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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으며 살테야. 시골에서 살겠어. 저와 그녀가 미래의 삶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꾸만 '대박'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싶어하는 '귀농'이란 말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농사지으며 살면 되고 그냥 시골에서 사는 것만으로 충분할 거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조용한 삶>이 주는 공감과 울림은 컸습니다. 공감과 울림(鳴)이니, 공명이라 해야 할까요. 헬렌 니어링 & 스콧 니어링, 조화로운 삶, 류시화(옮김), 2000. * 2009년 24쇄. 총 221쪽. * 원저 - Helen Nearing & Scott Nearing, Living the Good Life, 1954. 왜, 그런 책이 있죠. 미처 잘 몰랐는데 어마어마한 책이었던 거. ^^ 왜, 또, 그런 책이 있죠. 예상도 별 기대도 없이 펼쳤는데 딱 내 생각을 적은 거 같고 내 생각을 더 심화시켜 놓은 거 같은 그런 반가운 책. 헬렌과 스콧의 <조화로운 삶>은 문자 그대로 '먼저 고민하고 먼저 실천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앞으로 쭈욱 그들에게 빠져들 거 같습니다. 책 한권을 보통 이삼일, 길면 삼사일에 읽는지라, 그리고 요즘 대세가 그런지라, 책을 싸지 않고 그냥 읽습니다. 책 표지에 손때가 묻을까봐 커버를 하거나 하는 애서가 쪽은 아닙니다. 그런 제가 이 책은 책 커버를 입혀서(!) 읽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싸 봤습니다. 친환경을 주창하는 것인지, 이 책의 표지는 비닐 코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책 종이의 질도 친환경 냄새가 납니다.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봅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되어 마땅한 시도지요. 어쨌든, 오래 걸려 천천히 읽을 책인데다, 책 표지가 코팅이 안된 친환경 표지이다 보니, 손때 묻을까봐 싸서 읽었습니다. 결과론이 되겠지만, 아껴야 할 책, 잘 싸서 읽었다는 판단입니다. 지난 봄에 우연히 구입하게 된 책이었는데 무엇이 땡겼는지 서둘러 꺼내든 책입니다. 2010년 6월 17일(목)부터 읽기 시작해서 6월 21일(월)에 읽기를 마쳤습니다. 책은 총 220쪽 정도로 두껍지 않은 편이었는데도 꼬박 5일이나 걸려 읽은 건, 아마도 천천히(찬찬히?) 공감하며 읽느라 더디 읽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 꼭꼭 씹어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거랑 비슷하다면 말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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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의 버몬트 숲 속 친환경 삶 스무해. ▩
Living the Good Life. 그야말로 good life란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류시화는 어찌 이리 멋진 제목을 만들어냈을까요. 조화로운 삶!
1. 이 책은?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은? 이어지는 책은?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로 진입한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시골에서 살기' '농사지으며 살기' '자연과 가까이 살기'가 가능함을 실천으로써 보여준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이 1932-1952년 버몬트에서의 생활과 생각을 기록한 책입니다. 두 사람과 이 책에 관한 소개는 책 맨 끝 페이지에 실린 출판사의 소개글이 참 좋군요. 발췌 인용 재구성해 봅니다. 헬렌 니어링(1904~1995) - 1904년 미국 뉴욕에서 박애주의자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명상과 우주의 질서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기도 했는데,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꾸게 됐다. 스콧 니어링(1883~1983) - 18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교수를 하며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미국인들을 깨우쳤다. 그 뒤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해직된 뒤, 톨레도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맡았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하다가 또다시 해직되었다. 이 책에 이어지는 책들 - 스코트에게 가장 힘든 시절이었던 1928년에 헬렌과 만났다. 이 책, <조화로운 삶>은 1932년 뉴욕생활을 그만두고 버몬트 시골로 들어가 살았던 스무 해를 기록한 책이다. 두 사람은 뒷날 메인으로 옮겨가 살면서 <조화로운 삶의 지속(Continuning the Good Life)>을 펴냈다. 1983년 스코트가 죽고 8년 뒤 헬렌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라는 책을 펴냈다. 2.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 노동을 교환하다! 우리는 이웃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다. 처음부터 이웃들과 함께 일했는데, 사정에 따라서 이웃집이나 우리 집에서 일했다. 원칙을 세울 때부터 우리는 임금을 주고받는 관계를 거부했다. 서로 일을 돕는 노동 교환으로 임금을 피할 수만 있다면 실제로 임금을 주고받는 관계를 절대 맺지 않을 작정이었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것은 건강한 사회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과 생산물을 공평하게 교환하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우리는 힘을 모아 함께 일하고 서로서로 도우려고 했다.
