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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싶은 것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45쪽, <침묵>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입니다. 하루키는 한권짜리 또는 여러권짜리 장편으로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단편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파괴력(?)이 있죠. 이 책에 실린 총 일곱편의 단편 가운데 장편과 다를 바 없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 적지 않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렉싱턴의 유령(단편집), 김난주(옮김), 열림원, 1997.  
   * 총 162쪽, 본문 159쪽.   
   * 원저 : レキシントンの 幽靈, 1996.

Y2K 바이러스를 두려워했던^^ 2000년에 구입한 책입니다. 8월 9일(수)이었네요. 그러고 보니 저의 하루키 '빠 생활'도 대략 10년이 넘었군요. 1990년대 말, 노르웨이 숲을 통해 하루키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1949년생인 하루키는 어찌 이런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걸까요.

2010년 1월 16일(토)부터 읽기 시작했고 1월 19일(화)에 읽기를 마쳤습니다. 감기로 약을 먹던 때라 지하철에서 많이 졸렸습니다. 160쪽이 채 안 되는 책을 무려 4일이나 걸려 읽은 이유입니다. 지금 같으면 하루 반 정도면 족할 책인데. ^^



렉싱턴의 유령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제목이나 표지를 클릭하세요.

 * 제가 읽은 책과 같은 책인데, 번역자와 출판사가 바뀌었군요.




         렉싱턴의 유령, 인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하루키의 단편집


하루키의 인상적인 단편을 접했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는 동명의 단편이 실려있죠.
작년에 읽은 「승리보다 소중한 것」과 올해 읽은 「해변의 카프카」는 장편입니다.
이 둘은 아직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죠. 아마도 서평이 곧 올라올 듯.


 

1. 이 책은?
  

하루키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하루키의, 인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한 작가적 자세가 여러 편의 작품에 관통되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대목도 적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
   - 렉싱턴의 유령
   - 녹색의 짐승
   - 침묵
   - 얼음사나이
   - 토니 다키타니
   - 일곱번째 남자
   -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옮긴이의 말)


일곱편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다분히 사회적으로(?) 읽힐 수 있는 <침묵>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연상케 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몰입이 가장 크게 되었던 작품은 <토니 다키타니>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하란 말이야!" "그러지 말란 말이야!"라고 외친 장면이 꽤 됩니다. ^^

인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한 하루키의 태도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사들을 선사합니다. 하루키의 이런 태도는 이 책에 엮인 작품들 대부분에서 온갖 대사들로 표출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무서움이야. 실제의 통증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을 상상하는 쪽이 훨씬 무섭고, 싫어. 그런 기분 알겠어?".
(143쪽,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에서)

 
 
2. 고독을 잊는 나름의 방법

... 체육관에 다니지 않았다면 난 참 고독하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53쪽, <침묵>에서)

그게 굳이 체육관이 아니어도, "무엇 무엇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나는 참 고독했을 거야"라는 말들 많이 하죠. 저 역시 예외는 아닐테구요. 인용한 말을 바로 그런 대사로 읽혔습니다. 물론, 저는 체육관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크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만. ^^ 어쨌든, 태어나면서부터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로서, 고독을 잊는 나름의 방법은 챙겨두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털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잊기라도 해야죠. 잠시이지만. ^^
 
 

 
3. 브레이크로서 이성의 발동

그는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100쪽, <토니 타키아니>에서)

자신의 소망, 바람, 욕망대로 흘러가는 자연주의(?) 삶도 필요하겠죠. 그리고 동시에 이제 거기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일테고요. 브레이크로서의 이성이 발동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언제나 이성을 발동하고 삶을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듯이, 언제나 원하는대로만 살아가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 삶이 가능하지도 않고요. ^^; 그래서 때로는 필요한 독백일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말은.
 
 

 
4.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공포

"나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포 그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잠시 짬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공포는 물론 존재합니다. ‥‥ 그것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고, 때로는 우리 존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 공포에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133-134쪽, <일곱번째 남자>에서)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공포! 공포는 나름의 방법과 지혜로 돌파하고 통과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단편 둘 혹은 셋을 이같은 공통적인 메시지로 읽었습니다. 공포라는 것이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실 외면하는 한 공포는 피해자를 좇는 속성이 있습니다. 책에서도 공포를 계속 외면하던 어떤 등장인물들은 어떤 시점에 어떤 일을 계기로 공포를 포용하고 공포와 화해합니다. 그 극적 구성과 묘사에 있어서 하루키가 발휘하는 작가적 능력은 그야말로 세계적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5.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히고도 남음이 있는 하루키의 단편 <침묵>

...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아오키를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를 설득시킬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견디는 것 뿐 ...
(59쪽, <침묵>에서)

인용문을, 문맥과는 무관하게 읽는 것이 됩니다만, 2008년부터 시작된 암흑시대를 사는 지혜로 읽어주십시오. ^^  다음과 같은 말은, 암흑시대를 숭배하는 맹신도들에 대한 묘사로 읽어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하는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 말주변이 좋고 받아들이기 쉬운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면서 집단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손톱만큼도 품지 않습니다." (64쪽.)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하루키의 단편집입니다.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 하루키의, 인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한 작가적 자세가 돋보입니다.
- 하루키의 생각을 그대로 적은 것 같은 대사가 적지 않아, 더욱 좋습니다.
-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다분히 사회적으로(?) 읽힐 수 있는 <침묵>.
  어떤 면에서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연상케 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몰입이 가장 크게 되었던 작품은 <토니 다키타니>라는 작품.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하루키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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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221 일 09:30 ... 11:20  비프리박


p.s.

연휴 끼고서 흐트러진 생활의 리듬은 리뷰 포스팅의 주기마저 늘여놨군요.
연휴 이전의 주기를 얼른 회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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