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B와 D 사이다. Birth와 Death, 그 사이에 삶이 놓여 있다. 우리는 B와 D 사이를 살아간다. 어느 철학자는 B와 D 사이에 C를 놓고 싶었던 것인지, 삶은 Choice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살아가는 것은 출생으로써(B) 비로소 시작하고 죽음으로써(D) 마침내 끝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장이 뛸 때 우리는 살아 있다. 심장은 왜 뛰는가? 라는 물음에 나는 아직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뇌가 활동할 때 우리는 살아 있다. 뇌는 왜 활동하는가? 라는 물음에 나는 아직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접하지 못했다. 내 나름, 겨울을 뚫고 꽃이 피어나는 자연현상과 생명현상은 다르지 않을 거라 본다.


촛불이 꺼지듯, 꽃이 떨어지듯, 별이 지듯, 생명은 진다. 나는 영혼을 믿지 않는다. 촛불에 영혼이 없다면, 꽃에 영혼이 없다면, 별에 영혼이 없다면, 사람도 영혼이 없다. 나는 영혼을 믿는다. 사람이 영혼이 있다면, 촛불에도 영혼이 있고, 꽃에도 영혼이 있고, 별에도 영혼이 있다. 세상의 유한한 모든 존재에 영혼이 있다.

죽음은 삶과 유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생명 현상이 중지하는 순간 죽음이 이어진다.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삶 속에서 우리는 수 많은 죽음을 듣고 보고 접한다. 아무도 타인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피해야 할 그 무엇으로 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 하.

'사는 것,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사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나는, '원하는 바를 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반문으로 답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한번 살다 가는 삶, 즐겁게 살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앞서 살았던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죽을 때 '안 해서 드는 후회가 가장 크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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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521 월 20:55 ... 21:25  비프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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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1 22:00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0:09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자전거 타셨군요. 부럽.
      저는 그저 자연을 벗하며 걷기를 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삶과 죽음이란 게 숨을 쉬고 못 쉬고의 차이죠.
      한숨상간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바이구요.

      영원히 살다 갈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은
      주로 힘 있고 돈 있고 타이틀 버젓한 거 달고 있는 자들 중에 있죠?
      저는 쥐닮은 자가 떠오르는군요. 그렇게 돈을 모아서 어디다 어떻게 쓰고 가려나.

      후회없는 삶은 없겠죠.
      말씀처럼 덜 후회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걸 테구요.

      아. 내가 떠나온 별로 돌아갈 날. 흐으.
      저는 그저 이 땅에서 사라질 날 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

  2. BlogIcon DAOL 2012.05.21 22:31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우리는 늘상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 놓여 있습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은 결코 헛된 외침이 아니라죠..
    저는 가끔씩 생각해 봐요..
    죽을 병에 걸려서 죽음을 암시받았다면 적어도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은 있다라는 생각^^
    허나 우리들은 대부분 예기치 않게 삶의 끈을 놓을 수도 있다죠..

    산다는 것은 늘 후회와 번민의 연속성으로 표류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할 운명을 가졌기에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희망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야겠죠..

    지천명을 앞둔 싯점에서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닷..ㅋ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0:15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우리는 살아서 이렇게 숨쉬고 있지만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죠.
      죽음이 저 아득히 먼 곳에 떨어져 있지 않을 거구요.
      말씀처럼 예기치 않은 때에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올 테죠.

      우리는 살아야 할 운명이지요.
      살고자 하는 운명이고 살고 싶어하는 존재이지욤.
      늘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삶을 희망하면서 나름의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들.

      지천명이란 단어와 다올님과의 거리는
      그것과 저와의 거리와 다르지 않을테죠? ^^;
      내용과 종류는 다르겠지만 저 역시 생각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질감.

  3. BlogIcon Konn 2012.05.21 23:12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가끔 삶의 마지막 순간, 못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이룬 꿈이 생각나겠느냐 했을때, 그 사람은 둘 중 하나는 성취했을것이라는 전제하에 밥을 얻은 사람은 꿈을, 꿈을 이룬 사람은 밥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가진것보다 못 가진것에 욕심을 뻗치는게 인간이니까욤 ..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06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그렇죠. 가진 것보다는 못 가진 것에 더 아쉬움이 남겠죠.
      본문에서 적었던 대로, 누군가의 말처럼, 죽을 때 '못한 일'이 더 많이 생각날 겁니다.

