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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다양한 영역에서 한계에 부딪히며 서서히 하향 곡선을 그린다. 달리 표현하자면 육체의 쇠퇴를 피할 수 없다. 경기장 하늘을 메운 나방 떼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이책, 165쪽에서)


이제 저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슨 작정을 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어서 읽는 작가가 아닙니다. 그냥 그의 책이라면 손이 갑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왜, 그런 작가 있죠? 아무 책이나 읽어도 그의 책이라면 독자로서 배신 당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작가요. 하루키가 저에겐 바로 그런 작가 중의 한명입니다. 어찌 보면 하루키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올림픽을 소재로 쓴 책이라서 더더욱 호기심이 동했던 책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승리보다 소중한 것, 하연수(옮김), 문학수첩, 2008.
* 본문 331쪽 / 저자 후기와 역자 후기 포함, 총 338쪽.
* 원저 - 村上春樹, Sydney!, 2001.

언제 이 책을 샀더라? ^^a 구입을 언제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구입후, 좀 묵힌 듯한 느낌의 이 책은, 2009년 7월 26일(일) 퇴근길부터 읽기 시작해서 8월 3일(월)까지 읽었군요. 그다지 오래 걸릴만한 책은 아니었는데, 중간에 여름휴가가 끼어서 이 책을 잠시 쉬었기 때문이지요. 7월 28일(화)부터 31일(금)까지 여름휴가였습니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문학수첩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제목이나 표지를 클릭하세요.
 
 

      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적은 시드니 올림픽의 기록.


무라카미 하루키의 「승리보다 소중한 것」.
꼭 이겨야 하고 또한 이기면 좋겠지만,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1.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승리보다 소중한 것>, 이 책은 그가 시드니 올림픽 현장으로 날아가서 3주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은 책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적은 것이라는 점이며, 또한 올림픽과 관련하여 적은 것일 뿐 꼭 올림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글들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드니 올림픽을 매개로 하여, 때로는 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때로는 올림픽과 관련이 없는, 그의 생각을 적습니다. ^^

그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은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시드니에서 그야말로 "매일같이 기관총을 쏘듯 키보드를 두드리며 써 내려간" 기록이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닥치는 대로 쓴"(332쪽) 결과물입니다. 집필에 관한 온갖 지원은 일본의 어느 출판사에서 했군요. 어디선가 지원을 해주고 나는 글을 쓰고. 생각만 해도 행복한 경험입니다. 그저 부러운. ^^

 
 
2. 운동에 관한 하루키다운 생각들.

남자 100미터에서는 미국의 모리스 그린이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다. ...
그나저나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결정되다니, 대단한 일이다. (176쪽)
(176쪽, <보공 모스 이야기>에서)

옛날 사람들은 '인간이 42킬로미터를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했다. 얼마 전까지는 '인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42킬로미터를 뛴다'는 사실 때문에 감동했다. 지금은 '인간이 이렇게 끔찍한 날씨에 이토록 끔찍한 코스를 이만큼 빠른 속도로 뛴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185-186쪽, <드디어 여자 마라톤>에서)

오호. 그렇군. 맞아.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의 생각의 깊이와 그의 생각의 폭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감탄합니다. 하루키 자신 역시 운동이라면(특히 달리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인지라, 운동에 관해서 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의 운동에 관한 생각을 듣는 맛이 쏠쏠합니다. 이는 그의 다른 책에서도 이어지지요. 자서전의 냄새가 짙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좀더 깊은 맛이 있습니다. ^^
 
 

 
3. 여행에 관한 하루키의 생각들, 하루키의 여행법.

