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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이란 단순한 반성을 말하지 않는다.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길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없음을 인식하고 새 길을 내기 위해 혼란의 여정에 기꺼이 들어가서 새로움을 탄생시키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이 책, 133쪽, <노동하는 몸 놀이하는 몸>에서)


앞서 읽은 다른 책이 힌트가 되어 읽게 되는 책이 있죠. 조한혜정의 이 책이 바로 그랬는데요. 박원순 변호사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검둥소, 2009)가 매개가 되었습니다. 김종철 외 6인이 쓴 「거꾸로, 희망이다」(시사in북, 2009)도 징검돌이 되었고요. 이 공저의 책은 박원순 변호사와 조한혜정 교수도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죠. 두 책 모두 2009년에 읽었군요.
 
조한혜정, 다시 마을이다: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또하나의문화, 2007.   * 총 238쪽.

2010년 11월 28일(일)부터 12월 1일(수)까지 나흘 동안 제 지하철 독서를 빛내준 책입니다. 마지막날은 퇴근 후 집에서 읽은 분량이 좀 됩니다만 거의 지하철에서만 읽었습니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절대 얇지 않은 그런 책이었습니다. 판형은 작지만 공감의 크기는 작지 않은 책.
 
 
다시, 마을이다 - 10점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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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마을이다」,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집단적 생존 모색.


( 조한혜정 교수의 「다시 마을이다」. '위험 사회'라 불리는 탈근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생존 모색. )


 

1. 이 책은, 조한혜정 교수는?

이 책은 조한혜정 교수가 2000년을 전후한 10여년 간 사회 시스템에서 이탈하거나 탈락하거나 탈선하거나 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겪은 경험, 거기서 비롯된 생각과 모색을 적은 글 모음입니다. 애초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 집필한 책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지향점이 있는 책입니다. 어차피 조한혜정 교수의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서일테죠.

이 책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스템, 소위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을 모색합니다. 마을의 복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대안적인 학교의 모습을 생각하고 집단적 생존을 모색합니다. 많은 부분, 개인적으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조한혜정 교수는 부모 성(姓) 함께 쓰기를 하고 있지 말입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는 조혜정이었으나 그후 일어난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하여 조한혜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여기에 동참하고 있진 못하지만 아마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있다면 동참했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 그리 되면 '박서○○'가 되어 본의 아니게 권투선수가 됩니다만. 

 
 
 
2. 새로운 시대, 위험사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까지 익히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은 불편한 것이 되고, 부당한 것이 되고, 또 '후진 것'이 되고 있다. 기존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시공간을 열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고, 그들이 새롭게 형성해 가는 시대를 학자들은 '후기 근대', '탈근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
남미 인디언들을 연구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1960년대에 이미 합리와 문명의 시대라 자부하는 근대가 실은 가장 야만의 시대임을 부족민들의 삶을 통해 보여 준 바 있다. 인류 역사는 진보하는가? 부모 세대의 사람들은 다 그리 믿고 있지만 지금 이삼십대 중에 세상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울리히 벡은 이러한 상황을 '위험 사회'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   * [   ]와 밑줄은 비프리박.
(87-88쪽, <온라인 게임 산업과 교육 개혁>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지만 그것은 '위험 사회'라 불러 마땅한 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탈근대라고 불리고 있는 만큼 근대성을 버려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도가 보일 것 같습니다. 근대와 근대성은 서구 인류학자의 말대로 야만의 시대라는 말로 압축되어 마땅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성찰을 통한 '탈'근대를 시도해야할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탈'근대가 전근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건 아닐 겁니다. 탈근대는 그래서 (이 리뷰 서두에 인용한 바와 같은)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성찰의 과정'이 될 거라 봅니다. 쉽지 않겠죠.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3. 마을, 주거의 핵심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경비원이 있는 성벽을 두른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이고, 소비를 과시하기 위한 이웃이 아니라 상호호혜적 관계를 맺어가는 이웃의 형성이다. ... 미래의 주거는 바로 이런 인간 삶의 기본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근대주의'를 넘어서서 대안적 미래를 만들어가는 지점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143쪽)

노인들이 골목길 이곳저곳에 모여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고, 수시로 물물 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가지 않고 가게도 자주 망하지 않아 단골이 되는 그런 마을이 후기 근대적 주거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44쪽)
(143, 144쪽, <집이 아니라 마을이 필요하다>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탈근대 '위험 사회'를  살아내기 위한 방도로 '마을'의 복원을 이야기합니다. 조한혜정 교수가 말하는 '마을'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대했던 그 무언가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은 후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원자화되어 고립된 채 살아가는 주거지로서의 집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웃! 그리고 벽으로 둘러친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를 만드는 마을! 대안적 미래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두번째 단락에서 "자주 이사를 가지 않고"라는 대목이 가장 공명을 일으켰습니다. 한 집에, 한 동네에 오래 거주하고 그럼으로써 공동체적 '마을'의 일원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그 바람을 짓밟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4. 학교, 놀이터이자 배움터여야
 
... 수요자의 당장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게임에서 학교가 시장을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학교가 살아남으려면 '양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 양도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친구들과 뛰놀거나 수다 떠는 시간,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경험, 가족과 이웃들이 모인 앞에서 그간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학예회, 선생님에게 한 송이 꽃을 드리는 감사의 마음, 이런 것이 아닐까? ...
학교는 이제 가족 공동체, 지역 공동체, 때로 교회를 닮은 놀이터이자 쉼터이자 배움터가 되면 된다. 아이들은 '보살핌'의 원리가 살아 있는 학교에서 쉬고 놀면서 위협과 불안이 가중되는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109쪽, <학교를 살려 사회를 살린다>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90년대 중후반에 '또하나의문화'를 주창할 때부터 '학교'를 주요 고민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본인이 학교에 몸담고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학교가 갖는 자체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학교가 그만큼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테고요.

언제나처럼 조한혜정 교수는 '노는 공간, 쉬는 공간, 그러면서 공부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대안적 학교로 제시합니다. 그가 말하는 '탈근대' 학교의 지향점이기도 하고요. 무한경쟁 지향적인 현재 대한민국 학교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대안적인' 학교상일텐데요. 조한혜정 교수가 실제로 그런 대안학교 만들기 작업에 몸담고 있기도 하죠. 모쪼록 그 운동이 작으나마 사회적으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합니다.

 
 

 
5. 집단적 생존, 희망
 
갈수록 사람들을 협박하고 몰아치는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시대를 개인 힘으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개인 차원의 적자생존이 아니라 집단적 생존을 고려해야 하고, 집단적 생존은 모두가 모여 서로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축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182쪽, <추석속으로:'우리 마을' 명절 만들기>에서)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시스템,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은 아마도 조한혜정 교수가 말하는 '집단적 생존'이 방향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개인들의 연대 속에서 집단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위 몇 퍼센트만 살아남는 경쟁은 필연적으로 대다수의 탈락자를 만들어 냅니다. 상위 몇 퍼센트에 끼어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하지만 모두 상위 몇 퍼센트에 낄 수는 없는 시스템이라면 서로 기대고 연대하는 속에서 집단적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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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126 수 11:00 ... 12:20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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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이다 다시, 마을이다
조한혜정 | 또하나의문화 | 200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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