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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의 결여는 드러내놓고 하는 모욕보다는 덜 공격적이긴 하지만 똑같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상대방에게 어떤 모욕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상대방은 보이지 않는다─존재 자체가 의미를 갖는 온전한 인간이 아닌 것이다. 한 사회가 소수만을 선별해 인정하고 다수 대중은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경우에, 그 사회에는 마치 존중이라는 소중한 물질이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듯이 존중의 품귀 현상이 창출된다. (이 책, 16쪽, <제1부 존중의 결여 (서문)>에서) 저자 때문에 읽게 되는 책들이 있죠. 제 자신에게 저자의 신뢰도가 높다면 그의 다른 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리처드 세넷의 이 책은 그의 다른 책에서 받은 인상과 신뢰도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의 책은 이 책까지 세권째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영문 원저로 읽어보고 싶다, 였습니다(본문에서 적고 있는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리처드 세넷,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 유강은(옮김), 문예출판사, 2004. * 본문 330쪽, (참고문헌 & 색인 포함) 총 370쪽. * 원저 - Richard Sennett, Respect in a World of Inequality, 2003. 이 책은 읽고 싶은 책이었고 (결과론적으로 말해도) 읽어야 할 책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읽기가 참 힘든 책이었습니다. 잘 표현하는 말로 '펴면 졸린' 그런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몸이 힘든 시기(헬스클럽을 다시 나가기 시작함^^;)을 통과하며 읽어서 그런 것이었거나 퇴근 후에 집에서 책을 펼쳤기 때문에 피로 때문에 그런 것이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펴면 졸린' 책이었습니다. 이에는 타개책이 없지 않은 바, (언젠가 제가 트위터에 적었던 대로)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 책을 읽었습니다. 읽는 중간에 맞이한 휴일에 그래서 (이 힘든 책을) 하루 100쪽 정도 읽는 기염을 토했다죠. (^^)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읽고 싶은 리처드 세넷입니다. ^^ 2011년 1월 13일(목)부터 읽기 시작해서 1월 17일(월)까지 읽었습니다. 독파에 닷새가 걸린 셈인데요. 앞서 말한 '타개책'이 없었다면 열흘이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루 70~80분 정도의 출퇴근 시간 독서로 30쪽 조금 넘게 읽어내고 있었으니까 계산상으로는 330쪽의 본문을 읽는 데에 열흘이 걸릴 책이었죠. 다행히 닷새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리처드 세넷의 힘(!) 그리고 독서 기간 중에 맞이한 휴일(일요일)에 발휘한 '타개책' 덕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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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리처드 세넷). 복지에 결합되어야 할 '존중'의 모색. ▩
Richard Sennett, Respect in a World of Inequality.
인터넷 아마존에서 찾아본 이 책의 영문판 표지.
1. 리처드 세넷은? 이 책은? 리처드 세넷 교수에 관해서는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를 인용합니다. "뉴욕 대학교와 영국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이며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도 주목받는 몇 안 되는 미국인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98년 펴낸『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The Corrosion of Character)』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06년에는 슈투트가르트 시가 주관하는 헤겔상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밖의 저서로는 노동사회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계급의 숨겨진 상처(The Hidden Injuries of Class)』(1972)『공인의 몰락(The Fall of Public Man)』(1974)『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1998)『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Respect in a World of Inequality)』(2003) 등이 있으며 2010년에는 스피노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2010년에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온 『장인: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Craftsman)』(2008)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책 덕분에 '세넷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복지'란 것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정책의 대상인 빈곤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며, 그러므로 그들에게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가 그리고 구체적인 현장에서 복지를 집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 에 관한 저자의 촘촘한 생각과 생생한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리처드 세넷은 어린 시절 시카고의 (빈곤층과 소외계층 위한) 공공 주택단지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지 말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둔 그의 온갖 생생한 경험들이 그의 사색과 어우러지면서 책 내용의 종이 되고 횡이 됩니다. 2.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나라 vs 복지 대상의 '존중'을 고민하는 나라. 최근 개최된 노동당 전당 대회에서 영국 총리는 "새로운 복지 국가는 의존이 아니라 노동을 장려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엄격한 기준을 갖춘 동정심"을 촉구했다. 빈곤을 피하고 자족을 강조하는 엄격한 인간적 태도는 타인들의 눈에 존중을 불러일으키며 자기 존중을 길러준다.
