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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지금 최대의 목표, 아니 사실상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돈 버는 인간'의 생산이다. 근년 들어 ... 발생하고 있는 이른바 '학교 붕괴 현상'은, 다른 여러 원인들 중에서도, 시장 논리의 사회 지배, 돈의 우상화, 기업 자본주의의 문화 장악, 오락-소비문화의 확산 등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라는 세대에게 광고 메시지, 오락-소비문화, 일확천금의 성공담, 손쉬운 돈벌이 같은 것들 말고는 사실상 어떤 의미 있는 가치 준거의 틀도 지금 우리 사회는 제시하지 못한다. 
(135쪽, <시장전체주의와 한국 인문학>에서)


사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칼끝 같은 지적과 비판이 유의미한 만큼, 사회가 흘러가는 전체적 흐름 그리고 국가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거시적 철학적 성찰과 비판도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겠죠. 도정일의 이 책을 읽게 된 건 후자에 대한 생각에서였습니다.

도정일,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생각의나무, 2008.   * 총 199쪽.

주로 1990년대 후반에 쓰인 글들을 묶은 책입니다. 대략 10여년 전에 비평지에 실렸던 글들입니다. 제목에서 보듯 근본적, 철학적 접근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10년이 지나 읽어도 시간차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물론, 간혹은 10년 전 이야기군, 하는 때가 있긴 하지만. ^^

2009년 9월 28일(월)부터 읽었네요. 9월 30일(수)에 읽기를 마쳤고요. 책 내용이 쉬운 편은 아니지만 책이 얇다는 것이 독서기간을 짧게 해주었습니다. 게다가 도정일 교수의 글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 10점
도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시려면 제목이나 표지를 클릭하세요.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 철학적 비판적 성찰.


도정일 교수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은 얇은 만큼 울림이 강하다고나 할까요. 


 

1. 이 책은? 도정일은?

이 책은 도정일이 《녹색평론》과 《비평》 등에 발표한 시론과 비평글을 모은 책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의 횡행, 전체주의적 사고의 만연을 주축으로 하는 야만적 문명의 특성에 대한 철학적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도정일은 경희대 교수를 지낸 후 현재 같은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는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입니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써내는 글들을 기다려 읽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2. 버려서는 안 될 것을 버리게 하는 악당들.

다수성의 위력을 이용한 악당들의 트릭은 훌륭하다. ... 지금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들은 [브라만의] 개처럼 들판에 버려지고 있다. 정치권력, 자본, 선정주의 매체들이 그 가치들을 쓸모 없는 것이라 하루 세 번씩 떠들고, 기술 유토피아의 이데올로기에 홀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브라만의 의혹에 빠져 그것들을 버리고자 한다. 그런데 그 버려서는 안 되는 것, 버릴 수 없는 것, 사람들이 행복 이데올로기에 홀려 내동댕이쳐서는 안 될 것들은 무엇인가?   * [   ]는 비프리박.
(45쪽, <밀레니엄, 오, 밀레니엄!>에서)

도정일이 말하는 '개'와 '브라만'은 '브라만의 개' 에피소드에서 나온 것입니다. 브라만이 짊어지고 가는 염소를 뺏기 위해, 건달 패거리가 시간차를 두고 염소를 자꾸 개라고 말하고 우기고 놀리자 그 브라만은 자신의 염소를 개로 여겨 버리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다수성의 위력'을 이용한 악당들의 트릭'에 넘어가는 걸 말하는 것이죠. 우리의 주류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불어넣는 게 '브라만의 개 트릭'과 얼마나 다른 건지, 그리고 우리가 트릭에 속아 팽개치는 소중한 가치들이 '브라만의 염소'와 또 얼마나 다른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3. 동물적 경쟁과 승리지상주의의 야만성.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지닌 동물성과 야만성을 승인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오히려 절대적 가치, 명령, 행위기준으로 올려세우는 일이다. ... 경쟁은 무조건 이기자는 것이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국가가 [추구하는 바]의 내용과 방향을 그 같은 동물적 수준에 설정했을 때 그로부터 발생할 가치의 전도와 혼란, 비정상성과 비이성성의 확산, 사회규범의 정글법칙화 사태는 심각한 것일 수 있다.
(91-92쪽, <문명의 야만성과 세계화 비전>에서)

정확한 지적입니다. 혜안이자 탁견이 돋보입니다. <문명의 야만성과 세계화 비전>은 1995년에 발표된 글인데요(녹색평론 21호).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은 지적을 담고 있어, 동의와 공감을 자아냅니다.

어찌 보면, 15년이 지나도 도정일의 이같은 지적이 여전히 유효하도록 만드는 사회와 국가의 지향점이 근본부터 틀려먹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집단이 2010년 현재에도 정권을 차지하고 있군요. 굳이 도정일의 비판이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4. 음울한 시장전체주의의 미래.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가 몰락한 데에는 비판적 지성의 학살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이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음울한 가능성은 권력-자본-기술의 3자 연정이며 이 연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시장전체주의이다. 시장전체주의는 정치전체주의보다 훨씬 날씬하고 세련되고 화려하고 풍요롭다.
(199쪽, <시장전체주의와 인문 가치>에서)

도정일이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의 공통점으로 들고 있는 "정치독재" "실용교육" "반지성주의"는 우울하게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특징이라 말해도 한치 어긋남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가치가 모든 다른 가치에 우선하는 시장전체주의의 지배, 그런 것이죠.

이것은 비단 누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어느 당이 집권 여당이 되느냐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시장전체주의의 가치를 사뿐히 즈려밟을 수 있는 정치집단이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권력이라도(!) 장악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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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716 금 08:00 ... 09:15  비프리박


도정일:시장전체주의와문명의야만
카테고리 인문 > 인문교양문고 > 인문교양문고기타
지은이 도정일 (생각의나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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