(173-174쪽, <함께 사는 사람들>에서) 돌 계단을 만들려는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 벽난로를 만들려는 앨리스와 척 본 부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작업 앞에서, 양쪽의 거래(?)는 서로의 집에 가서 상대방의 돌 계단과 벽난로를 만드는 데 일조해 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각각 엿새씩 서로의 집에 가서, 총 열이틀 동안, 서로에게 필요한 돌 계단과 벽난로를 만들어줍니다. 너무 멋진 교환(!)입니다. 노동의 교환! 그러고 보면 우리의 전통에서 발견되는 '두레' '품앗이' 같은 것이 꼭 우리의 전통이라고만은 하기 어렵겠습니다. ^^ 이 책의 이어지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맺는 것은 '경제'로 봐도 건전하다. 서로 착취하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교환을 했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관계는 서로 노동 시간을 교환하는 평등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75쪽). 3. 실제적 도움보다 기본적 원칙을 읽는다면. 미국의 (정확히 어딘지도 알지 못하는) 버몬트 지방 어느 골짜기에서, 그것도 1930년대 초부터 1950년대 초까지, 20년간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이 생활하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보니, 21세기 초의 우리가 실제적인 도움을 기대만큼 많이 얻을 수는 없는 책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니어링 부부의 생활과 생각에서 기본적인 원칙을 읽어내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 보면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서 과거 누군가의 경험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얻기란 어려울지도 모르며, 오히려 절실히 필요한 건 기본적인 원칙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자신도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조화로운 삶'을 모색한다면, 이 책 <조화로운 삶>은 아주 좋은 '원칙에 관한 안내서'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컨대, 집짓기에 대한 생각, 제철 과일에 대한 생각, 동물 기르기에 대한 생각이 참 좋았습니다. 일정 정도 제가 해오던 생각이랑 비슷하기도 했고, 헬렌과 스콧의 생각이 참 멋지기도 했고요. 구체적인 도움은 못 줄지 몰라도 원칙적인 입장을 정립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책, 그래서, 아마도 기회를 봐 가며 한번 더 읽지 않을까 싶습니다. 4. 번역자, 류시화가 빛나는. 제가 류시화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류시화는 그 이름에 아우라가 있는 작가지요. 작가가 번역한 책, 만나기 어려운데, <조화로운 삶>의 번역자로 류시화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류시화가 지향하는 바(라고 제가 알고 있는 것)와 헬렌 & 스콧 니어링이 지향했던 바가 일정 부분 오버랩되는 것이 사실이니, 가치관 혹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의 번역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우 번역은 책임 이전에 꼼꼼함과 성실함이 개입합니다.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원문과 대조하지는 않았찌만) 매끄럽지 않다거나 오역 같다는 느낌을 받은 부분이 없었다면 말이 될까요. 5. 헬렌과 스콧 니어링의 다른 책을 부르는. 책을 다 읽은 날 밤, 알라딘-예스24-인터파크북쇼핑-반디앤루니스를 뒤적이며 책을 찾아다녔습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져서 말이죠. 새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울듯^^ 이 책, <조화로운 삶>은 독자에게 두 저자의 다른 책을 부르며 웁니다. ^^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절판된 책도 보이지만 대부분 아직(?) 니어링 부부의 책을 구할 수는 있군요. 두 사람의 책을 모두 (구할 수만 있다면 모두) 구입하게 될 거 같습니다. 아마도 다음번 타자는 <스콧 니어링 자서전>과 <조화로운 삶의 지속>이 될 듯 합니다. 물론 그 밖의 책들도 읽긴 하겠지요. 두고두고 묵혀가며 천천히 또는 찬찬히.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버몬트 숲 속에서 산 스무해(1932-1952)를 기록한 책. - 현대 자본주의로 진입한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시골에서 살기' '농사지으며 살기' '자연과 가까이 살기'가 가능함을, 실천으로써 보여준 두 사람의 삶과 생각을 적은 책. - 귀농, 시골에서의 삶, 전원생활, 자연 속 삶을 꿈꾸거나 실행중인 사람에겐 필독서. - 구체적인 도움은 못 받더라도 기본적인 원칙이 주는 교훈만으로 감지덕지할 수 있는 책. 2010 0624 목 09:30 ... 11:00 비프리박 p.s. 이 책이 세상에 나온지 56년 되던 2010년, 극동 아시아 어느 나라의 대통령은 무소유의 삶을 살다 입적한 어느 스님을 애도하며 그의 <조화로운 삶>을 애독했다고 했다. 그의 책 가운데 <조화로운 삶>은 없었으며 그의 책을 낸 출판사 가운데 '조화로운삶'은 있었다. 책 제목과 출판사 이름의 혼동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뒤늦게 변명했지만, 요즘은 책을 읽지 않고 출판사를 읽느냐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애독을 하면 책 제목과 출판사 이름이 헷갈릴 수 있을까. 와중에 그 대통령이 어쩌면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은 게 아닐까라는 선의의 해석도 불거졌다. 하지만 공식 신고재산만 450억원이 넘는, 하지만 동시에 <무소유>를 애독했다는 말을 하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그 대통령이 살아온 포크레인-삽질 외길 인생으로 미루어, 그건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이었다. 적어도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읽은 사람이라면 포크레인과 삽질로 이 강토를 난도질하진 않을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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