관광객이 많은 곳은 재미없으니 다른 곳으로 향한다. 다들 가는 곳에 가지 말고 다들 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게 여행기의 철칙이다. 다들 가는 곳에 가서 다들 하는 짓을 하면서도 다들 쓰지 못하는 글을 쓰라는 것도 하나의 철칙이지만.
(138쪽, <브라질전의 밤>에서)

인용한 그의 여행법에 개인적으로 공감합니다. 저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는 편입니다. 거기 무슨 재미로 갔다 왔어? 라는 질문 받기를 좋아(?)합니다. ^^ 하루키는 여행에 관한 한, 제가 줘도 된다면, '달인'의 칭호를 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꽤나 자주 외국에 나가서 꽤나 오래 생활하는 그이기에 그렇고, 동시에 나름의 여행법으로 정리한 내용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루키가 쓴 여행기, 기행문, 여행법, ...에 관한 책이 꽤 있지 말입니다. 저는 그중 대부분을 이미 읽은 것 같군요. ^^
 
 

 
4. 인상적이었던 하루키의 호기심 그리고 교훈.

나와 Y군은 ... 시합을 보기 위해 차를 빌려 브리즈번까지 갈 생각이다. 거리는 대략 1천 킬로미터. 온종일 차를 몰아야 한다. 어째서 이런 무모한 아이디어를 냈냐고? 나는 괴짜니까. 호주가 얼마나 넓은 나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으니까. (113-114쪽)

이번 여행에서 배운 점이 있다.
'하루에 1천 킬로미터를 운전하는 무모한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자. (157쪽)

경험은 전수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궁금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재앙을 불러오지 않는다면,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은 경험해봐야 합니다. 책에서 보여지는 하루키의 호기심이 참 좋습니다. 그로 인한 교훈을 담은 결말도 살짝 미소 짓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5. 하루키가 전하는 인류사의 보편적 진리들.

권리라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쟁취하는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자, 여기 있어요"라며 건네주지 않는다. 미국의 매리언 존스도 성조기와 함께 어머니의 모국인 벨리즈 국기를 들고 뛰지 않았는가.
(212쪽, <비 내리는 본다이 해변>에서)

이 글의 초입에 인용한 하루키의 말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 군데군데 적은 하루키의 생각들은 인류사의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꼭 딱딱한 무슨 교과서나 개론서에 나와야 되는 것은 아니겠죠. 세계적 문인이 자신의 방식으로 적고 있어서 더욱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하루키도 이런 생각을 하는군. 역시 하루키야!"라는 그런.
 
 

 
6. 하루키가 전하는, 상업주의에 찌든 올림픽의 현장보고.

코카콜라 역시 라이벌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코카콜라가 경기장의 음료수를 담당한다는 ... 사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몰래 펩시를 반입하여 마시자, 코카콜라 측은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는 직원들에게 위험물 외에 펩시의 반입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쯤 되면 거의 코미디다.
나는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 "이건 노트북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아뇨, 펩시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총살당하진 않았다. 그저 모두가 크게 웃었을 뿐.
(216쪽, <비 내리는 본다이 해변>에서)

하루키가 괜히 하루키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죠. 상업주의에 찌든 올림픽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적은 대목에서도 그랬지만, 인용한 것과 같은 사소한 저항(?) 장면에서도 그랬습니다. 이 책의 곳곳에서 하루키의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올림픽 상업주의의 현장 보고를 접합니다. 뭐, 그렇다고, 올림픽 자체를 어쩌자는 것은 아니지만요. 아. 그가 제안하는 올림픽 구상이 있긴 합니다. 216쪽 하단에 적은 그의 생각은 실현가능성을 떠나 참신합니다. ^^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드니 올림픽 현장으로 날아가서 3주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
- 중요한 것은 그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적은 것이라는 점. 올림픽과 관련하여 적은 것일 뿐 꼭 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글들로만 구성된 것도 아님.
- 시드니 올림픽을 매개로 하여, 때로는 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때로는 올림픽과 관련이 없는, 그의 생각을 적은 책.
- 곳곳에 배치한 웃음 유발 인자들. 군데군데 배치한 공감 유발 요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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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503 월 01:00 ... 02:30  비프리박
2010 0503 월 09:00  예약발행


승리보다 소중한 것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수첩,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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