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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소련 출신, 귀화한 한국인. 그를 알게 된 것은, <한겨레21>을 비롯한 몇몇 매체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지면의 제약 때문에 짧게 짧게 접한 그의 생각을 서론-본론-결론이 있는 책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01, 한겨레출판, 2001.   * 총 301쪽.

이 책을 구입한 것은 꽤나 오래전인데(!), 몇년이 흐른 2009년 1월이 되어서야 책꽂이에서 꺼내들게 되었습니다. 1월 13일부터 20일까지 읽었구요. 시기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와 안정효의 구작 단편소설집 <미늘> 사이에 끼워 읽은 책입니다. 두툼하기도 하고, 글의 종류와 무게가 소설처럼 읽기는 힘든 책이다 보니, 읽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1 - 10점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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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01, 한국사회를 보는 객관적인 관점과 시야


박노자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제 박노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으로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책 내용에서 2001년 출간된 책이라는 시차가 느껴지지 않는 건 슬프다.
01권의 인기에 힘입어 2011년 1월 현재 03권까지 나와있다. 다 읽은 상태. ^^


 

1. 이 책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01>은 12개의 글이 4부로 나뉘어 실려있습니다. 책의 한꼭지 한꼭지에서, 하나하나, 또박또박 한국사회를 들여다 봅니다. 현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이방인었던 지식인의 눈으로, 수구꼴통들이라면 좌빨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근본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 봅니다.

책에서 그는 독재자에 대한 숭배, 종교에 대한 패거리주의, 폭력에 대한 미화, 전근대적인 대학 그리고 제국주의적인 인종차별, ...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과 아픈 치부를 드러냅니다. 아픈 곳을 드러내는 것은... "치료"(271쪽)를 하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 박정희 숭배

박정희를 변호하려는 사람들은 ... 외화벌이를 위해 베트남 전쟁에서 4-5천 명에 이르는 한국 젊은이가 죽었다 해도,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 현장에서 노동자 100여 명이 사고와 과로로 고통을 받아 죽었다 해도, 1년에 근로자 몇백 명이 과로사한다 해도, 일단 우리가 지금 ... 배불리 현대적으로 살지 않느냐는 식의 논리다. ... 고통을 받아 죽은 희생자의 유족을 비롯한 '고통 담당층'이 지금 현대적으로 잘 살 확률보다 계속 고통을 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이 논리는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37-38쪽,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 중에서)


박정희 변호와 숭배는, 박노자의 말대로 '우상숭배'이고 '독재자에게 후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쩜, 이렇게 제가 하고 있던 생각을 잘도 짚어내고 있는지, 감탄을 하면서 읽었던 부분입니다. 독재자 숭배라고 할 수 있는 현상과 행태는, 저도 개인적으로 안타깝고 열받는 부분이거든요.

'희생'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말하는, 박정희 숭배자들은 제발이지... 본인들이 목숨 바쳐 희생하면서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희생'은 어차피 나의 희생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희생'이 나의 희생이 될 가능성이 극히 적으니까, 독재자를 숭배할 수 있고, 숭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발이지, 숭배자 본인들부터 좀 희생을...!


 

3. 청춘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돈벌이와 취업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나는 생계나 미래에 대한 별다른 걱정 없이 한시(漢詩)와, 유교와 불교의 경전을 탐구하며 지낼 수 있었던 소련 시절 말기의 나날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 수 있었다. ... 러시아에서 나의 후배들도 지금 이백이나 왕유보다 선망의 대상인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영어회화 공부에 더 열을 올리고 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24-25쪽, 짧고도 긴 한국과의 만남... 중에서)


물론,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이백과 왕유를 읽고 음미하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제가 읽는 책의 러시아 출신 저자가, 동양의 한학을 공부하며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이름이 박'노자'인 것도 동양의 한학을 공부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공부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다는 대목에선 동질감(^^) 비슷한 것도 느꼈고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 그것보다는 그 자체로서 즐겁고 목적이 되는 공부... 저도 그것을 원하거든요.

그의 이같은 생각은, "그들은 러시아어 자체를 배우는 것보다는 숙제를 잘 평가받고 시험을 무난히 통과하는 것을 최상의, 그리고 거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라고 하는 탄식(251쪽)에서도 확인됩니다.



