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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하기 어렵다. 그럴 때 당신은 학연, 지연, 혈연을 찾아 누구에겐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 금방 해결된다. 당신에겐 전혀 죄의식이 없다. 그건 세상를 살아가는 지혜의 기본일 뿐이니까. 그러나 당신처럼 그렇게 전화 한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연, 지연, 혈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누구엔가 돈을 주고 어떤 일을 해결했을 때 당신은 그건 부정부패라고 분노한다. ...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강준만, 『서울대의 나라』(「불멸의 신성가족」, 128쪽에서 재인용 )



다소 충격적으로 읽은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이었습니다.
뭐랄까 '설마 그렇진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라고(!) 강렬하게 활자화되었을 때의 충격과 놀라움이었습니다.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는 부분을 양지로 드러낸 시도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책에서 김두식이 밝히는 내용이 신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김두식의 시도가 신선하다는 것입니다. ^^a

김두식,「불멸의 신성가족: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창비(창작과비평사), 2009.
   * 본문 326쪽. 총 342쪽.


김두식은 '양적 연구'가 아닌 '질적 연구'를 하겠다고 책의 서두(21-25쪽)에서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통계조사에 기초하여 각종 퍼센트를 근간으로 진행되는 연구가 '양적 연구'라면, 어떤 집단 구성원들과의 대화와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결론을 도출해 내는 연구는 '질적 연구'입니다. 희망제작소로부터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사법' 분야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시도하게 된 우리나라 사법분야에 대한 '질적 연구'라고 김두식은 밝히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박원순 변호사가 상임이사로 있는 민간 싱크탱크think-tank를 자임하는 단체. 340쪽 참고.)

티스토리-알라딘 서평단 미션꺼리로 받은 책입니다. 5월 26일(화)에 수령했습니다. 그전부터 읽고 있던, 광주민중항쟁의 눈물겨운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독파하던 날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월 27일(수)부터 6월 3일(화)까지 꼬박 1주일을 바쳐 읽은 책입니다. 티스토리-알라딘 서평단 미션꺼리로는 드물게, '책다운 책'이 온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은 후의 느낌도 그렇구요.



      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을 말한다 [1]



 

1. 대한민국의 사법 패밀리, 사회와 어울려서는 안 될 신성가족?

법원 직원 전체를 가족으로 본다면, 그 가족은 보통 가족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경쟁을 거쳐 선발된 일종의 '신성가족(神聖家族)'입니다.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첫번째 공동저작인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를 논박한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 "비평가는 절대로 몸소 사회와 어울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바우어 일파를 맑스는 신성가족이라고 부릅니다.  ... / 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가족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바로 이 신성가족을 떠올립니다.
(146-147쪽, 제3장 <부담스러운 청탁, 무서운 평판>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소속 구성원들을 '가족'이라고, '가족'같은 존재들이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김두식은 법원이나 검찰에서 자신들을 '가족'이란 말로 부르는 걸 듣고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두식은 그들에 대해, '가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로부터 구별되고 사회 속에 어울려서는 안될 '신성가족'이 연상되었나 봅니다. 제가 그 '가족'이란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집단이기주의'와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큰 법원, 검찰 같은 집단이 가지는 '집단이기주의'는 일반인들의, 소위 님비(NIMBY)라든가 핌피(PIMFY) 같은 집단이기주의와는 그 해악에 있어서 비교할 바가 아닐 겁니다. 그간 사법 패밀리가 유지해온 '신성가족'성, 일반사회로부터의 구별과 분리, 그들만의 폐쇄성 그리고 집단이기주의... 이것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진보에 걸림돌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김두식의 이 책은 심리적 저항감 없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2. 정보를 흘리는 떡찰, 받아적는 기자, 실종된 피의자 인권

말로는 "우리가 기소하는 내용만 보도해달라"고 하지만, 검찰 입장에서도 주변 여론을 봐가면서 수사를 해야 하고, 검찰에 우호적인 여론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수사 진행상황을 "조금씩 흘려줄 수 밖에" 없습니다. 피의자가 "나쁜 놈이라는 스탠스(stance)"가 유지 되지 않으면 여론이 무고한 표적수사 또는 정치수사라는 쪽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검사들이 그렇게 흘려주는 것을 "받아먹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줄 여지는 없습니다.   * [   ]는 비프리박.
(290쪽, 제5장 <팔로역정, 법조인이 이겨애냐 하는 여덟가지 유혹>에서)

자살한 전직대통령 노무현이 떠올랐습니다. 떡찰은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서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리고, 기자들은 '검찰측 주장'을 받아적고 언론과 방송은 그것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행태...! 언론과 방송은 편하니까(!) 확인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적지만, 그로 인해 피의자 인권은 실종됩니다. 전직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갈 정돕니다.

나중에 재판에서 그것이 뒤집혀 '검찰측 주장'과는 상반되는 판결이 나와도, 여론에 의해서 피의자에게 가해진 혐의는 벗겨지지 않습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매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피의자의 자살이라고 하는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떡찰과 언론-방송은 과연 반성을 하기나 할까요. 또, 지금 자신들이 뭔 짓을 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요.

 
 

 
3. 약자의 고통에 침묵하는 법, 약자의 항의에 약자를 처벌하나

이해영씨가 노동현장에서 느낀 문제들도 변상환 교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변 교수는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밑줄은 비프리박.
(81쪽, 제1장 <비싸고 맛없는 빵>에서)

법이라는 것이, 법조계라는 집단이, 사법부라는 권력기관이, 과연 누구의 편인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왔는가? 라는 생각을 하면 김두식의 인용과 지적은 정확한 것 그 이상이라는 생각입니다. 본문에서도 거론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현장에서 구사대의 식칼에 옆구리를 난자 당할 때까지도 닥치고 있던 그 잘난 법은, 노동자의 저항과 항의에 노동자를 처벌합니다. 우리의 슬프디 슬픈 법현실, 사법현실입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무조건 준법'을 외치는 것들의 주장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겠죠. 사회적 약자들은 닥치고 있거나 당하고만 있으란 이야기 밖에 더 되겠습니까. 법의 현실적 편파성과 당파성 그리고 '무조건 준법' 논리 뒤에 숨은 허구성과 약자억압의 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두편의 글로 나누어 올립니다.
part 2는
http://befreepark.tistory.com/600에서 이어집니다.
리뷰의 part 2는 며칠 후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 (아마도 10일 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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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606 토 04:40 ... 06:50  원글작성
2009 0606 토 21:00 ... 21:30  수정작업
2009 0606 토 22:25 ... 22:30  비프리박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s.1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하지만 리뷰의 내용과 방향은 Tistory와 알라딘과 무관합니다.
 한명의 독자가 어떤 책을 읽은 후 작성하는 독립적인(!) 서평, 리뷰임은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

p.s.2

6월 6일 새벽 리뷰 [1] & [2] 탈고. 밤 리뷰 [1] 수정작업 후 22:30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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