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작가. 마키아벨리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
혹시 이름만 마키아벨리인 작중인물이 등장하는 것인가? 했던 의문.
"악어의 눈물"에서의 "눈물"이 갖는 이중성 또는 위선에 대한 연상작용.

책을 펼치기 전에 이같은 몇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독서욕을 불러일으킨 책입니다.
리뷰의 제목에 "독서욕의 자극제"라고 적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라파엘 카르데티, 마키아벨리의 눈물, 박명숙(옮김), 위즈덤하우스(예담), 2009.
   * 본문 376쪽. 총 382쪽.
   * 원저 - Raphael Cardetti, Les Larmes De Machiavel, 2003.

위즈덤하우스 서평단으로 받은 첫번째 책입니다. <예담> 카테고리에 해당되는군요.
2009년 6월 23일(화)에 받았구요. 6월 29일(월)과 30일(화), 이틀간 읽은 책입니다.

평소의 제 독서 속도에 비해서 상당히 짧은 기간이랄 수 있는 이틀만에 400쪽 가까운 이 책을 읽어낸 것은, 손에 땀을 쥔다든가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a 6월과 7월에 걸친 독서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몸부림이었습니다. ^^ 7월 1일이 되기까지는 딱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 이외의 시간을 좀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



    마키아벨리의 눈물(라파엘 카르데티), 마키아벨리에 관한 독서욕의 자극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광고카피 만큼의 "극적인 반전"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해 마지 않았던 「마키아벨리의 눈물」)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하는 추리소설 또는 스릴러를 쓰고 있다는 라파엘 카르데티는 이탈리아 피렌체 문학을 전공한 이탈리아 작가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을 우리말로 번역한 박명숙은 프랑스 고전문학을 공부한 불문학 전공자입니다.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어떻게 불문학 전공자가 번역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카르데티가 이 소설을 그의 모국어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썼음을 밝히는 옮긴이의 말(379쪽)에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1973년 생의 작가가 2003년에 즉 30세 되던 해에, 그것도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출간한 소설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의 리뷰를 작성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축적인(?) 동시에 압축적인(!) 리뷰입니다.

중세시대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택한 픽션.
당시의 사실(史實)과 마키아벨리와 주변 실존 인물을 소설적 소재로 차용한 팩션(faction).

마키아벨리가 절대악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냉혈한으로 설정된 듯.
책 제목을 <냉혈한의 눈물>로 읽어도 될 듯. 마키아벨리의 캐릭터를 극단화한 듯.

인간 마키아벨리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키아벨리 전기를 읽고픈 독서욕을 자극함.
이 책의 차가운 마키아벨리 캐릭터를 중화시키고픈 독서욕을 불러일으키는 고마운 책.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이라는 광고카피의 의미는
<한니발>만큼 잔인하고 <식스센스>만큼 극적인 반전을 선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도 언급하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기대하지 않으면, 그리고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2% 아니 20%의 실망감을 얻지 않을 수 있는 책.

소설적 허구가 만들어내는 상황과 사건에도 필연성이 있어야 함을 인식시켜주는 책.
필연성이 충만함으로써가 아니라 필연성이 결여됨으로써, 라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를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음흉함과 비열함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마키아벨리즘, 그리고 거기에 라파엘 카르데티의 이 책에 의해 마키아벨리에게 씌어진 냉혈한적 면모, 이를 중화시키기 위한 독서로써,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에 "독서욕의 자극제"라고 적은 또다른 이유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반어적으로 또는 해학적으로 치는 대사들은 독자에게 '읽는 잔 재미'를 선사하지만 명문장이나 명대사로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책의 뒷표지를 살피다가 접하게 된 인용은 제가 책을 읽을 때 본문에서 체크해둔 유일한 부분이었습니다.

자넨 예술가야. ... 그러니까 사물의 외관이 얼마만큼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 그림의 완벽해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는 종종 가장 끔찍한 공포와 견디기 힘든 폭력성이 숨어있기도 한다는 것을. ... 시선이 순수한 양의 상처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선명한 핏빛에 그토록 이끌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배경에 감춰져 있는 제사장의 잔인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을 거란 말이지. ...
더 잘 감추기 위해 보여주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감추는 것. 예술은 그렇게 아주 놀라운 모순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18쪽, 수도사 복장을 한 고문자 말레고넬이 화가 라파엘로 델 가르보를 고문하며)
* 라파엘로 델 가르보의 첫 확인은 101쪽.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 0701 수 11:00 ... 11:30  초고작성
2009 0702 목 07:00 ... 07:40  비프리박
 
 
p.s.
"본 도서 리뷰는 위즈덤하우스(http://www.wisdomhouse.co.kr)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하지만 리뷰의 내용이나 방향은 위즈덤하우스와 무관합니다.
 한 명의 독자가 어떤 책을 읽은 후 작성하는 독립적인(!) 서평, 리뷰입니다. ^^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