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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렸던 것은 한여름의 아테네였다. 한여름의 아테네는 실제로 가본 분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덥다. 그곳 사람들은 볼일이 없으면 오후에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잔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겨우 밖으로 나와 활동을 시작한다. 여름철 그리스에서 한낮에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관광객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93쪽, <한여름의 아테네에서 최초로 42킬로를 달리다>에서)


읽다 보면 여행에 관한 책이 아님에도 어떤 대목에서 마구 여행의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 있죠. 2010년 봄의 저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고, 위에 인용한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아테네의 관광객이 되고 싶단 뽐뿌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임홍빈(옮김), 문학사상, 2009.   * 총 277쪽. 본문은 259쪽.   * 원저 출간 - Murakami Haruki, 2007년.

이 책은 간혹 하루키가 쓰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제목에 쓰고 있는 바 그대로 "달리기를 말할 때 하루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달리기를 중심축으로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달리기와 마라톤을 실마리 삼아 자신의 삶과 생각과 원칙을 적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2010년 3월 5일(금)부터 3월 7일(일)까지 3일간 읽었습니다.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며, 판형이나 두께 또한 긴 독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3일에 읽어낸 이유입니다. 읽은 후의 느낌은 맛있는 음식 후딱 먹어치워서 좀 아쉬운 그런 느낌입니다. 올해 하반기에 한번 더 읽을 작정입니다. 제가 한권의 책을 두번 읽는 것에 꽤나 인색한 편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대략 1년에 100권을 읽는다고 할 때, 두번 읽고 싶은 책은 대여섯권 정도입니다. 이 책은 그런 책 가운데 하나이고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제목이나 표지를 클릭하세요.
 
 

    아테네 여행의 뽐뿌,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아테네로 날아간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3년 7월 18일, 마라톤 경주의 발상지인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뛴 마라톤 풀코스의 결승점을 맞이했다."

 

 
1. 하루키, 본래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러 아테네에!

"무라카미 씨, 진짜 코스를 전부 달리는 건가요?"라고 가게야마씨가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듯이 물었다.
"당연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요? 그렇지만요. 이런 기획이란 것, 실제로 전부 끝까지 정해진 대로 완주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적당히 사진만 찍고 중간은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흠, 정말 달리실 작정인가 보군요."
세상일이란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일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95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는 소설가^^입니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달리기가 삶의 한 축이 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어떤 잡지사의 기획에 응하여 아테네로 날아간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래의 기획 의도대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로 합니다. 하루키의 근성과 투명함^^은 "적당히 사진만 찍고 중간은 생략해버리는" 방식을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역시 하루키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아테네, 지도 속의 장소에서 실감나는 현장이 되다

그해[1983년] 7월에 나는 그리스로 가서,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혼자 달렸다.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인 마라톤에서 아테네를 역방향으로 달렸던 것이다. 왜 역방향으로 달렸냐 하면, 아침 일찍 아테네의 중심을 출발해서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에(그리고 공기가 오염되기 전에) 도심을 벗어나 마라톤으로 향하는 쪽이, 도로의 교통량이 훨씬 적어 달리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공식 레이스와 달리, 나 혼자 멋대로 달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교통 통제 같은 것은 물론 있을 리 없다.
(90-91쪽, <한여름의 아테네에서 최초로 42킬로를 달리다>에서)

하루키가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인 마라톤→아테네 루트를 아테네→마라톤 경로로 바꾸는 대목에서, 아테네 역시 러시아워가 되면 교통 정체에 시달리는 도시라는 사실이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로서 들이마실 공기의 질을 생각해야만 하는 대도시 아테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를 역방향으로 달리기로 합니다.

이 대목 읽으면서 저는 아테네 여행을 가서 이 코스를 정방향으로든 역방향으로든 걸어보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42킬로를 걸으려면 보통의 걸음걸이로 6~7시간이 걸리겠습니다. 뭐, 정 안된다면 택시나 승용차를 이용해서라도 한번 훑어보고 싶습니다. 

 
 

 
 
3. 반짝반짝 빛나는, 걸어보고 싶은 아테네의 도로!

자, 어쨌든 아테네 올림픽에도 사용되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새벽 5시 반에 출발해서 곧장 마라톤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한다. 도로는 간선도로로 한 줄기로 뻗은 길이다. 실제로 달려보면 알겠지만 그리스의 도로 포장은 일본과는 무척 느낌이 다르다. 자갈 대신 대리석 가루 같은 것이 들어 있어서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고, ...
(95쪽)

하루키는 그렇게, 아테네를 출발합니다. 그리고 마라톤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 과정을 적으면서 그가 묘사하는 아테네는 저에게 가보고 싶은 마음을 뽐뿌질합니다. 과연 저 도로는 얼마나 반짝반짝 빛을 반사할 것인가, 그것도 궁금하고 하루키가 달리면서 본 시가지의 일상성도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습니다.

어떤 장소에 관해서 적는다고 할 때 그것이 독자에게 현실성 혹은 일상성을 주기 쉽지 않은데 하루키는 문필가답게 잘 적어내고 있습니다. 달리면서 본 것들을 어찌 그리 시시콜콜 기억해서 적고 있는지 말입니다. 애초부터 기록을 위해 달린 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요.

 
 

 
4.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는 42.195km가 아니라 대략 40km?

실제로는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곧장 도로를 달려도 마라톤 풀코스의 공식 거리, 42.195킬로가 되지 않는다. 2킬로 정도 거리가 부족한 것이다. ...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런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아테네 시내에서 마라톤까지의 외길을 곧장 달리고 나서 그것으로 42킬로를 완주했다고 굳게 믿어버렸다. 실제로는 40킬로 정도였던 셈이다.
(92쪽)

공식적인 마라톤 거리 42.195킬로미터는 그야말로 공식적인 기록일 뿐인가 봅니다. 마라토너 하루키가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아테네~마라톤의 거리가 2킬로미터 정도 부족하군요. 이걸 마라톤~아테네 방향으로 달린다면 좀 달라지는 것일까요? 이런저런 정보와 의문들 역시 독서의 알찬 부산물들이며 그런 정보와 의문을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아테네엔 꼭 한번 가봐야겠단. ^^



아. 근데, 뽐뿌는 되었지만 여행은 언제나 가능할는지. 머리를 굴려도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것 같지는 않군요. -.-;;; 하지만 뽐뿌를 받아 꿈을 꾸면 그것이 지름신으로 트랜스포밍하여 현실로 다가올 때가 있는 법이니 당분간 계속 꿈을 꾸어야 할 거 같습니다. 아테네 여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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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702 금 02:30 ... 04:10  비프리박


p.s.
저에게 아테네 도보 여행, 배낭 여행의 뽐뿌를 불러온 이 책에서 아테네는 제3장에 등장합니다.
사실, 기억해보면, 아테네만 여행의 뽐뿌를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역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게 동한 곳입니다. 그곳의 풍경과 일상이 너무 손에 잡힐 듯 묘사된 것이 한 몫 했습니다. 아래는 이 책의 차례와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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