  4. 유리파더 2012.05.21 23:15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늘 그런 생각하고 살았지만, 최근은 바쁜 일상에 삶의 의미를 잊고 살았나 봅니다.

    전 삶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의 의미있는 활동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의미 없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되고,
    다시금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덕분에.

    • 유리파더 2012.05.22 19:25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만일 말입니다.
      사랑하던 그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이 있으셨다면, 감정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 분과의 완전한 이별을 만들지 못할 뿐더러 그런 헤어짐이 그 동안 아쉬웠던 그리움과 이별이 기억속에 더욱 깊이 남아 있을테니까요.
      순간 생사의 문턱을 넘었던 저였던지라 이런 생각을 아내와 딸을 보며 늘 하게 됩니다..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07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일상이 바빠지는 만큼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은 잠시 잊게 되지요.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구요.

      살아가는 게 사실 생명 붙어 있는 동안에 의미있는 하는 거라야 하는 거죠.
      무의미한 일로 시간을 보내는 때도 있고 그럴 때 이런 생각해야죠.

      제 덕분에는요, 무슨. ^^;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09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언제나 감정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아끼는 누군가와, 가까운 누군가와, 사랑하는 누군가와, ...
      영영 헤어져야 할 때 역시 감정에 충실해야죠.
      울고 싶으면 우는 것이고 울고 싶지 않으면 울지 않는 것이고. 그렇죠.

      생사의 경계까지 가셨던 건, 저번에 언젠가 적으셨던 그 수술 때일까요?

  5. BlogIcon sephia 2012.05.21 23:40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이 양반이 오늘따라 웬..... 후...

  6. BlogIcon MindEater™ 2012.05.23 09:14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죽을 때 후회없는 삶을 위해...
    어렵죠. 그래도 늘 그런 화두를 안고 산다면 의미있는 삶이 될 것 같습니다.
    후회없는 삶을 위해 화이팅!!입니다. ^^*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10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죽을 때 후회없는 삶을 사는 거겠죠.
      쉽지 않겠지만요.
      그래도 그런 생각 하면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삶의 내용은 달라지겠죠.

  7. BlogIcon Laches 2012.05.23 11:23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얼마전 게임에서 만난 친구가 왜사냐고 묻더라구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구구절절이 늘어놓기는 했는데 사실 진짜 왜 살고있나에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혼자가 되어(인터넷도, 책읽기도, 음악듣기도 접어두고) 자신안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위해서 중요하겠지요..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건 자신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12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왜 사냐는 질문이 답하기 어려운 면이 있죠.
      사실 저는 '살고 싶어서' 산다고 말하는 편입니다.
      왜 살고 싶냐고 물어올 때에는 위에서 적은 바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하고요.
      여행, 독서, 운동, 사랑, ... 할 일이 많죠. ^^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를 알려면
      라키님이 적으신대로 '자신과 마주하기'가 필요하지요.

  8. BlogIcon 책쟁이 2012.05.23 13:02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죽을때까지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까요?
    지금은 책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이야기로 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이 지금 저의 소임이겠지요. ^^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13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겠지요. 맞습니다.
      삶의 이야기를, 하시는 일과 결부하여, 책을 통해서 전하는 것. 아주 좋죠.
      활자라는 것이 보존되는 면이 있으니까요.

  9. BlogIcon 해우기 2012.05.25 11:49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무거운 주제이지만..항상 현실로 존재하는....논제같아요....
    하루하루....오늘도 그렇고....내일도 그렇고...
    그런 삶속에 놓여진 존재인데........

    • BlogIcon 비프리박 2012.06.19 21:14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무거운 주제이지만 생각해야할 주제이고 가끔 생각나는 주제입니다.
      삶과 죽음. 산다는 것. 바로 사는 것. ... 쉽지 않은 물음들이죠.

  10.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8.08.08 15:53 신고 | Address | Modify/Delete |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해 관심 있어 하시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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