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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로 한이 맺힌다. 도대체 부자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즉 한 달 종합소득이 900~100만 원을 넘을 경우 적어도 그 소득의 절반 이상이 되는 세금 말이다)을 물어 서민 복지망을 만들 정부가 한국에는 언제쯤 들어설까. 그러한 정부가 들어서야 지금처럼 지치고 피곤하고 늘 짜증이 나는 비인간적인 생활 패턴이 적어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할 듯하다. 
(이 책, 153쪽,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한다>에서)


'일기'가 획득한 근대성, 인터넷에 (블로그에) 글쓰기가 갖는 의미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의 온갖 현상과 문제들 그리고 세계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 펼쳐지는 박노자의 생각을 접하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그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01, 02> 그리고 3권 격인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와 궤를 같이 하는 책이자 그보다는 더 순발력(? 시의성) 있게 씌어진 글들입니다. 
 
박노자, 박노자의 만감일기: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서, 인물과사상사, 2008.   * 총 367쪽.

러시아 출신의 젊은(?) 사람이 구사하는 (나쓰메 소세키를 연상시키는) 예스러운 의고체 문투, 비동양인의 입을 통해 듣는 불교적인 정서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전지구적으로 만연한 시대에 접하는 사회주의적인 이상. 낯선 모습이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고 그래서 더 강렬합니다. 사실, 박노자를 안 이후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모습이고 더 자주 접해야 할 신선한 충격이지요.

2010년 12월 27일(월)부터 12월 31일(금)까지 읽었습니다. 일년 독서의 대미 혹은 말미를 어떻게 장식할까 하다가 택한 박노자의 책이었습니다. 찬찬히 5일간 지하철에서만 읽었네요. 박노자는 제가 챙겨 읽는 저자 중의 한 사람이라죠. 그의 책을 읽은 것으로는 4권째인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껴 읽기 위해 (구입만 해놓고)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책들이 두어권 더 있다죠.
 


박노자의 만감일기 - 10점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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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의 만감일기>. 넘어서야 할 나, 너, 우리 속의 경계에 관한 생각들.


「박노자의 만감일기」. 그의 이전 저서들의 연장이자 확장. 순발력과 시의성으로 무장한 공유와 소통.


 

1. 이 책은? 박노자는?

이 책은 귀화한 한국인 그러니까 이젠 그냥 한국인이라 불러 마땅한 박노자가 쓴 책입니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을 가르치고 있지요. 이 책은 그가 인터넷 블로그 '박노자 글방'(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에 쓴 자신의 다양한 고민과 번뇌의 흔적들을 모아 엮은 사색(思索)록입니다. 개인과 가정, 역사와 사회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사적인 동시에 너무나 사회적인 사색을 담은 책입니다. 그의 전작들이 그래 왔듯. 

  
 
2. 인터넷에 글쓰는 의미는 열린 주체성의 지향
 
'내면'전체를 '남'에게 다 '개방' 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일부를 '열어놓아' 토론대상이 될만한 민감한 문제들을 놓고 과감히 '소통'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일기쓰기의 묘미다. 그렇게 해서 나홀로의 폐쇄성을 벗어나 '남'과의 '의미의 공유'가 가능한. '열린주체성'으로 가는 것이다. '남'의 의견이 '나'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나'의 일기가 또 누군가의 '내면'에 닿아 수많은 주체들이 하나의 망을 이루게 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인터넷 즉, '타자들 사이의 거미줄'이 지닌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6쪽, <일기를 쓰는 의미에 대하여_번뇌가 깊어지면 '꽃'이 핀다>에서)
 
저 역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박노자의 이같은 생각에 공감하는 바가 컸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이 존재하겠지만 박노자가 적고 있는 '폐쇄성에서 열린 주체성으로 가는 것'이란 지적은 바로 제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추구하는 바인 '소통'과 '공유'를 박노자 역시 지향하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기쁘지만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 글로써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으면 더 기쁘죠. 일기쓰기, 인터넷 일기쓰기, 블로그에 글쓰기가 갖는 의미 그리고 인터넷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박노자의 생각을 책의 초입에서 만났을 때 그 두가지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3. 대학, 자본에 의한 포섭, 자본에로의 포섭
 