(135쪽, <4장 의존하는 것의 수치>에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건넬 때, 받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 인간된 도리겠죠.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복지 정책의 기저에 그 '인간된 도리'가 깔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것을 의제화하는 리처드 세넷을 보면서 (그가 주 고민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국가인)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대한민국까지의 거리는 수천만 광년 떨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 정부(2MB 정권)는 복지정책 확장(요구)에 대해서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맞받아치고 기득권 집단은 자신들보다 진보적인 대통령의 복지정책 확장에 대해 '선심성 행정'이라고 몰아부친 바 있죠. 서구 선진국들이 대학 무상 교육을 펼쳤다는 경제규모와 수준을 진작에 넘어선 대한민국임에도 대학 무상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정치적인 지형을 만들어 놓았죠. 어쨌든, 복지 정책의 밑바탕에는, 복지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깔려야 한다는 리처드 세넷의 말에 천번만번 공감합니다. 우리도 이런 수준 높은 고민을 하는 날이 어여 왔으면 합니다. (근데 언제나 올지. -.-;;;) 3. 현장에서 '어떻게 주느냐'도 고민할 문제 복지가 단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이전하는 것이라면, 관료제는 존중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 또한 국가는 단순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돈을 계산해서 전달하고는 사람들 스스로 꾸려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러나 회계 절차가 복지의 특정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단순한 현금 이전은 성적으로 학대받는 노숙자 소녀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주택 단지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기능하도록 [만들지도,] 위탁된 노인들의 고독감을 해결해주지[도] 못할 것이다. * [ ]는 비프리박.
(218-219쪽, <6장 관료적 존중>에서) 세넷의 생각에서 인간적인 세심한 결를 읽게 된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요. 예컨대 A라는 사회복지사가 B라는 복지정책 수혜자에게 뭔가를 전한다고 할 때 그것을 '어떻게 주느냐' 하는 것이 바로 '존중'의 문제라는 것이죠. '어떻게 주어야'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주어야' 받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느낄 것인가, '어떻게 주어야' 받는 사람이 자기 모멸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것인가. 세넷이 보여주는 생각의 깊이도 깊이지만 현실적으로 당연히 체크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세넷의 어머니가 사회복지사 출신이라는 것이 그의 고민과 모색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공무원 신분으로, 복지정책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대면접촉할 때 그 공무원들은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그들을 대할까, 하는 생각요. 과연 그들은 이 책에서 리처드 세넷이 '존중' 혹은 '인간 존중'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그런 태도와 방법을 실천하고 고민할까요. 앞서 적은대로 '복지는 포퓰리즘'이라는 소리를 하는 나라에서 이런 질문은 너무 배부른 질문이겠죠? -.-; 4. '격화소양'이란 말을 생각나게 하는 번역.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원저(영문판)로 읽고 싶었습니다. 리처드 세넷의 문체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번역서가 독자에게 주는 전형적인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격화소양이란 말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이 마치 신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문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번역문으로 미루어 짐작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번역자 유강은의 내공 혹은 노력에 자꾸만 아쉬움이 꽂혔습니다. 물론 리처드 세넷의 책이 번역하기에 여러 모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기왕에 읽었던 「장인(Craftsman)」(김홍식 역)처럼 원문과 번역의 낙차를 꽤나 좁혀놓은 책도 있는 걸 보면 독자가 번역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좀 작아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 2011 0121 금 14:20 ... 15:00 & 17:00 ... 17:3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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