들의 세상'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던 시점에 집권당은 열린우리당이었고 대통령은 노무현이었습니다. 수구세력에 '포위된 권력'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추세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그들의 몫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그 시기에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까요. 우석훈과 박권일은 이에 대해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88만원 세대는 이 시기에 20대로 진입한 젊은 계층인 것이죠. 슬픈 최전위가 된 셈입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사회적으로 '노무현'을 탄생시킨 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386 세대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겨눕니다.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 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 우리의 386은 대학개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청사진이나 의미 있는 노력을 개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이다"(177쪽). 지나온 시절을 돌아볼 때 부정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5. 20대의 운명, 뒤따르는 10대의 미래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 명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평균은 119만 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74%]을 적용하면 88만 원이 된다. ... 하루 8시간을 일하는 20대 비정규직이 한 달에 확보할 수 있는 경제력은 그보다 적다. ... 그리고 50대가 되었을 때, 그나마 비정규직 이자리조차 남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본다면 20대는 평균적으로 전세는 물론 결혼도 하기 어려운 세대이다. ... 그들이 우리의 20대, 그들이 바로 '88만 원 세대'이다.
(143쪽, <10대와 20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에서) 지금의 한국 경제가 택하고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둘 경우 현재의 20대와 미래의 20대가 직면한 현실은 암울합니다. 연애를 할 수도 없고 결혼은 더더욱 꿈도 꿀 수 없는 '초식남' '건어물녀'의 양산은 불가피하고(이미 일정 정도 현실이 되고 있죠), 생존이 당면한 문제가 되는 원시 정글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이죠. 지금의 20대는 이 비극적 현실을 이미 살고 있고 다가올 20대 즉 지금의 10대는 더욱 심화된 비극적 현실을 맞이하게 됩니다. '경쟁 만능' '승자 독식'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정당(이라고 불러야 하나)이 집권을 계속한다면 이 암울한 미래상은 어김없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올 겁니다. 2011 0119 수 04:30 ... 04:55 서두작성 2011 0119 수 10:30 ... 12:00 비프리박 2011 0119 수 14:40 동시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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