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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가족의 행복만 열심히 추구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동기생들보다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아무 잘못도 없이 밥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때문에 잠 못 이루며 가슴 아파 해본 적이 없다면, 과연 정상적인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 321쪽, <제발 열등감이라도 좀 느끼며 살자>에서)


제목이 저를 유혹한 책입니다. 가끔 어떤 글에서 만난 필자 하종강은 저에게 숙제같은(마음의 빚같은?) 사람이었는데, 그 점이 이 책의 제목과 함께 저를 유혹했습니다. ^^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메시지의 강렬함 만큼 반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요. '희망은 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희망을 버려야 할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저런 맥락 속에, 하종강을 알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펼친 책이었습니다.
 
하종강,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우리 시대와 나눈 삶, 노동, 희망, 한겨레출판, 2008.   * 총 369쪽.

2011년 2월 27일(일)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2월에 <함께 읽기> 프로젝트의 미션 도서였는데 꽤나 늦게 펼친 셈입니다. 읽기를 마친 것은 3월 3일(목)이었습니다. 꼬박 나흘 반나절을 바쳤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제 생각의 확인과 강화^^를 안겨준 책이었고 더러 하종강에게서 '한 수 배운' 책이었습니다.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책이기도 했고요.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10점
   하종강 지음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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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종강,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그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싶게 한!

( 하종강,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을 버려야할 때는 없을 거다.
희망은 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


 

1. 하종강은? 이 책은?

하종강은 제가 구독하고 있는 <한겨레21>에서 가끔 만난 필자였습니다. 제 느낌으로 '노동자의 벗'이자 '노동운동의 동지(同志)'로 우뚝 서 있는 존재, 하종강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고 이 책을 읽은 후에도 변함없이 그렇습니다. 이 책에는 그가 노동자와 노동운동과 어떤 유대와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나옵니다. 물론 에피소드를 통해서죠. ^^

이 책은 2008년 출간된 책이지만 개개의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은 2000년을 전후한 시점으로 읽혀집니다. 그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진작에 맘 먹은 책을 뒤늦게 내게 된 것 같습니다. 슬픈 것은, 책의 내용과 현재(2011년) 사이에 대략 10년의 시차가 벌어져 있는데도 우리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노동운동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대응방식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수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따위의(?) 수확은 원치 않는데 말입니다. 엄청난 세월의 격차, 격세지감이 느껴져야 기쁠텐데 말입니다.  
 
  
 

 
2. 지금도 반복되는 현실, '홍대 사건'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학교에서 환경 미화원 일을 하면서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계속 고용이 승계됐던 사람들을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쫓은 사람은 우리 사회 '여류 명사'가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데, 집에서 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노후를 즐겨야 마땅한 할머니들은 추운 겨울에 도로 옆 허름한 천막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농성을 하는 '투사'가 되어 늘그막에 새삼 '노동운동'을 공부해야 하는 이 썩을 놈의 세상...
(154쪽, <할머니 환경 미화원>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교육계에 몸 담고 있다고, 사회의 저명 인사라고, 사람들한테 존경을 받는 반면, 누군가는 여전히 말도 안되는 급여에 내몰리다 못해 한겨울에 해고되어 길바닥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하종강이 10년 전의 현실로 적고 있는 '이 썩을 놈의 세상'은, 2010~2011년 겨울에 '홍대 사건'이란 이름으로 고스란히 반복됩니다. '노동 유연성'이라는 말로 치장되는 '해고시킬 자유의 극대화' 속에 노동자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언제든지 해고될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야말로 '이 썩을 놈의 세상'!
 
