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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끊기를 계획합니다. 생활속 탈삼성을 계획합니다. 끊기로 어려운 것이 (제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담배였던 세월이 있습니다. 담배 끊은 사람이 독한 사람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때가 있었죠. 그러다 조중동 끊기가 담배 끊기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사회적 설득력을 획득하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저야 조중동을 단 하루도 구독한 일이 없지만) 조중동의 전방위적인 판매전략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면이 없지 않았죠.

끊기 힘든 것으로 치자면 담배와 조중동에 절대 밀리지 않을 '삼성'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탈삼성'기획을 꿈꾸면서 둘러보니 우리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든 '삼성'을 목격하게 됩니다. 일단, 쓰고 있던 '삼성'은 마르고 닳도록 쓸 겁니다. 쓰고 있던 '삼성'을 지금 당장 내다 버리고 새로 구입을 한다면 자원 낭비의 문제도 문제지만 가정 경제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죠. 쓰던 '삼성'은 다 쓸 때까지 쓰고, 새로 구입할 때에는 '삼성'을 피하는 것으로 '삼성 끊기' '삼성 없이 살기'를 시도할 작정입니다.

'삼성 없이 살기' 시도에는 인생 선배들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때로는 마음속 강한 울림으로, 때로는 송곳같은 파고듦으로, 가슴과 머리를 자극했습니다. 책이 항상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설득 당하고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고집이나 편견이나 세뇌^^의 소산이겠지요. '삼성 없이 살기'에 인생 선배들의 책이 크게 또는 작게 힘이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
 


    삼성 없이 살기, 삼성에서 벗어나기 - 생활속 삼성 끊기를 계획한다.

정치권력 위에 존재하는 경제권력, 삼성.
대한민국에 삼성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운지도 오래.
일상 속 삼성 끊기를 통해 그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 #1 }  그런데도 왜 삼성 제품을 구매하나요? - 홍세화의 책에서

10년 전 아직 프랑스에 머물 때 민주노총 활동가와 프랑스의 SUD(연대 단결 민주)노조 활동가와 만났을 때의 일이다. 민주노총 활동가가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한국 노동운동의 어려움을 피력했을 때 SUD노조의 여성 활동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삼성 제품을 구매하나요?"
(생각의 좌표, 148쪽, <쓴소리>에서)

온갖 반노동적 원칙과 조치를 휘두르고, 갖은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도, 그리고 그 회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져도, 그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 반문을 던지게 됩니다. SUD노조 활동가의 의아함이 비단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만 국한될 것은 아니겠지요. ( http://befreepark.tistory.com/892 에서 ) 



{ #2 }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삼성의 짙은 그림자 - 고종석의 책에서

1994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 이탈리아 총리가 됐을 때, 그 나라의 어느 신문은 아이러니로 그득 찬 칼럼을 하나 내보냈다. 취지는 대략 이랬다.
 
"나는 베를루스코니가 지은 아파트에 산다. 집안의 전자 제품들은 죄다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할인매장에서 산 것들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채널을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베를루스코니가 경영하는 방송사들뿐이다. 그 방송사들에선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주인 'AC밀란'의 축구경기를 줄기차게 보여준다. 텔레비전 보기가 지겨워 영화관을 찾자니 온통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영화관뿐이고, 그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제작한 것들뿐이다. 서점엔 베를루스코니 계열 출판사들의 잡지와 단행본이 넘쳐난다. 내가 사용하는 것 가운데 베를루스코니 것 아닌 게 뭘까? 아, 이 몸뚱어리 하나는 내 것이군."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하기 전부터, 이탈리아는 이미 '베를루스코니 공화국'이라 불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의 삶 자체가 그 나라 최고 부자 베를루스코니의 경제적 문화적 망 바깥에서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베를루스코니가 마침내 정치권력까지 움켜쥐게 된 것이다. ...

이탈리아 사회에 드리워진 베를루스코니의 그림자와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삼성그룹의 그림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짙은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경계긋기의 어려움, 213-214쪽, <삼성, '부드러운 공산혁명'의 전위당?>에서)

사실, 둘의 그림자가 얼마나 어떻게 더 짙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어렵지 않은' 거겠지요. 고종석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은 삼성에 저항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저항하지 않는다. 행정부에도 입법부에도 사법부에도 삼성 인맥이 실핏줄처럼 퍼져있기 때문이다. ... 삼성은 정치권력의 뒤에 있거나 거기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 삼성은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를 쥐락펴락해온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위의 책, 214쪽). 이같은 고종석의 판단은 김용철의 책에서 실증적 증거를 확보합니다.


