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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다 읽은 책입니다. 1월8일 시작해서 1월 13일 다 읽었으니까요.
리뷰의 5원칙이라고 명명했던 포스트에서 일주일 이내에 서평을 쓰자...라고 다짐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서평이 밀렸네요.

서평작성 마감시한으로 생각했던 1월 20일경 노트북이 맛이 가고 그래서 diy 갱생을 하고,
그 이후 바쁜 일상의 겹침, 그리고 용산철거민 농성장에서 날아온 비보, ... 그에 이은 설 명절...! 까지,
되짚어보니, 참 많은 일들의 연속이었군요. 포스트 목록에 고스란히 묻어있기도 하구요.
이래 저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의 서평이 본의 아니게 늦게 된 이유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참 많습니다.
텍스트 안과 밖을 넘나드는 그걸 다 적으려면 아마도 책 한권 분량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어...
이 포스트에서는 그냥 충실히 텍스트 내적인 것에 국한해서 리뷰를 작성하자~! 욕심을 버렸습니다. ^^;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표지나 제목을 클릭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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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읽은 <개밥바라기별> & 지금 리뷰를 쓰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그 뒤를 이은 <당신들의 대한민국>도 1월 20일에 끝났고 & 1월 21일부터 읽고 있는 안정효의 '구작'(^^) 단편소설집 <미늘> )


1. 다시 읽다

"아. 이 책, 예전에 읽었던 책이군...!"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다소 동화스러운 구성의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에 끼어 있는 책갈피^^와
늘 그렇듯, 군데군데 감명깊은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접어 표시해놓은 것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같은 단편소설집의 경우, 제목을 먼저 훑은 후,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단편이 있을 경우,
그 소설부터 읽습니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래서 같은 제목의 세번째 단편부터 읽었습니다.
예전에도 뜨문뜨문 하나씩 골라 읽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다 읽진 못했던 것 같구요. ^^;)
어쩐 일인지 세번째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예전에도 읽었을텐데, 첨 읽듯이 읽었고,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는 접어놓은 표시나, 읽는 느낌이나, 두번째 읽는 느낌이 선명했습니다.


2. 여섯편의 짧은 소설, 짧지 않은 느낌

이 책은 하루키가 '고베지진'을 간접적으로 엮어서 쓴 여섯꼭지의 단편집이지요.
'간접적'이라 함은 주제로는 절대(!) 등장하지 않고, 단지 이런저런 주변적인 소재로만 쓰인다는 뜻입니다.
'고베지진'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식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시도된 단편소설들의 모음인 이 책을 구성하는 여섯꼭지 단편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 쿠시로에 내린 UFO - 어떤 '이혼 선언' 이후
  2. 다리미가 있는 풍경 - 모닥불이 꺼지면 같이 죽어요
  3.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개에게 물어뜯긴 귀를 가진 아버지
  4. 태국에서 일어난 일 - 마음 속의 돌
  5.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 - 대지진 막은 마법의 개구리
  6. 벌꿀 파이 -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장 그간의 하루키다운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단편 3 이 아니었나 싶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은, 소설가 쥰페이에 자신을 일부분 투영시킨 듯한 단편 6 입니다.
그런 울림으로 두번째 자리에 놓을 수 있는 것이 단편 4 였고, 단편 5 는 앞서 적은대로 동화적이었지요.
물론, 하루키적인 현실-비현실의 경계를 적당히 허무는 시도까지 적절히 등장하면서요. ^^


3. 자신의 스타일과 방식

장편소설을 써 보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여지없이 실패했다. 쥰페이는 거기서 곧 물러서서 체념했다. 좋건 싫건 그는 자신이 단편소설 작가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의 스타일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될 수는 없었다. 2루타 정도만 치는 타자가 갑자기 홈런을 칠 수는 없는 것처럼.
(190쪽, 벌꿀 파이 -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에서)


중요한 깨달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것.
사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시절도 있고, 있었고, 있을테지만...
결국은 자신의 스타일, 자신의 그릇(!)을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소설 속의 소설가 쥰페이가, 장편을 쓰려면 늘 곤혹스러워 하다가 자신의 스타일과 방식을 찾는 것처럼요.