4. 연대와 상생

약육강식을 위주로 하는 천민 자본주의의 공간에서 한 개인으로서 패배와 죽음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그들(몽골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은 절대적인 상부상조로 승부한다. / 도덕이라는 것이 배고픔과 약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가 누구든 간에, 그 말은 만세의 진리다. ... (몽골계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약자의 무기는 배부른 <조선일보> 관계자들이 말하는 '야성미'가 아니고 상생(상생)이다.
(259쪽, 서울의 이방인 중에서)


박노자의 또다른 지적 "배고픈 자가 배부른 자보다 관대하다는 것이 이 세상의 원칙인가 보다."(262쪽) 라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배고픈 자가 배부른 자보다 '도덕적'이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살짝 비틀면^^ '빈자들의 '빈곤의 철학'은 있을지언정, 부자들은 '철학의 빈곤' 밖에 없습니다. -.-;

'상부상조'를 비롯해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택할 수 밖에 없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방민족'의 기개, ... 어쩌구 하는 수구꼴통들의 단골메뉴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5. 인종주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쉽게 알 만한 사실이지만, 1876년에 강화조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조선에 '인종차별'은 물론 '인종'이라는 말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272쪽) / 사실 인종주의의 수용은 조선의 개항(1876-1884)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 그 당시에 인종주의는 조선의 지배층이 접촉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핵심 이념이었다.(275쪽) / 현재와 같은 한국인들의 '백인 콤플렉스'와 '동남아시아 검둥이'에 대한 차별의 뿌리를, ... '인종적' 멸시에 찬 개화기 지식인들의 숭미 사대주의적 사유구조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287쪽)
(272, 275, 287쪽,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 중에서)


박노자가 지닌 사고의 깊이와 학문의 방향성에 새삼 놀란 대목입니다. 깨우침 비슷한 것을 얻은 부분이기도 했구요. 과연, 인종주의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현재는 백년도 더 된 그 옛날로부터 얼마나 발전했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개항과 동시에 들어온 '제국주의 국가들이 불어넣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인종주의'를 여전히 떨치지 못한 채, 21세기 초첨단 현대의 시대임에도, 만인 평등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는 내팽개친 채, 피부색이나 따지고 있는 행태를, 야만적인 전근대성의 표현이라 부른다면, 과연 지나친 표현일까요.

대한민국은 슬프게도(ㅜ.ㅜ) 인종주의라는 면에서 130년전 개화기에 비해 그닥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6. 귀화의 조건

귀화신청자가 통과해야 하는 갖가지 '조건'들─특히 일정액 이상의 재산 보유 기준과 한국어 시험─이 사회의 약자들을 걸러내는 데 상당히 주효한 셈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계급적 차별과 억압을 위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믿지 않는 순진한 사람이라도, 위와 같은 귀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르크시즘에 타당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했을 것이다.
(27-28쪽, 짧고도 긴 한국과의 만남... 중에서.  * 밑줄은 비프리박)


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온갖 공적(公的) 요건들에 등장하는 '일정액 이상의 재산'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박노자가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사회의 약자들을 걸러내는' 필터와 같은 것이겠지요. 그리고 눈이 간 대목은 밑줄친 부분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말을 믿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말을 믿지 않는 순진한 사람이라도"(!) 라는 표현에서 그가 발딛고 서있는 입장과 관점을 봅니다. 아마도 그래서^^ 책의 전반을 통해서 견지하고 있는 '근본적인'(radical) 사고와 인식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구요.



위에서 인용한 몇몇 부분 외에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 국민들이 영어를 잘 하더라." 라고 하는 지금도 대한민국을 횡행하는 헛소리에 대해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일침을 날리는 대목(64쪽)에서는 ('이건 바로 1년 전에 내가 어떤 포스트에 적었던 내용인데...' 하는 생각에^^) 동질감 또는 동지의식을 느꼈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셨는데, 위에서 인용한 부분들이나 저의 코멘트에 대해서 공감이 밀려오는 분이라면 박노자의 이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 01>을 한번쯤 읽으시는 것도 좋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더욱 다짐과 동시에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책"인 뿐만 아니라, '몰랐던, 그리고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현실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책'이란 생각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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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124 월 11:30 ... 12:10  수정발행
2009 0202 월 10:10 ... 11:30  거의작성
2009 0202 월 15:30 ... 16:0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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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 한겨레출판 | 200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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