{ #3 }  비자금을 동원한 삼성 세습 이면의 불법성, 반사회성 - 김용철의 책에서

이건희 씨 일가와 가신들이 국가적, 사회적 기능을 오도하고 있는 문제는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중 극히 일부를 국가, 사회의 각 분야에 던져주어 부패시킴으로써 공적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나머지 비자금 대부분을 자신들의 영속불변의 부당한 권력체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을 생각한다, 8쪽, <저자 서문>에서)

삼성 비리의 본질은 삼성이란 기업을 대를 물려 세습하고자 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 시도는 불법을 내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은폐하고 무마하기 위해선 사회의 각 분야에 돈을 처발라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해야 합니다. 삼성의 노동자와 기술자 그리고 소비자인 국민들이 창출한 삼성의 부 가운데 엄청난 액수가, 삼성의 이건희와 가신들에 의해 비자금으로 탈바꿈합니다. ( http://befreepark.tistory.com/1030 에서 )



{ #4 }  삼성이 곧 대한민국? 삼성 견제는 국민의 정당방위다! - 심상정의 책에서

많은 국민이 '삼성의 성공이 곧 국민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그것은 착시 현상이다. (당당한 아름다움, 85쪽)

국민 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이 잘못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따라서 삼성에 대한 견제는 우리 국민의 정당방위다. ...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굽힘 없이 그 길을 가야 한다. (위의 책, 88쪽)

저 역시 삼성이 곧 대한민국이라는 식의 사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미 삼성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형국이고, 정치권력이 건드리지 못하는 경제권력 삼성이 되어 있지만, 삼성이 곧 대한민국은 아닌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설사, 삼성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의 성공이기에 삼성의 성공을 견인해 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서 삼성에 대한 견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요구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종석의 질문이 유효한 타당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다. 그리고 그 경쟁은 '규칙을 따르는 경쟁'이다. 그 경쟁의 대척 개념이 독점이다. 그런데 지금 삼성은 자본주의의 핵심가치인 '경쟁'에, '규칙을 따르는 경쟁'에 우호적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에 삼성이 '규칙을 따르는 경쟁'에 비우호적이라면, 삼성의 존재는 한국 자본주의의 앞날을 위해서도 불길하다." (고종석, 앞의 책, 215쪽)


{ #5 }  생활 속 삼성 끊기, 삼성 없이 살기, 삼성에서 벗어나기

          


목록을 뽑기 전에는 "이거 삼성에 장악 당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는데, 목록을 뽑아보니 다행히 삼성 중독의 중증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측에 빨강 글씨로 적은 항목이 삼성에 점령 당한 것들이며 다음번 구입할 때 절대 삼성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목록이기도 합니다.



{ #6 }  '삼성 없이 살기', 전망은 비관적이지 않다!

언젠가 미국 여성이(었을 겁니다) 'made in china 없이 살기'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찾아보니 책으로도 출간되었군요. 사라 본지오르니의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라는 단행본인데요.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으로는, 사뭇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라는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

'삼성 없이 살기' 즉 '생활 속 탈삼성'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경제적 대체재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물품의 제조사에 대한 삼성의 지분이 있다면 이야기는 슬퍼집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삼성 로고가 찍힌 삼성의 제품을 쓰지 않는 '삼성 없이 살기'만으로도 일단 '삼성에서 벗어나기'를 시작했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겁니다.

담배를 끊기 위해선 먼저 대외적으로 금연을 선언하는 것이 옳듯, 삼성을 끊기 위해선 일단 공개적으로 삼성 끊기를 공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삼성 없이 살기 계획을 선언한 것이고요. 가정 경제의 또다른 책임자인 그녀의 생각에 조금 변화를 주는 일이 남아 있지만, 그리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오픈 마인드를 감안할 때 미리부터 어려운 일이라고 단정지을 필요도 없겠지요. 삼성 끊기, 일단 시작은 했으니, 이제 성공하는 일만 남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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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616 수 09:00 ... 10:50 (띄엄띄엄)  비프리박


p.s.
본문에서 몇차례 언급한 고종석의 글은 원래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이었습니다.
그것이 고종석의 시평집 <경계긋기의 어려움>에 묶였던 것이지요.
삼성에 관해 적은 그 글은, 그래서, 웹 상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보러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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