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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은 무엇인가?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땅의 민주화에 대한 외침이었고, 그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요구를 총칼로 무찔러 잔인무도하게 압살한 사건이다. 그들은 뻔뻔스럽게 양시론(兩是論)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것은 주인한테 붙잡힌 살인강도가 몽둥이 몇 대 맞은 것을 가지고 나도 얻어맞았으니 피차 마찬가지라는 소리하고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133쪽, 송기숙 <5월의 꿈 5월의 분노>에서)

학살자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방송과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피해자들한테는, 용서를 빈 적도 없고 사과를 구한 적도 없는 학살의 원흉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학살자를 숭배하는 자들은 활개를 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물어뜯는 하이에나들도 여전합니다. '5월 광주'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죠.

80년 5월 광주를 제대로 알기 위해 시도된 독서의 두번째 책이었습니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가 엮고 황석영이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이어서 읽은 책이지요.

이광영·전춘심 외 18인, 광주여 말하라:광주민중항쟁 증언록, 한국현대사 사료연구소 (엮음), 실천문학사, 1990.   * 총 369쪽.

책 뒤표지 안쪽 간지에 써놓은 걸 보니 199□년 5월 17일에 구입했군요. 아마도 날짜를 맞추어 구입했던 것 같습니다. 5월 광주에 관해서 읽겠노라, 하면서 말이지요. 대략 20년이 지나 다시 꺼내든 책입니다. 

2009년 6월 10일(화)부터 읽기 시작해서 6월 16일(화)까지 읽었습니다. 독서에 가속이 붙기 전의 독서라 시간이 좀 많이 걸린 것이기도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파고 들어 책장을 빨리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ㅠ.ㅠ 느리게 천천히 피부로 느끼며 읽었다면 말이 될 듯. 송기숙 선생이 쓴 꼭지의 글을 읽다가 지하철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한대 놓쳤던 기억이 있군요.



       광주여 말하라:광주민중항쟁 증언록, 80년 광주 그날의 생생한 증언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의 <광주 5월민중항쟁 사료전집>의 일부를 발췌한 증언집 <광주여 말하라>.
"80년 광주 살육은 그 해 5월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송기숙, 간행사에서)


 

1. 이 책은?

5월 광주의 피해자이기도 한 송기숙 선생의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에 의해 수집되고 녹취된 광주학살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정리한 책입니다. 스무명의 피눈물 어린 5월 광주에 관한 증언이 실려 있습니다. 학살자들이 갖다 붙이는 그 어떤 핑계와 구실도 다 날려버리는 '현장 보고'로 구성된 증언집입니다.

광주의 저 변두리 송암동의 학살만 보더라도... 못자리에서 피사리하는 농부에게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히고 저수지에서 목욕하는 중학교 1학년짜리를 오리사냥하듯 쏘아 죽였으며, 배수관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여인에게 6발이나 총을 쏘아 죽이고 도망치다 벗겨진 고무신을 줍는 국민학교 4학년짜리한테 10여 발이나 총을 갈겨 몸뚱이를 걸레를 만들었다.
(133쪽, 송기숙 <5월의 꿈 5월의 분노>에서)

인터넷 서점 '알놔둔' 그리고 '인터공원'에서 확인해보니 이 책은 현재 검색조차 되지 않는군요. 읽어야 할 많은 책들이 절판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독서의 가벼움'을 좇는 우리의 출판문화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2. 방안에서 엄마를 안고 있던 아이와 그 엄마에게도 집중사격이...

7, 8명이 2층 방에 엎드려 있었지. 계속해서 총을 다다다‥‥‥ 쏘데. 총소리가 나니까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우는데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아서 아이를 안고 일어섰어. 그 방 창문이 열려 있었는데 열린 창문을 통해 사람이 보이니까 군인들이 집중사격을 해댄 거야. 내가 총에 맞고 쓰러지자 그 방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다른 방으로...
M16 총알이 손명선씨의 왼쪽 턱을 맞고 뒷목으로 관통해 엄마를 안고 있던 철수의 오른쪽 팔에 박혔다.
(337-338쪽, 손명선·김명민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에서)

시위 현장에 있었다고 살육의 대상이 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시위 현장도 아닌 곳에서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집중사격은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학살자들은 살육이 불가피했음을 노래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불가피했다는 것일까요.
 
 

 
3. 1980년 5월 18일, 그때 그곳에서는?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 공수대원들은 시민들을 무작정 두들겨 패고서 기진맥진 상태의 사람을 질질 끌어다 트럭에 실었다. 더이상 실을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사람들을 트럭에 던져댔고 공수대원 2명은 트럭 위를 걸어다니며 사람들을 차 바닥에 바짝 엎드리게 하면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했다. 공수대원은 총을 들고 서서 마치 짐승 다루듯 군홧발로 지근지근 밟았다.
(65쪽, 박시훈 <의무전경으로 시위진압에 나서>에서)

그때 그곳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저지른 집단 살육이 과연 용서될 수 있는 일일까요. 그때 그곳에서 있었던 학살에 관한 보고와 증언을 접할 때마다, 그 만행은 용서의 범위 밖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자국민에게 이따위 학살을 자행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학살 명령을 내린 자들이나 학살을 실행한 자들이나, 과연 인간이기는 한 것일까요.
 
 

 
4. 1980년 '광주'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데모하는 사람들을 보고 '배아지가 따땃항께 데모나 하제'라고 생각했다. 5.18을 겪고 나니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달았다. 지금에 와서 나는 다시 옥고를 치르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정권이 자기들 천국을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275쪽, 이성전 <정당방위를 내란실행이라니>에서)

과연 2010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위에 인용한 이성전의 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독재자는 자신의 천국을 만들 것이고, 진실을 말하려면 인신의 구속을 각오해야 하는 세상! 1980년 '광주'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5.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는 그날의 아픈 상처...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고 사람들은 그렇게들 쉽게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당시의 일들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잊어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내 가족이 계엄군의 총에 찢기워졌다는 생각이 떠오를 적마다 치밀어 오르는 적개심을 주체하기도 힘이 드는데 어찌 그날의 아픈 상처가 쉽사리 기억에서 없어지겠습니까.
(336-337쪽, 손명선·김명민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에서)

말이 쉬워, '잊어라'라고 말하고, '세월 지나면 잊혀진다'고 하지만, 잊어서도 안 되고 잊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피해를 입은 분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선명하게 그날의 아픔이 떠오릅니다. 잊고 싶고, 잊으려 노력해도, 내 가족이 당한 피해가 지워지지 않는 한, 그날을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학살자들과 그 숭배자들은 용서를 구한 적도, 사과를 한 적도 없으면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자꾸만 잊어라, 용서해라, ... 라는 말로 그들을 두번 괴롭힙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 학살자의 후예들이 아직도 '주류'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들을 '주류'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 OTL

 
 
 

  <리뷰의 요약> (긴 글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한! ^^)
- 누가 학살자들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는가. 그들은 용서의 범위 밖에 있다!
- 광주학살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정리한 책.
- 피눈물 어린 5월 광주에 관한 증언 스무편을 골라 실은 증언집.
- 학살자들이 갖다 붙이는 그 어떤 핑계와 구실도 다 날려버리는 '현장 보고'로 구성된 책.
- 5월 광주의 피해자이기도 한 송기숙 선생의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의 노력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던 책. 불행히도, 확인한 바로는, 현재 절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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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117 일 23:23 ... 23:55 서두&인용
2010 0123 토 07:30 ... 08:30  비프리박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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