 

 
3. 노동자의 파업에 '시민의 불편'은 누구의 논리냐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하는 강연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털모자를 쓴 학생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이번에 한국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인데요. 며칠 전에 철도 노조 파업할 때, 텔레비전 뉴스에서 시민들 인터뷰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모두들 한결같이 자기가 불편하다는 것만 이야기하는지‥‥‥. 파업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는지, 참 이상했습니다."
(316쪽, <노동문제, 좀 제대로 가르치자>에서)
 
하종강은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동지'이자 '벗'이자 '비빌 언덕'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은데요. 노동자의 파업에 '시민의 불편' 운운하는 목소리는 그에게 기가 찰 따름인, 참 어이없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조금 눈을 크게 떠서 세상을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떠드는 나라는 지구 상에 대한민국 말고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자신도 노동자이면서 다른 노동자의 파업에 '시민의 불편'을 말하는 것은,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꼴이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그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논리이고 누구에게서 나온 논리일까요. 책의 이곳 저곳에서 이같은 '반노동자적 목소리'에 대한 격파를 하종강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4.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변한 건 없었다
 
<경찰특공대>. 바로 그 '솔개부대'가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죽이는 기술을 배운 사람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지 훈련받은 사람들, .... 바로 그 사람들이, 절반가량이 여성이었던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김영삼 문민정부 이래 단 한 번도 시용된 적이 없었다던 테러진압 부대를 김대중 '국민의정부'가 노동자를 때려잡는 데에 사용했던 것이다.
(111쪽, <예쁜 옷과 고운 화장>에서)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해서는 그 당시에 뉴스나 기사를 통해 접했을텐데 하종강의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새로왔습니다. 잊고 지냈던 것일까요. 기억에 묻혔던 것일까요. 다소 과거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는 내용을 담은 책도, 그래서 읽을 필요가 있단. ^^ 어쨌든, 다시,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관한 하종강의 전언과 증언을 토대로 그 상황을 종합할 때, 더더욱 기가 찬 것은 그것이 '국민의 정부' 하에서 벌어진 일이란 것이죠.

그리고 찾아보면 아마도 '참여정부' 하에서도 노동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비일비재할 걸로 짐작됩니다. 수구 정당에서 보수 정당으로(혹은 개혁 정당으로) 정치 권력이 이동해도, 노동운동에 대한 대응에서 변한 건 없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수구 권력과 보수 권력 혹은 개혁주의 권력 사이의 차이가 전혀 없었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비근한 예로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 간에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5.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에서 보는 이율배반, 그리고 그 일상화
 
TV에서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사회를 진행하던 여자 아나운서가 눈물을 글썽거리고 목이 메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감동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나운서는 그 방송국 노동조합이 파업을 했을 때, 뉴스를 계속 진행하겠다며 노동조합에서 탈퇴했던 사람이다.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노동조합의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 땅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가장 빠르고 바른 지름길이[다].
(181쪽, <노동 대학에 가다>에서)
 
이같은 노동운동에 대한 이율배반은 너무나도 일상화되어 있죠. 권력을 장악한 자의 예를 들어도 비슷합니다. 누군가 없는 사람의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의 2MB 역시, 노조 파업에 엄단을 부르짖고 불법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세상에 과연 불법이 아닌 파업이 있을까요? 에효.) 

'누군가 없는 사람'과 '파업 일선에 나선 노동자'가 서로 다른 존재일까요? 한쪽에 대해선 동정 어린 눈물을 흘리고 다른 한쪽에 대해선 비난 서린 탄압을 퍼붓는 이율배반의 핵심에는 무엇이 놓여있는 걸까요.

이같은 이율배반은 방송을 통해, 권력자의 목소리로,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시민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일상화됩니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필터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하종강의 말대로 '노동조합의 파업에 적극 참여'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것이 '이 땅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가장 빠르고 바른' 그리고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보는] 식민지, 분단, 친일독재, 군사독재로 이어진 자본주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도 또 있는지 보라. 그 비정상적인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권리를 이해하는 수준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나라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고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미국보다도 훨씬 낮다.
(347쪽, <노동조합은 '공공의 적'이 아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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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307 월 18:50 ... 17:20  인용입력
 2011 0308 화 15:50 ... 16:3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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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하종강 | 한겨레출판 | 200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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