 

4. 삶의 숙명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요시야는 벽에 부딪혔다.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정면이 금속으로 된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뚫어 놓은 구멍이었다. 요시야는 코트 자락을 걷어올리고 몸을 굽혀서 그 구멍으로 빠져 나갔다. / 철망 너머에는 넒은 들판이 있었다. 아니, 그냥 들판이 아니었다. 무언가 운동장처럼 보였다. 요시야는 어렴풋한 달빛 아래 서서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그곳은 야구장이었다.
(100쪽,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개에게 물어뜯긴 귀를 가진 아버지에서)


출생의 비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요시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인 듯한 사람).
하지만 그는 요시야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론가 향하고.
요시야가 알고 있는 단서는, 자신의 아버지였을-.-; 그 사람의 귀가 '개에게 물어뜯긴 귀'라는 것.

그 단서만을 가지고 시간과 비용을 치러가며 뒤따라간 요시야 앞에,
그 남자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야구장이 나타납니다. 역시 홀연히요. ^^; 
이 대목에서 저는 '하루키스럽다'는 생각 외에, 하루키가 이야기하고픈 '삶의 숙명'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요시야는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신에게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신앙심을 곧게 지켜나갈 테니까, 제발 외야로 날아온 플라이 볼을 실수없이 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88쪽)라고 기도를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랬던 요시야가, 아버지임에 틀림없다고 단정짓고 좇아간 사람이 홀연히 사라지고 나타난 곳이,
축구장도 아니고 야구장인 것처럼, 현재의 어떤 중요한 삶의 대목에서 우리는 과거의 숙제같은 것을 만난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미처 잘 마무리짓지도 못한 숙제를요.
'삶의 숙명'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이렇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a

 

5. 하루키, 능구렁이^^

마지막에 배치된 단편 '벌꿀 파이 -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은 개인적으로 울림도 울림이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소설의 용도(?)와 소설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쥰페이가 사랑하는 사요코의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쥰페이가 어설피(?) 끼워넣은 듯한 급조(?) 우화^^
'마사카치'와 '동키치'라는 두 곰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액자소설의 용도가 대개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 생각과 느낌이 좀더 극명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가 될 거 같습니다.

쥰페이가 사랑하는 사요코. 그 둘의 관계가 앞이 안 보일 때는, 쥰페이의 두 곰 이야기도 bad했고,
독자로서 두 사람의 관계가 풀린다 싶어질 때에는, 두 곰 이야기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쥰페이가 사요코에게 청혼하기로 했을 때, 쥰페이는 두 곰 이야기는 happy ending으로 바뀌고 있었지요.

이 와중에 소설가 하루키는 역시 '상당한 능구렁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적 구성과 소재 어느 하나 허투루 배치된 것이 없을 뿐더러, 참 기막히게 짜맞춰져 돌아간다는 느낌...!
이 단편을 이 단편집의 마지막에 배치한 하루키의 의도까지 새롭게 보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하루키다움과 하루키스러움(둘의 차이는 뭐냐? ^^)을 만끽했던 소설입니다.
아마도 처음에 읽었던 때에는 못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읽는 맛과 즐거움이 있었구요.
줄서 있는 읽을 책들^^ 사이에... 하루키의 다른, 아직 못 읽은 책들을 좀 끼워넣어야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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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127 화 09:00 ... 11:10 비프리박



p.s.
아침에 이것저것 하며 작성하다 보니 작성에 걸린 시간이 좀 길어졌네요.
물론, 저 시간동안 계속 쓴 것은 아니고, 순수하게 작성에만 바친 시간은 한시간 남짓이 아닐까 싶네요.
아직도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서평이 밀려 있군요. 그리고 거의 다 읽어가는 <미늘>도... -..-a
책이 읽는 맛이 있다면, 리뷰는 쓰는 맛이 있으니^^ 밀리지 않고 얼른 얼른 써야할 듯 하네요.
단순히 서평을 제때제때 쓰기 위해서가 아니래도... 제발이지, 2mb 떨거지들이 작작 좀 했음 하고요.
개인적으로도 평탄하고 순조로운 일상의 흐름이었으면 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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