프로젝트를 준다 하면, 사외이사 시켜준다 하면, 대학 발전을 위해 돈을 내놓겠다 하면, 거절할 지식인들은 과연 몇이 될 것이며,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뒤에 빵을 던져주는 손에 대해 비판다운 비판을 할 사람은 몇이 될까? 이사회 회의실은 감방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구속력을 행사한다.
(127쪽, <포섭, 감옥보다 더 무서운‥‥‥>에서)
[고대] '삼성관'에서 강의하는 교수에게, 과연 ... 그 무수한 '밀수 사건'이나 '부정 축재'를 이야기할 마음이 생길까? 학교들이 재벌의 부속 사원 양성소가 돼버리면, 결국 교수는 거기에서 '고급 훈련 조교'가 되어서 깊고 창조적인 새로운 이론 탐구 등을 생각하기에 앞서 주인 눈치부터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 [   ]는 비프리박.
(172쪽, <'삼성관'에서 회의를 해본 느낌>에서)
 
급변하는 대학의 위상, 자본에 의해 포섭되는 대학 그리고 교수들, 지양되지 않고 지향되는 자본에로의 포섭 현상.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인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삼성이 지어준 건물, 그런 협찬(?) 못 받아서 혈안이 된 대학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는 더 이상 지향될 수도 없고 지향되지도 않습니다. 박노자의 말대로 "빵을 던져주는 손에 대해 비판"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마 "왜 비판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독립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포섭 영역에서 빗겨 서 있어야 함을 현실로써 반증하는 대한민국 대학의 현실.
 
 

 
4. 칭찬이어야 할 "계집애 같다", 극복되어야 할 "남성의 체면"
 
나로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바로 이 '남성으로서의 체면'이라는 관념이다. 친절하고 자제를 잘하고 말을 부드럽게 하면 남성이 아닌가? 왜 남성은 꼭 자신의 가부장적 '권위'를 담력 과시나 완력 시위로 뒷받침해야 할까? 나는, 이 가부장적 '진짜 사나이' 이데올로기만큼 지구에 피해를 많이 주는 망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로는 "계집애 같다"는 모욕이 아니고 칭찬이 돼야 하는데, 그게 쉽게 안 되는 게 문제다.
(290쪽, <악의 일상성에 대한 명상>에서)
 
'남자답다'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답다'라는 칭찬을 듣는 게 옳다고 봅니다. "여자가"라는 언사만큼 전근대적인 말이 "남자가"라는 말일 겁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에 담긴 내용은 다분히 가부장적이고 위압적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억압 당하는 피해자를 낳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체면과 위신'이라는 허위 의식의 피해자 집단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남성입니다. 탈근대, 포스트모던의 지향점은 이를 상쇄시킬 여성성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자의 말대로 "계집애 같다"는 말은 모욕이 아니라 칭찬이어야 합니다. 
 
 

 
5. 한국 사랑, 나라 사랑
 
권력과 지배, 돈이라는 일차적인 맥락을 무시한 '한국 전체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성립이 될 수 없는 개념인 듯하다. ... 자신을 우주의 중심 쯤으로 인식하는 '높으신 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쳤으면서도 벌이가 시원치 않은 탓에 일을 그만두고 집에 가 누워 잘 수도 없는 과로한 택시 운전기사를 보면 정이 절로 든다. ... (213쪽) 한국을 사랑하느냐고? 글쎄, 나는 관악산의 숲 냄새, 연주암 쪽에서 내려다볼 때 사위에 다 보이는 청구의 신록을 무척 사랑한다. 곳곳에 보이는 군사 시설, 철책은 아주 혐오하지만. (215쪽)
(<한국 사랑?>에서)
 
저 역시 '한국'을 사랑합니다만 그 '한국'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업주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복지 예산을 깎아 토목건축을 일삼는 토건 마피아들도 포함될 수 없습니다. 결식아동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면서 '복지는 포퓰리즘'이라고 떠들어 대는 파렴치한들이 포함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 역시 '한국'을 사랑합니다. 매일 아침 졸린 눈 비비며 출근 지하철에 오를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사랑하고 입시에 찌들어 꿈 따위 잊은 지 오래인 어린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한국의 산과 사계절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한국의 바다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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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111 화 06:20 ... 08:3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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